뉴스 속의 한국사

[뉴스 속의 한국사] 정조는 왜 이순신 장군의 책 만들라고 했을까?

bindol 2021. 11. 5. 05:05

이순신 장군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기록·전투 활약상 찾으라 명령
이순신 일기 모아 만든 '난중일기'… 전쟁 상황부터 서민 생활 모습까지 생생한 경험 기록하고 있어요

내일 4월 28일은 충무공 탄생일이에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날을 기념하며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일이지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날은 1545년 음력 3월 8일이라고 해요. 이날을 양력으로 고쳐서 정한 것이지요. 우리가 이처럼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을 기념하듯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200년이 지난 1792년 조선 정조 임금 때에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일이 있었어요. 어떤 일이었는지 살펴볼까요?

◇임진왜란 일어난 지 200년 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다

1792년, 정조 임금이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어요.

"올해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200년 되는 해요. 당시에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다면 우리 조선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지 모르오. 이 충무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분을 영의정으로 추증하도록 하시오."

 /그림=이창우

추증(追贈)은 나라에 공로가 큰 관리에게 죽은 뒤에 관직의 등급을 올려 주는 것을 말해요. 정조 임금은 이순신 장군의 노고를 위로하려는 의미로 영의정이라는 최고 관직을 내린 것이에요. 충무공이란 시호는 이순신 장군이 세상을 떠난 45년 뒤인 1643년 인조 임금 때 나라에서 내려준 것이고요. 또한 정조 임금은 규장각의 문신인 윤행임과 유득공을 불러 다음과 같은 명령도 내렸어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뜻에서 그분의 삶과 업적을 기록하고 그분이 남긴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편찬하도록 하라."

◇이 충무공이 남긴 글들을 모아 책을 펴내다

정조 임금은 왕이 개인적으로 쓰는 돈인 내탕전과 왕실에서 쓰는 돈인 어영전을 내려주며 책을 출판하는 비용에 보태게 했어요. 그 뒤로 출판과 인쇄를 맡은 교서관이라는 관청에 충무공에 관한 책을 담당하는 부서가 생겨났죠. 윤행임과 유득공이 편찬과 교정을 맡아 충무공에 관한 이야기, 그의 기록 등을 한데 묶어 책으로 엮는 작업을 벌였죠. 작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인 1795년에 14권 8책에 이르는 전집이 완성돼 편찬됐는데, 그 책이 바로 '이충무공전서'예요.

이 전집에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일기가 실려 있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인 1592년 1월 1일부터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으로 치른 노량해전을 앞둔 1598년 11월 17일까지의 기록이지요. 대개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쓴 일기를 연도별로 묶어서 그 겉장에 '임진일기' '병신일기' '정유일기' 등의 제목을 붙였어요. 제목이 없이 써내려간 것도 있었고요.

◇이순신 장군이 모르는 제목 '난중일기'

 /그림=이창우이순신 장군이 쓴 일기가 '난중일기'라는 제목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였어요.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한 사람들이 책을 구분하기 편리하게 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쓴 일기를 '전란 중의 일기'라는 뜻으로 '난중일기(亂中日記)'란 이름을 붙였어요. 즉,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쓴 일기가 200년이 지나서 '난중일기'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은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것과 그것을 정리해 활자로 옮겨 '이충무공전서'에 묶어둔 두 종류의 책이 전해지고 있고요.

'난중일기'는 개인의 일기이지만 날마다 교전 상황이나 군대 안에서의 생활, 이순신 장군의 정치적인 생각과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등을 담고 있어요. 또한 당시의 날씨나 서민들의 생활상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죠. 그중 해전에 관한 자료는 다른 책에서는 보기 드문 것으로 임진왜란과 세계 해전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로 꼽힌답니다. 그런 가치를 인정받아 '난중일기'는 국보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됐죠.

◇징비록은 어떤 책일까?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 중 '이충무공전서'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집안과 어린 시절 성품과 능력 등을 소개하는 책이 있어요. 바로 류성룡이 쓴 '징비록'이라는 책이에요. 류성룡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황의 제자였으며, 임진왜란 때 병조판서와 영의정 자리에 올라 전쟁을 수습하기 위해 애쓴 인물이에요. 이순신 장군과는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였죠.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에 추천한 사람이기도 해요.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그가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 쓴 것으로 임진왜란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죠. 징비(懲毖)는 미리 잘못을 경계해 삼간다는 뜻으로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시경'에서 따온 말이라고 해요. 즉, 미리 스스로 잘못을 뉘우쳐 뒷날의 걱정과 근심을 조심한다는 뜻이지요. 류성룡은 다시는 임진왜란 같은 전쟁이 일어나 백성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잘못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책을 썼죠. '징비록'은 '난중일기'와 더불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답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아산 현충사, 통영 제승당, 여수 진남관 등 전국에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이 있어요. 각각 어떤 유적지이며 이순신 장군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세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

감수=임원빈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