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산책] 둥근 원 그리는 기술, 26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도 사용됐죠
컴퍼스
우선 감옥을 원 모양으로 만들면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아 감시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어요. 여기에 더해 과거 동양에서 원을 그리는 도구를 '규(規)'로 불렀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였는데요. 규는 오늘날의 컴퍼스를 뜻하는 말이에요. 당시 동양에서는 둥근 것을 그리는 규가 인(仁)을 주관한다고 여겼어요. 규로 그린 것과 같은 원 모양으로 감옥을 만들면서, 죄인을 어질고 인격적으로 대해 마침내 죄인이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길 기원했던 거예요.
규로 원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기원전 500년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사상가 묵자(墨子)의 책 '묵자'에도 나와있는데요. 이 책의 '소취편(小取篇)'에는 점과 직선, 각의 정의 등 수학적 내용이 자세하게 다뤄져 있어요.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기원전 300년쯤 쓴 수학서 '원론(Elements)'보다 먼저 쓰였기 때문에 이 책을 두고 서양보다 동양의 수학이 앞섰다고 해석되기도 해요.
묵자에는 원의 성질에 관한 설명이 자세히 소개돼 있어요. 묵자는 원의 중심에서 원둘레의 어디를 가나 거리가 같다고 설명해요. 그러면서 원의 중심을 '일중(一中)'이라고도 했는데, 하나의 원은 하나의 중심을 가지며 두 개의 중심을 가질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였어요.
원을 그리기 위해 규를 사용했다는 대목도 있어요. 한 중심점에서 규로 원을 그리면 처음 시작한 점과 끝점이 만나기 때문에, 원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성질을 가졌다는 거예요. 규는 '바로잡다' '모범으로 삼다' 같은 뜻도 있는데, 오차 없이 둥근 원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컴퍼스에 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닐까 추측돼요.
원을 그리는 도구는 그림 속에서도 신비롭게 표현됐어요. 8세기 중엽 당나라 시대에 그려진 '복희여와도(伏羲女 圖)'는 중국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복희와 여와를 소재로 삼고 있어요. 그림 중앙에는 남매인 두 신이 서로 마주 보는 자세로 그려져 있는데, 왼쪽이 여신인 여와이고 오른쪽이 남신인 복희예요. 여와는 컴퍼스(規)를 들고 있고 복희는 자(曲尺)를 들고 있죠. 배경으로는 해와 달, 별자리가 그려져 있어요. 이는 두 신이 우주를 컴퍼스와 자로 그려냈음을 나타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