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고전 속 정치이야기] 안영회고(晏嬰懷古)

bindol 2022. 5. 6. 05:11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춘추시대 제(齊)의 명재상 안영의 묘는 산동성 치박시(淄博市) 임치구(臨淄區) 영순장(永順庄) 들판에 있다. 묘지 주변은 고요하다. 관중(管仲)의 묘에 비하면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안영의 자는 중(仲), 시호는 평(平)이다. 영공(靈公), 장공(庄公), 경공(景公)을 보필한 그는 공자를 제에서 축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5척 단신에 용모까지 보잘것없었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성장하는 전(田)을 잘 견제해 강(姜)씨의 정권을 잘 유지했다. 그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는 지금도 즐겁다. 어느 해 안영은 사신으로 초에 파견됐다. 당시 1척은 지금의 7촌에 해당하므로 그의 키는 140㎝ 정도였을 것이다. 초는 안영과 제에 모욕을 주고 싶어서 성문 옆에 작은 개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안영이 말했다. “개나라에 왔다면 개구멍으로 들어가겠지만, 초에 왔으니 이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초왕은 안영을 만나자 이렇게 비꼬았다. “제에는 과연 인재가 없는 것 같구려. 어찌 그대와 같은 사람이 사신으로 왔소이까?”“제에는 인재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신은 상대에 맞추어서 선발합니다.” 무안했던 초왕은 얼른 주안상을 차리게 했다. 축배를 드는 순간 형리가 죄수를 끌고 왔다. 초왕은 짐짓 화를 내며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고 꾸짖었다. 형리가 이 도둑놈은 제나라 사람이라고 말했다. 초왕은 안영을 보고 가엽다는 듯이 말했다. “선생! 제나라는 살기가 어려운 것 같군요. 도둑질을 하다니요.”“귤을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귤이 열리지만, 회수 이북에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고 하더군요. 귤과 탱자는 비슷하지만 맛이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풍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제나라에 살 때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는데 왜 초나라에 와서는 도둑질을 했을까요?”

유명한 오왕 부차(夫差)와 안영의 대결도 재밌다. 부차는 안영이 오자 사람을 시켜 천자께서 당신을 만나시겠다고 한다고 외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안영이 짐짓 못 들은 척하자 부차는 할 수 없이 자신이 직접 안영에게 찾아갔다. 안영이 말했다. “저는 제왕의 명을 받고 오왕을 만나러 왔습니다. 제가 좀 어리석어서 남의 말에 잘 속습니다. 아까 어떤 사람이 자꾸 천자께서 저를 찾는다고 하더군요. 왕께서 천자라면 저는 천자를 뵈러 온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원래 오왕은 어디에 계십니까?”

할 말을 잃은 부차는 어색한 웃음으로 난감함을 모면했다. 당시 최강국이던 진(晋)의 평공이 제를 공격하려고 미리 범소(范昭)를 제로 파견해 실정을 탐지했다. 범소는 환영식에서 일부러 술잔을 떨어뜨리고 경공의 술잔으로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 경공이 술잔을 범소에게 내밀자 안영은 재빨리 그것을 빼앗고 다른 잔을 범소에게 가져다주게 했다. 그러자 범소는 짐짓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며 악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봐! 성주(成周)의 음악을 연주하게, 나는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겠다.”

안영의 지시를 받은 악사는 끝내 거절했다. 나중에 경공이 안영에게 사자를 화나게 했으니 진이 제를 공격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안영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범소가 예의를 모르겠습니까? 그의 행동은 우리 군주와 신하 사이를 테스트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 제가 넘어가겠습니까? 음악을 연주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천자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만약 성주의 음악을 연주했다면 천하에 의심을 받게 됩니다.” 범소는 제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다. 공자까지도 안영을 칭찬했다. “훌륭하구나! 술잔을 지키면서도 천 리 밖의 일을 해결하다니!”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안영의 말고삐를 잡고 종노릇을 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 천지일보(http://www.newscj.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