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 工夫

第 3章 止於至善

bindol 2022. 5. 28. 05:38

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시경에 운, 나라의 기내(천자가 다스리는 직할 영내) 천리, 백성들이 멈추어 사는 곳이다 하였다.

詩商頌玄鳥之篇 邦畿王者之都也 止居也

言物各有所當止之處也

시는 상송 현조(제비)편이다. 방기는 왕자의 도읍이고, 지는 거함이니, 물건은 각각 마땅히 머물려야 할 곳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詩商頌玄鳥之篇 添附

邦畿千里 惟民所止 肇域彼四海

천리 넓은 왕의 땅, 백성들이 머물러 사는 곳이라 저 사해를 개척하시었다.

止居肇開也 言王畿之內 民之所止不過千里而其封域則極乎四海之廣也

止는 居함이요, 肇는 엶이다. 王畿 안에 백성들이 사는 곳이 천리를 넘지 않지만 그 封域은 四海의 넓음에 極하였다.


新案陳氏曰

引詩謂邦畿爲民所止之處 以比事物各有所當止之處且 泛說止字

시에서 인용한 것은 邦畿는 백성이 머무르는 장소가 되는 것이니, 이것으로써 사물은 각각 마땅히 머무르는 곳이 있는 것이다. 止字를 보편적으로 설명하였다.

東陽許氏曰

王者所居之方千里謂之王畿 居天下之中 四方之人環視內向 皆欲歸之於其地 猶事有至善之理 人當止之也

王者가 머무르는 곳 사방 천리를 王畿라하고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빙 둘러 안(王畿)을 보면서 모두 그 지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事에 지극한 이치가 있어 사람들이 마땅히 그곳에 머무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 而 不如鳥乎

시경에 운, 면만(새우는 소리, 끊임없이 면면히 우는 소리)히 우는 황조(꾀꼬리), 산모퉁이(사람이 가지 않은 깊은 산골)에 머문다 하였는데, 공자 왈, 머무는데 그 머물 곳을 아니, 사람으로서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였다.

詩小雅緡蠻之篇 緡蠻 鳥聲 丘隅 岑蔚之處

시는 소아 면만편이다. 면만은 새 소리이다. 구우는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한 곳이다.

岑蔚二字本古註

岑蔚二字는 본래 古註(공영달)이다.

北溪陳氏曰

土高曰丘 隅謂丘之一角峻處 山岑高而木森蔚 所謂林茂 鳥知歸也

土가 높은 곳을 丘라 하고 隅는 丘의 한 쪽 험준한 곳을 말한다. 山이 岑高하고 木이 森蔚하여 수풀이 무성하면 새들이 (그곳에) 갈 줄을 안다.

 

子曰以下 孔子說詩之辭 言人當知所當止之處也

자왈 이하는 공자가 시을 해석한 말이니, 사람은 마땅히 머물려야 할 곳을 알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詩小雅緡蠻之篇 添附

 

緜蠻黃鳥 止于丘阿 작은 꾀꼬리 언덕에 앉았구나

道之云遠 我勞如何 갈길은 먼데 내 고생은 얼마나 될까

飮之食之 敎之誨之 마시고 먹게 하며 가르치고 깨우쳐 주마

命彼後車 謂之載之 저 뒷 수레에 명하여 태워주게 하는 구나

 

比也 緜蠻鳥聲 阿曲阿也 後車副車也

此微賤勞苦而思有所託者 爲鳥言以自比也 蓋曰緜蠻之黃鳥自言止於丘阿而不能前

蓋道遠而勞甚矣 當是時也 有能飮之食之敎之誨之又命後車以載之者乎

比이다. 緜蠻은 새소리이다. 阿는 曲阿(낭떠러지)이다. 後車는 副車이다.

이것은 미천하고 노고스러워 의탁할 바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새의 말을 해서 스스로 比한 것이다. 아마도 면만히 우는 꾀꼬리가 자신하기를 ‘구아에 멈춰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라고 하니, 대개 길은 멀고 勞苦스러움은 심한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능히 마시게 하며 먹게 하며, 가르쳐주며 깨우쳐주며 또한 後車에 명하여 태워줄 이가 있을까.

 

緜蠻黃鳥 止于丘隅 작은 꾀꼬리, 언덕 모퉁이에 앉았구나

豈敢憚行 畏不能趨 어찌 감히 지나가기를 꺼려하랴, 오히려 빨리 가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飮之食之 敎之誨之 마시고 먹게 하며, 가르치고 깨우쳐주어

命彼後車 謂之載之 저 뒷 수레에 명하여, 태워주게 하는 구나

 

比也 隅角 憚畏也 趨疾行也 蓋言文王得人之盛而宜其傳世之顯也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假哉天命 有商孫子 商之孫子 其麗不億 上帝旣命 侯于周服

比이다. 우는 각이다. 탄은 두려워함이다. 추 질행함이다.

緜蠻黃鳥 止于丘側 작은 꾀꼬리, 언덕 옆에 앉았구나

豈敢憚行 畏不能極 어지 감히 지나가기를 꺼려하랴, 끝까지 가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飮之食之 敎之誨之 마시고 먹게 하며, 가르치고 깨우쳐주어

命彼後車 謂之載之 저 뒷 수레에 명하여, 태워주게 하는 구나

 

比이다. 側은 곁이다. 極은 이름이니 國語에 이르기를 ‘齊나라에서 멍에를 하고 떠나면 저녁에 魯國에 이른다.’라 하였다.


雲峯胡氏曰

此傳 不特釋止至善 幷知止至能得皆釋之 故首引孔子之言曰

知其所止而章句於下文亦以知其所止與所以得止至善之由 言之

此傳은 단지 至善에 머무르는 것을 설명했을 뿐 만 아니라 아울러 知止(머물 곳을 앎)와 至能得(그 곳에 이르는 것)을 모두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첫머리에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知其所止라 했고, 그리고 章句의 下文에 또 知其所止와 所以得止至善之由(至善에 머무는 이유를 알아야 함)를 설명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此比人當知所止 重在知字

此는 사람은 마땅히 머물 바를 알아야 함을 비유한 것이니, 중요함이 知字에 있다.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 爲人子止於孝 爲人父止於慈

與國人交止於信

 

시경에 운, 목목한(깊고 원대한, 거룩한) 문왕이여, ! 끊임없이() 밝혀서 공경함에 머문다 하였으니(대개 시경에 끝에 止字는 어조사인데 여기서는 本字로 해석이 됨), 인군이 되어서는(爲人之君) 인에 머물고, 인신이 되어서는 경에 머물고, 인자가(자식이) 되어서는 효에 머물고, 인부(어버이)가 되어서는 자에 머물고, 국인(백성)과 더불어 사귐에는 신에 머물렀다.

군신 부자간 서로 지켜야 함을 강조함. 맹자의 오륜도 마찬가지로 상방 간을 강조함, 한 대 출현한 삼강은 일방적임, 君 父 夫는 가만히 있고 臣 子 婦만 봉사하는 것임.

詩文王之篇 穆穆 深遠之意 於歎美辭 緝繼續也 熙光明也

시는 문왕 편이다. 목목은 深遠(내면의 덕이 깊어 바깥에 멀리 미침)한 뜻이다. 어는 감탄하는 말이다. 집은 계속하는 것이고, 희는 광명함이다.


文王 詩經 大雅의 일부분 添附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아름다운 문왕, 아아, 영원히 밝고도 공경스럽도다.

假哉天命 有商孫子 위대한 하늘의 명, 상나라의 자손들에게도 있었고

商之孫子 其麗不億 상나라의 자손들, 그 수가 수없이 많도다.

上帝旣命 侯于周服 상제 이미 명하시어 주나라에 복종시키시었다.

 

賦也 穆穆深遠之意 緝續 熙明 亦不已之意 止語辭 假大 麗數也 不億不止於億也

○ 言 穆穆然文王之德 不已 其敬如此 是以大命集焉 以有商孫子觀之則可見矣 蓋商之孫子其數不止於億 然以上帝之命 集於文王而今皆有服于周矣

 

賦이다. 穆穆은 심원한 모양이다. 緝은 이음이요, 熙는 밝음이니, 또한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止는 語辭이다. 假는 큼이다. 麗는 數이다. 不億은 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 말하자면 穆穆然한 文王의 德이 그 敬함을 그치지 않음이 이와 같다. 여기에 모인 것인데, 상의 자손 입장에서 본다면 가히 알 수 있다. 商나라의 자손들이 그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상제의 명이 문왕에게 모여졌으므로, 지금 그들 모두가 周나라에 服從하는 것이다.


緝不容已之誠也 熙不容掩之明也

緝은 그만 둠을 용납하지 않은 誠이고 熙는 가림을 용납하지 않는 明이다.

 

敬止言其無不敬 而 安所止也

경지는 그가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머무는 곳이 편안함을 말한다.

朱子曰 緝熙是工夫 敬止是功效

緝熙는 工夫이고 敬止는 功效이다.

○ 西山眞氏曰

敬止之敬擧全體言 無不敬之敬也 爲人臣止於敬專指 敬君言 敬之一事也 文王之敬包得仁敬孝慈信

敬止의 敬은 全體로 말한 것으로 공경하지 않음이 없는 敬이고, 신하가 되어 敬에 머문다는 敬은 오로지 君의 敬을 말한 것으로 敬의 한 일이다(에 불과하다). 文王의 敬은 仁敬孝慈信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 新安陳氏曰

安字見文王安行之氣象 非勉焉用力之比

安字는 文王의 安行之氣象을 나타낸 것이니 노력하고 힘씀에 비할 바가 아니다.

 

引此而言 聖人之止無非至善 五者乃其目之大者也 學者 於此

究其精微之蘊 而 又 推類以盡其餘則於天下之事皆有以知其所止 而 無疑矣

이것을 인용하여 성인이 머무는 것은 지선이 아님이 없으나, 다섯 가지는 바로 그 조목의 큰 것임을 말한 것이다. 배우는 자가 이에 대하여 정미함의 쌓인 깊은 뜻()을 궁구하고 또 유추하여 그 나머지를 다한다면 천하의 일에 대하여 모두 자신이 머물 곳을 알아 의심함이 없을 것이다.

朱子曰

爲人君止於仁 仁亦有幾多般 須隨處看這一事合當如此是仁 那一事又合當如彼是仁 爲人臣止 於敬 敬亦有多少般 不可止道擎跽曲拳是敬 如陳善閉邪 納君無過皆是敬 若止執一 便備了 安得 謂之至善

임금이 되면 仁에 머무나, 仁도 또한 여러 가지 경우가 있어, 반드시 상항에 따라 분별해서 이 일에 합당하면 이것은 仁이고 저 일에 또한 합당하면 그것은 仁이다. 신하가 되면 敬에 머무나, 敬도 또한 여러 가지가 있어 ‘다만(止) 擎跽하고 曲拳하는 것만이 敬이다.’고 말했어는 안 된다. 예를 들면 陳善閉邪하여 임금에게 過가 없도록 하는 것 모두가 敬이다. 만약 한 곳만 잡는데 이르게 되면 바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니, 어찌 至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節齋蔡氏曰

緝熙敬止者所以爲止至善之本 仁敬孝慈信所以爲止至善之目

緝熙敬止는 至善에 머무는 근본이 되는 것이고, 仁敬孝慈信은 至善에 머무는 조목이 된다.

○ 西山眞氏曰

理之淺近處易見而精微處難知 若只得其皮膚 便以未善爲已善 須窮究至精微處 推類者 此說君臣父子而已 夫婦則止於有別 長幼則止於有序 廣而推之 萬事萬物莫不各有當止處也

이치 가운데 淺近한 것은 알기 쉽고 精微한 것은 알기 어렵다. 만약에 다만 천근한 것만 안다면 곧 아직 착하지 않은 것을 착하다고 여길 것이니, 반드시 精微함에 이르도록 窮究해야 만 그 類를 미룰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君臣과 父子만 설명했을 뿐이나 부부간에도 有別에 머물고 長幼간에도 有序에 머물러 넓게 미루어가야 한다. 萬事萬物이 각각 마땅히 머물 곳이 있지 아님이 없는 것이다.

○ 雲峯胡氏曰

仁敬孝慈信五者人所當止莫大於此 故當於此五者之中 究其精微之蘊 人所當止不盡於此 故又當於五者之外推類以盡其餘

仁敬孝慈信의 다섯 가지는 사람이 마땅히 머무는데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 다섯 가지에 精微함의 깊은 곳까지 궁구할 것이며, 사람이 마땅히 머무는 곳으로 이보다 더 힘쓸 곳은 없다. 그러니 동시에 다섯 가지 이외에도 마땅히 그 類를 미루어 나머지도 힘을 다해야 한다.

○ 新安陳氏曰

學者於此以下 乃朱子推廣傳文言外之意

學者於此(배우는 자가 이에 대하여) 이하는 바로 주자가 傳文을 넓게 미루어 傳文 밖의 뜻도 말한 것이다.

 

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 道聖德至善 民之不能忘也

시경에 운, 저 기수 모퉁이(물가)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문채 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문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 하였으니, 여절여차는 학문을 말한 것이고, 여탁여마는 스스로 닦음이고, 슬혜한혜는 (자신이 잘못하지 않을까) 두려워함이고, 혁혜훤혜는 겉으로 들어나는 위의이고, 문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는 것은 성덕과 지선을 백성이 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澳於六反 菉詩作綠 猗叶韻音阿 僩下版反 喧詩作咺 諠詩作諼 並况晩反 恂鄭氏讀作峻

욱은 어와 육의 반자(육)이다. 菉은 詩經에는 綠으로 되어있다. 猗는 叶韻이니 音은 阿(아)이다. 僩은 하와 판의 반자(한)이다. 喧은 詩經에는 咺으로 되어있다. 諠은 詩經에는 諼으로 되어있다. 모두 황과 만의 반자(환)이다. 恂은 鄭氏의 註에는 峻(준)으로 읽는다.


詩衛風淇澳之篇 添附

瞻彼淇奧 綠竹猗猗 기수(淇)라 저 물굽이 푸른 대 우거졌네.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뼈와 상아 다듬은 듯 구슬과 돌 갈고 간 듯.

瑟兮僴兮 赫兮咺兮 엄하고 너그럽고 환하고 의젓한 분!

有匪君子 終不可諼兮 어여쁘신 우리임을 끝내 잊지 못하겠네.

 

興也 淇水名 奧隈也 綠色也 淇上多竹漢世猶然 所謂淇奧之竹是也

猗猗始生柔弱而美盛也 匪斐通文章著見之貌也 君子指武公也 齒骨角者旣切以刀斧而復磋以鑢 鐋 治玉石者旣琢以椎鑿以復磨以沙石 言其德之修飭有進而無已也 瑟矜莊貌 僩威嚴貌 喧宣著 貌 諼忘也

衛人美武公之德而以綠竹始生之美盛 興其學問自修之進益也


詩衛風淇澳之篇 淇水名 澳隈也 猗猗 美盛貌 興也

시는 위풍기욱편이다. 기는 물 이름이고, 욱은 모퉁이다. 의의는 아름답고 성한 모양이니, 흥이다.

시의 六義 : (先言他物을 하여 본 뜻을 말함) (바로 본 뜻을 말함) (비유를 하여 본 뜻을 말함), (대중가요)(궁중 음악, 클래식)(찬가) 등으로 분류.

新安陳氏曰

此於詩之六義屬興 借淇竹 起興以美衛武公有文之君子也

이것은 시의 六義의 興에 속한다. 기수의 대나무를 빌러 흥을 일으켜 위나라 무공이 문체가 있는 군자로 미화한 것이다.

 

斐文貌

비는 문채 나는(아름다운) 모양이다.

雙峯饒氏曰

有斐是說做成君子之人 所以斐然有文者 其初自切磋琢磨中來也

有斐는 군자가 된 사람이 斐然한 빛남이 있음을 설명한 것이니, 그것은 애초 切磋琢磨하는 가운데 오는 것이다.

 

切以刀鋸 琢以椎鑿皆裁物使成形質也 磋以鑢鐋 磨以沙石 皆治物使其滑澤也

治骨角者 旣切 而 復磋之 治玉石者 旣琢 而 復磨之 皆言其治之有緖 而 益致其精也

절은 칼과 톱으로 하고 탁은 망치와 끌로 하니, 모두 물건을 재단하여 하여금 형질을 이루게 하는 것이고, 타는 줄과 대패로 하고 마는 모래와 돌로 하니, 모두 물건을 다듬어 매끄럽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뼈와 뿔을 다듬는 자는 이미 잘라놓고 다시 갈며, 옥과 돌을 다듬는 자는 이미 쪼아놓고 다시 가니, 모두 그 다스림에 실마리가 있어 더욱 그 정함을 지극히 함을 말한 것이다.

切與啄是治之有端緖 磋與磨是益致其精細

切과 啄은 가공의 처음에 있는 것이고, 磋와 磨는 (그 가공을) 더욱 정밀하게 하는 것이다.

 

瑟嚴密之貌 僩武毅之貌

슬은 엄밀한 모양이고, 한은 씩씩하고 굳센 모양이다.

嚴密不麤踈也 武毅不怠弛也

嚴密은 거칠고 엉성하지 않은 것이고 武毅는 게으르고 느즈러지지 않는 것이다.

○ 東陽許氏曰

嚴密是嚴厲縝密 武毅是剛武彊毅 以恂慄釋瑟僩而朱子謂恂慄者嚴敬存乎中 金仁山謂所守者嚴密所養者剛毅 嚴密是不麤踈 武毅是不頹惰以此展轉體認則瑟僩之義可見

嚴密은 嚴厲縝密이고 武毅은 剛武彊毅이니 恂慄로 瑟僩를 해석하였고 주자는 恂慄이라는 것은 ‘嚴敬 그 가운데 있다.’고 했고. 金仁山은 ‘지키는 것은 嚴密하고 기르는 것(수양)은 剛毅하다.’고 했으니, 嚴密은 麤踈하지 않은 것이고, 武毅은 頹惰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展轉하여 體認하면 瑟僩의 뜻을 알 수가 있다.

 

赫喧 宣著盛大之貌

혁과 훤은 드러나고 성대한 모양이다.

雙峯饒氏曰 宣著釋赫字 盛大釋喧字

宣著는 赫字를 해석한 것이고 盛大는 喧字를 해석한 것이다.

 

諠忘也 道言也 學謂講習討論之事 自修者 省察克治之功

훤은 잊음이다. 도는 말함이다. 학은 강습하고 토론하는 일을 이르고, 자수는 성찰하고 (사욕을) 이겨(또는 잘) 다스리는 공부이다.

 

新安陳氏曰

學所以致知 知視行爲易 故以切磋比之 治骨角猶易於治玉石也 自修所以力行 行視知爲難 故以琢磨比之 治玉石則難於治骨角矣

學은 致知이니 知는 行에 비유하면(視) 쉽다. 그러므로 切磋로 비유했으니, 骨角를 가공하는 것이 오히려 玉石를 가공하는 것 보다 쉽다. 自修는 力行이니 行은 知에 비유하면 어렵다. 그러므로 琢磨로 비유했으니, 玉石을 가공하는 것이 骨角을 가공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다.

 

恂慄 戰懼也

준율은 두려워함이다.

戰懼之意嚴於中

嚴가운데 戰懼의 의미가 있다.

 

威可畏也 儀可象也

위는 두려울 만함이고, 의는 본받을 만함이다.

西山眞氏曰

威者正衣冠 尊瞻視儼然人望而畏之 非徒事嚴猛而已 儀者動容周旋中禮 非徒事容飾而已

威는 衣冠을 바르게 하여 사람들이 우러러 보도록 儼然히 하여 사람들이 바라보고 두려워하는 것이나, 다만 嚴猛을 일삼는 것은 아니다. 儀는 動容周旋이 禮에 맞는 것이나, 단지 容飾를 일삼는 것은 아니다.

○ 蛟峯方氏曰

瑟是工夫細密 僩是工夫强毅 恂慄是兢兢業業惟其兢業戒懼所以工夫精密而强毅

瑟은 공부를 세밀하게 하는 것이고, 僩은 공부를 굳세게 하는 것이고 恂慄은 조심하고 삼가는(兢兢業業) 것이니, 오직 조심하고 두려워함이 공부를 精密하게 굳세게 하는 것이다.

○ 新安陳氏曰

有威而可畏謂之威 有威而可象謂之儀 本左傳語威儀之美形於外

威가 있어 두려워할 만한 것을 威라 하고 威가 있어 본받을(象) 만한 것을 儀라 하는데, 左傳에 ‘威儀의 美가 밖에 드러난다.’는 말에 있다.

 

引詩 而 釋之 以明明明德者之止於至善

道學 自修 言其所以得之之由 恂慄 威儀 言其德容表裏之盛

시를 인용하고 이것을 해석하여 명명덕하는 자의 지어지선을 밝힌 것이다. 도학과 자수는 이것을 얻게 된 바의 이유를 말한 것이고, 준율과 위의는 덕용의 표리의 성함을 말한 것이니,

恂慄在裏德也 威儀見於表容也

恂慄(두려워함)은 내면에 있는 덕인 것이고 威儀(두렵고 본받을 만함)는 용모에 나타난 것이다.

 

卒乃指其實而歎美之也

마침내(卒乃) 그 실체를 가리켜 탄미한 것이다.

朱子曰

切而不磋未到至善處 琢而不磨亦未到至善處 瑟兮僩兮則誠敬尊於中矣 未至於赫兮喧兮 威儀輝光著見於外 亦未爲至善 至於民之不能忘 若非十分至善 何以使民久而不能忘

자르고 갈지 않으면 지극히 선한 곳에 도달할 수 없고 다듬은 후 갈지 않으면 또한 지극히 선한 곳에 이를 수 없다. 瑟兮僩兮하면 마음속에 誠敬를 중히 여기며, 赫兮喧兮하여 威儀가 빛나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면 또한 至善이 되지 못하니, 백성들이 잊지 아니함은 만약 충분히 지선이 아니고 어떻게 백성들이 오래 잊지 아니 하겠는가.

○ 玉溪盧氏曰

切磋則知至善之所止 琢磨則得至善之所止 恂慄見至善之德修於中 威儀見至善之容著於外 德容表裏之盛一至善耳 卒指至善之實 非盛德之外 有至善 亦非明德之外 有盛德也

切磋을 하면 至善이 머무는 곳을 알고, 琢磨를 하게 되면 至善이 머물 바를 얻게 되며, 恂慄은 至善의 덕이 마음에 수양을 함을 나타낸 것이고, 威儀는 至善의 모습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德容의 안 밖의 성함이 한결같이 至善할 뿐이다. 마침내 至善의 實을 가리켜 盛德 이외에 至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明德 이외에 盛德이 있는 것도 아니다.

新安吳氏曰

理在事物則爲至善 身體此理而有所得則爲盛德 如君之至善是仁 能極其仁卽君之盛德也 明德 是得於稟賦之初者 盛德是得於踐履之後者 亦只一理而已

이치가 사물에 있다면 至善이 되니, 몸으로 이 이치를 체득하여 얻는 바가 있으면 盛德이 된다. 예를 들면 임금의 至善은 仁이고, 그 仁을 지극하게 하면 바로 임금의 盛德이다. 明德은 최초에 부여 받아 얻은 것이고 盛德은 밟아 나가서 최종적으로 얻은 것이니, 모두 한 이치일 뿐이다.

○ 新安陳氏曰

此章釋止至善 亦有釋知止能得之意 於止知其所止 知止也 引淇奧而釋之學與自修 言明明德所以得止至善之由 恂慄威儀盛德至善 指其德止至善之實 民不能忘 已開新民得止至善之端 下文方極言之耳 章句所以得之之得字 正與經文能得之得字相照應

此章은 止至善을 설명하였으나, 또한 머물 곳을 알고 능히 그것을 얻는 의미도 설명하였다. 머물음에 그 머물 바를 아는 것이 知止이고, 淇奧의 시를 인용하여 學과 自修를 해석한 것은 明明德이 至善에 머무는 경로를 얻음을 말한 것이고, 恂慄 威儀 盛德 至善은 군자가 至善의 實을 얻었다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백성이 잊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新民이 至善에 머무르는 실마리를 얻었음을 말하는 것이니, 下文에 극언으로 말했을 뿐이다. 章句에 得之의 得字는 바로 經文의 能得之의 得字와 서로 일치하여 잘 어울린다.

○ 東陽許氏曰

此節工夫全在切磋琢磨四字上 章句謂治之有緖而益致其精 治之有緖 謂先切琢以後可以磋磨 循序而進工夫不難 益致其精 謂旣切琢而又須磋磨 求其極至工夫不輟 切磋以喩學 是就知上說止至善 講習討論 窮究事物之理 自淺以至深 自表以至裏 直究至其極處 琢磨是就行上說止至善 謂修行者省察克治 至於私欲淨盡 天理流行直行至是處 瑟兮僩兮謂恂慄是德尊於中者完 赫兮喧兮 謂謂威儀 是德見於外者著

此節工夫는 오로지 切磋琢磨의 四字에 있다. 章句에 그것을 가공하는데 순서가 있고 더욱 정밀해질 수 있다고 했는데, 가공하는데 순서가 있다는 것은 먼저 切琢한 이후에 磋磨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고, 순서에 의해 나아간다면 공부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더욱 정밀해 진다는 것은 이미 切琢을 했으면 또 반드시 磋磨을 하여 그 지극함에 이르는 공부를 그만 두지 않음을 강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切磋를 學에 비유한 것은 앎에 나아가 至善에 머무르는 것을 설명한 것이니, 講習討論하고 事物을 窮究하는 이치는 淺으로부터 深으로 나아가고, 表로부터 裏로 나아가, 바로 지극한 곳에 이르는 것을 궁구하는 것이다. 琢磨는 行으로 至善에 머무르는 것을 설명한 것이니, 修行者는 省察克治하여 私欲을 완전히 없애는데 이르러 天理流行하여 이곳에 이르는 것을 바로 행하는 것이다. 瑟兮僩兮는 恂慄이라고 했으니 마음에 덕을 중히 함이 완전한 것이고, 赫兮喧兮는 威儀라고 했으니 덕이 밖으로 드러남이 현저한 것이다.

詩云 ‘於戲 前王不忘’

君子 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시경에 운, ! 전왕을 잊지 못한다 하였으니, 군자는 그 어짊을(불망한 왕이 어질게 여긴 것을) 어질게 여기고, 그 친함을(그가 친하게 여긴 것을) 친하게 여기며, 소인은 즐겁게 해 주는 것을(그가 즐거워 한 것을) 즐거워하고 이롭게 해 주는 것을(그가 이롭게 여긴 것을) 이롭게 여기니, 이 때문에(또는 이것을 일러 以=) 세상에 없는데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仁者壽 노자에 死而不忘者壽라고 함.

賢其賢而親其親은 중용에 효 즉 계승자(군자)

踐其位 行其禮 奏其樂 敬其所尊 愛其所親 死如事生 事亡如事存 孝之至也라고 한 것이 있고

논어 賢賢, 덕이 있는 사람을 존경한다는(賢) 尊賢의 의미. 賢은 有德者, 能은 有才者

樂其樂而利其利는 맹자에 있음.

梁惠王章句 下 4. 樂以天下

齊宣王 見孟子於雪宮 王曰 賢者 亦有此樂乎

孟子對曰 有 人不得則非其上矣 不得而非其上者 非也 爲民上而不與民同樂者 亦非也

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樂以天下 憂以天下 然以不王子 未之有也

 


詩周頌列文篇 添附

列文辟公 錫玆祉福

惠我無疆 子孫保之

賦也 列光也 辟公諸侯也 此祭於宗廟而獻助祭諸侯之樂歌

言諸侯助祭 使我劃福則是諸侯錫此祉福而惠我以無疆 使我子孫保之也

無封靡于爾邦 維王其崇之

念玆戎功 繼序其皇之

封靡之義未詳 或曰封專利以自封殖也 靡汰侈也 崇尊尙也 戎大皇大也

言汝能無封靡于汝邦則王當尊汝

又念汝有此助祭 釋福之大功則使汝之子孫 繼序而益大之也

無競維人 四方其訓之

不顯維德 百辟其刑之 於乎前王不忘

又言莫强於人 莫顯於德 先王之德 所以人不能忘者 用此道也

此戒飭而勸勉之也 中庸引不顯惟德百辟其刑之而曰 故君子篤恭而天下平

不忘而曰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詩周頌烈文篇 於戲 歎辭 前王 謂武文也

君子 謂其後賢後王 小人 謂後民也 此言前王所以新民者

止於至善 能使天下後世 無一物不得其所 所以旣沒世而人思慕之 愈久而不忘也

시는 주송 열문편이다. 오희는 감탄하는 말이다. 전왕은 문왕 무왕을 이른다. 군자는 후현과 후왕을 이르고, 소인은 후민을 이른다. 이는 전왕이 백성을 새롭게 한 것이 지선에 그쳐서 능히 천하와 후세로 하여금 한 물건(사람)도 제 곳을 얻지 못함이 없게 하였으니, 이 때문에 이미 세상에 없는데도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여 더욱 오래도록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朱子曰

沒世而人不能忘 如堯舜文王之德萬世尊仰之 豈不是賢其賢 如周后稷之德子孫宗之 以爲先祖 之所自出 豈不是親其親

沒世而人不能忘은 堯舜文王과 같은 덕을 만세에 존경하고 추앙하니 어찌 어짊을 어질게 여기고 그 친함을 친하게 여지지 않을 수 있으며, 주의 후직과 같은 덕을 자손이 받들어 선조에서 나오는 바가 된 것이니 어찌 그 친함을 친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 玉溪盧氏曰

此兩節相表裏 上節卽此節之本原 此節卽上節之效驗 然則新民之至善 豈在明明德止至善之外哉

이 兩節은 서로 表裏가 되는데, 上節은 바로 此節의 本原이고 此節은 곧 上節의 效驗이다. 그러한 즉 신민의 지극한 선이 어찌 명명덕이 지극한 선의 밖에 머무름이 있겠는가.

○ 仁山金氏曰

賢其賢者高山仰(之) 景行行(之)崇其德也 親其親者敬其所尊 愛其所親象其賢也 樂其樂者風淸俗 美上安下順 樂其遺化也 利其利者分井受廛安居樂業 沐其餘澤也

그 어짊을 어질게 여긴다는 것은 高山을 우러러보고, 아름다운 행실을 행하여 그 덕을 숭상하는 것이다. 그 친함을 친하게 여긴다는 것은 그 존경하는 바를 공경하고, 그 친한 바를 소중히 하여 그 어짊을 본받는 것이다. 즐겁게 해줌을 즐거워 한다는 것은 風淸俗美하고 上安下順하여 그 남긴 교화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롭게 해줌을 이롭게 여긴다는 것은 分井受廛(井田과 집을 받고)하고 安居樂業하여 남긴 혜택에 흠뻑 젖는 것이다.

○ 新安陳氏曰

後賢賢其賢 後王親其親 下賢親二字指前王之身 後民樂其樂而利其利 下樂利二字 指前王之澤 傳文雖未嘗言新民止於至善之工夫事實 然就親賢樂利上 見得前王不特能使當世天下無一物不得其所而後世尙且如此 可見新民止於至善之效驗矣

後賢이 그 어짊을 어질게 여기고 後王이 그 친함을 친하게 여기는 아래 賢親二字은 前王之身을 가리키고, 後民이 즐겁게 해줌을 즐거워하고 이롭게 해줌을 이롭게 여기는 아래 樂利二字는 前王之澤을 가리킨다. 傳文에 비록 아직 新民이나 止於至善의 工夫나 事實을 말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親賢樂利에 나아가서는 前王이 當世天下로 하여금 無一物不得其所 했을 뿐만 아니라 後世에도 오히려 또한 如此하였으니 新民과 止於至善의 效驗을 알 수 있다.

 

此兩節咏歎淫泆 其味深長 當熟玩之

이 두절은 영탄(감탄)하고 음일(넘치는 것, 충분히)하여 그 맛이 깊고 기니, 마땅히 익숙히 음미해야 한다.

記樂記咏歎之淫泆之

樂記에는 咏歎之淫泆之라고 기록되다.

○ 雙峯饒氏曰

咏歎言其詞 淫泆言其義 淫泆者意味溢乎言詞之外也

咏歎은 그 글을 말하고 음일은 그 뜻을 말한다. 음일이라는 것은 意味가 言詞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右傳之三章 釋止於至善

이상은 전문의 3장이니, 지어지선을 해석하였다.

雙峯饒氏曰

明德新民兩章釋得甚略 此章所釋節目旣詳工夫又備 可見經首三句重在此一句上 節目謂仁敬孝 慈等 工夫謂學與自修

明德新民兩章은 그 해석이 매우 간략하다. 此章의 풀이한 바는 節目이 상세하고 工夫하는 방법이 또한 갖추어져 있어, 經 첫머리의 三句가 이 一句上에 중시됨을 볼 수 있으니 節目은 仁敬孝慈等을 말하고 工夫는 學과 自修를 말한 것이다.

○ 玉溪盧氏曰

此章凡五節 第一節言物各有所當止之處 第二節言人當知所當止之處以止之之事而言也 第三節言聖人之止 無非至善以得其所止之事而言也 第四節言明明德之止於至善 乃至善之體所以立 第五節言新民之止於至善乃至善之用所以行

此章은 전부 五節이니 第一節은 物은 각각 마땅히 머물 바의 곳이 있음을 말했고, 第二節은 사람은 마땅히 머물 바의 곳을 마땅히 알아서, 머무는 일에 대해서 말했고, 第三節은 聖人의 머무름이 至善아닌 것이 없어 그 머무는 바의 일을 가지고 말했고, 第四節은 明明德으로 至善에 머무는 것을 말하여 이에 至善의 體를 세운 것이고, 第五節은 新民이 至善에 머무는 것을 말하여 이에 至善의 用을 행한 것이다.

○ 雲峯胡氏曰

此章釋明德新民之止於至善兼釋知止能得 又兼釋八者條目 其中學是致知格物之事 自修是誠意 正心修身之事 親其親以至利其利是化及於家國天下

此章은 明德과 新民이 至善에 머무는 것을 해석했고 능히 얻어서 머물 줄 아는 것을 겸하여 해석했으며, 또 팔조목을 겸하여 해석했다. 그 중 學은 致知와 格物의 일이고 自修는 誠意 正心 修身의 일이다. 親其親에서 利其利까지는 교화가 家國天下까지 미치는 것이다.

○ 臨川吳氏曰

此章綿蠻詩承上文 物各有所止之意以明人當知所止之義而起下文實指人所當止者之說 此蓋發止於至善之端也 文王詩以下承上文人當知所當止之義而實指人所當止之處 淇奧切磋琢磨承上文實指人所當止之處而言 求止於所當止者之由 此蓋示止於至善之方也

此章에서 綿蠻詩는 上文에 만물이 각각 머무는 바가 있는 뜻을 이어서 사람도 마땅히 머무는 바를 알아야 된다는 뜻을 밝혔고, 下文에는 실제로 사람을 가리켜 마땅히 머무는 바의 설명을 시작했다. 이것은 대개 止於至善의 단서를 드러낸 것이다. 文王詩 以下는 上文에 사람은 마땅히 머무는 바의 뜻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어서 사람이 마땅히 머무는 바의 장소를 실제로 가리킨 것이다. 淇奧의 切磋琢磨도 上文에 이어서 사람이 마땅히 머무는 바의 장소를 실제로 가리킨 것으로 말하여, 마땅히 머무는 경로에 머무름을 구한 것이니, 이것은 아마 지극한 선에 머무는 방법을 보인 것이다.

瑟僩以下言明明德得止於至善之極而發新民之端 烈文詩以下承上文民不能忘之說而言新民得止於至善之極以著明明德之效 此蓋極言止於至善之效也

瑟僩 以下는 明德을 밝혀서 至善에 머무는 것의 지극함을 얻는 것을 말하여, 신민의 단서를 드러낸 것이다. 烈文詩 以下는 上文의 백성이 잊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설명에 이어 신민이 止於至善의 지극함을 얻음을 말하여 明明德의 효험을 나타낸 것이니 이것은 아마 止於至善의 효험을 극단적으로 말한 것이다.

 

此章內 自引淇澳詩以下 舊本 誤在誠意章下

이 장 안에 기욱 시를 인용한 데서부터 이하는 구본에 잘못되어 성의장 아래에 있었다.

3장 끝

[출처] 第 3章 止於至善|작성자 주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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