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고전 속 정치이야기] 상호주의(相互主義)

bindol 2022. 6. 3. 05:30
[고전 속 정치이야기] 상호주의(相互主義)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북한정권을 제거하고 통일천하를 이룩한 조광윤이 조보(趙普)에게 물었다.

“당말 이래로 제왕의 성이 8차례나 바뀌었다.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나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되찾으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원인은 방진(方鎭)의 병권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군주는 약하고 신하가 강하면 천하가 안정되지 못합니다.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려면, 방진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대신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살도록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군대를 회수해야 합니다.”

조광윤의 친구 석수신(石守信), 왕심기(王審琦)는 궁실을 지키는 금군을 통솔하고 있었다. 조보는 여러 차례 조광윤에게 그들에게 다른 직무를 주라고 권유했다. 조광윤이 말했다.

“두 사람은 나의 오랜 친구다. 그들이 나를 배반할 리가 없다.”

“옳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군대의 인재들을 제어할 능력이 없습니다. 만약 군에서 누군가 반란을 일으키면, 그들도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조광윤이 석수신 등을 불러서 마음껏 술을 마신 후에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천자가 되고 보니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많다. 절도사 시절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할 지경이다. 자리란 누구든지 차지할 수 있으니, 누군들 나를 대신할 생각을 품지 않겠는가?”

석수신 등은 조광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다음날 그들은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도록 해달라고 애원했다. 조광윤은 그들에게 후한 상을 내려줬다. 얼마 후 조광윤은 석수신, 고회덕(高懷德), 왕심기, 장령탁(張令鐸)을 절도사로 임명하고 군직에서 해임했다. 병권을 독점했던 전전부점검(殿前副点檢)이라는 직책은 없어졌으며, 번진의 절도사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없어졌다. 조광윤은 조보의 계책에 따라 자신을 옹립한 공신들과 금군을 장악한 숙장들에게 술자리에서 이해득실을 밝혀 위해요인을 제거했다. 그들에게 경제적 특권을 주고 상하가 편안히 살자고 제안했다. 맹호를 길들여 순한 호랑이로 만들고, 해악을 이로운 것으로 변화시키는 고도의 모략으로 군신지간의 모순이 완화됐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당말에서 오대시대까지 중앙정부의 정변을 주도했던 병권의 소재여부이다. 하급군관에서 전전도점검을 거쳐 황제로 올라가기까지 조광윤은 병권이 정국의 변화를 주도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황제는 병권을 잡으면 흥하지만, 병권을 잃으면 망했다. 곽위(郭威)와 자신이 군대의 추대로 황포를 걸치고 선위의 형식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던 전례가 자신에게도 미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장군들은 물론 심복이나 결의형제마저도 그들이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한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군주와 군대는 권력을 두고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역사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 조광윤이 그들의 병권을 해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조광윤은 장수들의 본성과 심리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병권을 해제하면서 실질적인 이득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득했다. 장군들은 빛나는 전공과 황제를 옹립하는 공을 세웠지만, 공이 높으면 군주를 두렵게 만들기 때문에 언제 화가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목숨이 위태롭게 될지도 모르는 미묘한 상황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병을 핑계로 병권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조광윤의 계획이 적중했던 것은 피차 상대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조광윤은 경제적 부를 보장하고, 장군들은 병권을 돌려줬다. 그들은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서 최악의 분쟁을 피하고, 이득을 후대에 전했다. 지혜로운 사람들끼리는 이상적 결론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