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13] SF라는 사고실험

bindol 2022. 9. 28. 05:42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13] SF라는 사고실험

입력 2022.09.20 03:00
 
 
 
 
 

과학에서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은 실제 실험 대신에 상상 속에서 수행하는 가상 실험을 의미한다. 사고실험은 과학의 모델이 작동하는 방식과 새로운 과학적 이해가 얻어지는 과정을 교육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사고실험이 가능하다. 해수면이 상승해도 우리는 지금처럼 살 수 있을 것인가? 의학이 계속 발달해서 사람의 수명이 연장된다면 노인들은 더 행복할 것인가? 지능을 가진 기계와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사고실험에 대해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해답은 미래 예측서가 아니라 ‘과학 소설’(science fiction, SF)에서 찾아진다.

첫 번째 SF로 꼽히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만든 괴물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그를 버려둔 채로 도망갔다. 소설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했기에, 출간된 지 200년도 더 지난 이 책은 지금도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게 하는 데 유용하다.

기발한 상상으로 가득 찬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넉나그에 사는 죽지 않는 사람들 얘기가 등장한다. 처음에 걸리버는 이들을 부러워했지만, 자세히 관찰해본 결과 이들은 죽지만 않을 뿐, 몸과 마음이 모두 하염없이 늙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45년에 특이점이 도래해서 인간이 불멸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하는 지금, 넉나그인들에 대한 스위프트의 묘사는 ‘불멸이 축복인가’라는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하게 해 준다.

 

SF 마니아들 사이에서 큰 인기몰이를 한 영화 ‘매트릭스’를 놓고도 다양한 사고실험이 가능하다. 영화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잡아 사육하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주인공 네오가 이런 기계에 저항한다. 관객은 기계가 인간을 사육하는 장면을 보면서 치를 떨지만, 영화의 설정과 지금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동물을 좁은 공간에 넣어 사육하면서 결국에는 잡아먹는 것과 차이가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21세기 문해력의 핵심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만남이 만드는 위험과 가능성을 읽어내는 데 있다. 이것이 미래 인류와 미래 세상에 대한 흥미로운 사고실험으로 가득한 SF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