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6690)大漢門 발행일 : 2006.01.04 / 여론/독자 A30 면

덕수궁에 환궁해서 한동안 무당들이 정권을 쥐고 흔들었던 때가 있었다. 민황후의 환궁을 예언한 여주 무당 신령군(神靈君)이 세도가로 득세하고 있던 친로파 이범진(李範晋)을 앞세워 정국을 주름잡아 흔들었다. 갖은 복색의 무당들이 덕수궁에 널려앉아 복채로 정치를 하고 별의별 해프닝들이 연거푸 일어났었다. 러시아계 무당인 정길당(貞吉堂) 아부인(俄夫人)은 40년 전 그의 아버지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았었다는 오로지 그 한 연고만으로 동방정교를 내세우며 충청도 남포지방에서 몽매한 백성의 금품을 갈취하고 다녔다. 바로 그 아부인이 덕수궁 정문 위에 하강한다 하여 팔도의 무당들이 집결하기도 했고, 그와 때를 같이하여 친일파인 배정자(裵貞子)라는 양장 여인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끼고 덕수궁 대안문을 드나들기에 국운이 갓 쓴 계집에게 치여 이 꼴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곧 덕수궁 문이름에 갓(보닛) 쓴 여인(安)으로 이 아부인과 왜부인을 지목했다.
이 풍문을 가라앉히기에는 당시 허약해진 국력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지 대안문을 대한문으로 고쳤고, 고친 후에도 친일파가 득세하자 대한문 글씨를 이완용이 썼다는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공식 기록에 대한문의 글씨는 당시 덕수궁 특진관이던 남정철(南廷哲)이 쓴 것으로 돼 있다.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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