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슬픔이 마렵다

bindol 2022. 10. 15. 11:00

[이규태코너] 슬픔이 마렵다

조선일보
입력 2004.05.28 18:49
 
 
 
 

지금은 쓰지 않지만 옛 우리 조상들 대변을 대마(大馬), 소변을 소마(小馬)라 했다. 그래서 대소변을 본다는 것을 말(馬) 본다 했다는 것이 선조 때 판서 이기의 ‘송와잡설(松窩雜說)’에 나온다.

조선조의 일본 외교사절인 조선 통신사의 한 사신이 사관에 들어 변기를 들여놓는 것을 보고 그것이 뭣이냐고 물었던 것 같다. 일본말로 변기를 뜻하는 ‘오마루’라 하자 마루를 ‘말’로 듣고 한국말과 일본말이 같은 것에 놀라는 대목이 사신 기록에 나온다. 중국에서 휴대용 변기 곧 요강을 수자(獸子)라 하는데 변을 보기 편리하게끔 변기 모습을 짐승 허리처럼 만든 데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이기가 귀빈(貴賓)의 집에서 쓰는 변기를 보았는데 복판을 비게 하고 말 허리처럼 잘록하게 굽어 있음을 보고, 말 본다는 말이며 대마, 소마의 어원을 추리해 놓고 있다. 마렵다는 말도 이와 연관시켜 말 허리를 뜻하는 마요(馬腰)에서 비롯되어 ‘마엽다→마렵다’로 변한 것으로 추리를 비약시키고도 있다.

마렵다는 말은 인체의 내부에서 외부로 배출하는 생리적 욕구를 나타내는 말로 국어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생리적 배설인 대변이나 소변에만 국한될 뿐 희비애로(喜悲哀怒)나 욕망이 유발하는 생리적 배설인 눈물이 마렵다, 군침이 마렵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 더욱 심정적 배설인 슬픔이나 기쁨이 마렵다느니 노여움이 마렵다고 쓴 사례는 본 기억이 없다.

 

한데 일전 시집을 낸 한 여류시인의 인터뷰 신문기사에서 ‘슬픔이 마려울 때 시가 쓰여진다’는 대목을 보았다. 육체적 욕구의 예비 단계만을 표현하는 말을 심정적 욕구에까지 확대 원용한 것인데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는 데서 한국말의 우수함을 새삼스레 절감하게 된다. 슬프다는 말은 이 세상 어느 나라에도 다 있지만 그 슬픔에 이르기 직전의 예비슬픔 단계를 나타낼 수 있게끔 된 말의 구조가 우리말 이외 어떤 다른 나라에 있을까 싶다. 오묘한 심정 경지가 복합된 시 세계를 누비는 데 활용도가 비상한 우리말임을 확인하고 싶은, 마려운 슬픔이다.

(이규태·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