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상트페테르부르크

bindol 2022. 11. 2. 07:52

[이규태 코너]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선일보
입력 2003.05.28 19:58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시킨의 시(詩)에 인공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이미지를 읊은 대목이 나온다. 자연과 인간에 역행하여 뻘밭에 만든 이
도시ㅡ그래서 성난 자연이 이따금 홍수라는 형태로 복수하는
도시ㅡ홍수에 약혼자를 잃은 이프게니는 이 도시를 만든 표트르대제의
청동상에 삿대질하고 대어든다는ㅡ. 낙후된 러시아를 유럽의 선진대열에
동참시키려는 웅도 아래 700년 전통의 러시아문화와 생활방식과 관행을
매장하고 이 도시를 만든 다음 서구(西歐) 테크노크라시를 도입하고
독일인 정치가를 등용했으며 왕비와 왕자에게 프랑스말을 상용하도록
시켰을만큼 프랑스문화를 섭취했다. 이 급속한 서구화를 불신한 슬라브
전통주의가 깔린 위에 표트르 혁명 없이 오늘의 러시아가 있을 수 없으며
제2의 표트르 혁명이라는 미래상을 내어 건 가운데 전 세계정상들의
축복을 받으며 이 도시 건설 300주년 축제가 진행 중이다.

이 도시 이름이 다섯 번이나 바뀐 것도 러시아 근대사의 무상을
말해준다. 네덜란드의 조선(造船)기술에 심취했던 표트르 대제에 의해
지어진 맨 처음 이름은 네덜란드 발음인 상트피테르부르흐였다. 그 후
독일 편애로 돌아서 독일발음인 상트페테스부르크로 바뀌었다가 1차대전
때 독일과 싸우면서 슬라브 발음인 페테르그라드로 주체화했다. 혁명 후
레닌그라드로,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복원한 것이다.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럽다는 예카테리나궁
호박방(琥珀房)의 세계정상들의 연회다. 107년 전 니콜라이황제의
대관식에 특사로 갔던 민충정공이 이 호박방에 들러 '밀화(蜜花)를
조각하여 사벽을 장식하고 별의 별 문양의 보석을 박은 방'으로
묘사했던 바로 그 방이다.

또한 축제 기간 중 세계적 보물인 에르미타주미술관의 공작 황금시계가
시보를 울린다고도 한다. 이 역시 민충정공이 '황금나무에 황금공작 한
마리와 황금닭 두 마리가 제 시간 되면 날아서 울어 시종(時鐘)을
대신하고 있으니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고 써 남긴 보물이다. 공작이
울면 만조(萬鳥)가 울음을 멎는다던데 이라크전쟁으로 악화된 국가 간의
앙금이 어떻게 풀리며 북한의 핵을 둔 공감대가 어떻게 맥락될지
기대되는 공작일성(孔雀一聲)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