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호박방(琥珀房)
러시아의 옛서울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에 푸슈킨이라는 고을이 있다.
러시아 국민시인 푸슈킨이 이 고을에 있던 고등학교 졸업생이라 하여
볼셰비키 혁명 후 고을 이름을 그렇게 바꾸었다. 이곳에 러시아를 부강케
한 표트르1세의 황후 이름을 딴 예카테리나궁(宮)이 있고 넓은 프랑스
정원에 둘러싸인, 길이 300m에 55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그 궁의 방
가운데 하나가 호박방이다. 이 방은 사방 14m, 높이 5m의 방 전체를 7t의
호박 판 22개로 장식한 세계에서 가장 호사스런 방이다. 이 방이 히틀러
군대에 약탈당한 지 60년 만에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엊그제
공개되었으며, 오는 27일에 성대한 오프닝 행사를 벌인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행사에 47개국 정상이 초대될 것이라 한다.
'호박방'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흥부가 박 하나를 타니 금은보화가
가득 쏟아져 나오는지라 월계수로 기둥 삼고 은판자로 지붕 이고
금판자로 마루 깔고 호박판으로 도배한다 했으니 표트르대제나
예카테리나1세 이전에 흥부가 먼저 호박방에 살았다 할 것이다. 이처럼
호박방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호화주택의 극치였다. 소나무 진이 땅속에
들어 천년 묵으면 복령(茯 )이 되고 복령이 천년 묵어 호박이 되는
것으로 문헌에 나온다. 「본초강목」에 보면 단풍나무의 진을 비롯, 모든
나무진의 화석이 호박이라기도 했다. 실학자 이익(李瀷)은 주자설을
원용, 호랑이가 죽을 때 눈에서 혼백(魂魄)을 땅에 쏘는데 밤에 보면
광채가 나고, 그곳을 눈여겨 두었다가 파면 호박이 나온다고도 했다.
궁전에 호박방을 만든 저의는, 호박을 마찰하면 흡인력이 생기기에
사랑의 묘약(妙藥)으로 여기고 있던 터라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황후와의 금실을 위한 것이라기도 하고, 호박기운을 쏘이면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은 동서가 다르지 않았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송나라 고조가 그 많은 보물 가운데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이
호박침(琥珀枕)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북유럽의 문물이 지중해
연안으로 흘러가는 길을 앰버 로드, 곧 호박 길이라 했을 만큼 발트해
연안에 많이 나는 호박이 남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그 현물을 보유하는
수단으로 호박방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하여 러시아는 최상급
관광자원 하나를 얻은 셈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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