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참기름

bindol 2022. 11. 3. 16:12

[이규태 코너] 참기름

조선일보
입력 2003.05.14 20:35
 
 

한국사람에게 별나게 민감한 미각으로 고소한 맛을 들 수 있다.
영어로는 고소하다는 말이 없고 '참깨 맛'이라 하고 일본 말도
'간(香)바시' 곧 향기롭다고 표현할 따름이다. 고소하다는 말이 있다는
것은 그 맛이 민족문화에 절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도적의 보물 소굴에 들어간 알리바바 형은 그 바위문이
열리는 주문을 잊어먹어 도적에게 잡혀 죽는다. 그 주문은 '열려라
참깨'다. 이 말이 영어세계에 들어와 원하는 대로 되는 만사형통을 오픈
세서미, 곧 '열려라 참깨'라 한다. 참깨가 주문에 활용됐다는 것은
아랍문화권에서의 참깨의 비중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참깨는 서역 대완(大宛)국 원산으로 한나라 때 장건(張騫)이 들여왔으며
고문헌 '제민요술(齊民要術)'에 참기름(胡麻油·호마유) 짜는 방법이
실려있다. '본초강목'에 곡식밥을 끊고 참기름만을 주로 먹고 산
노(魯)나라 여인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80노령인데도 소녀같고 하루에
300리를 달리는데 노루나 사슴처럼 뛰었다 했다. 참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낙랑시대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목은집(牧隱集)'에 약밥
만드는 데 참기름을 쓴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뭣보다 참기름 문화를
한반도에 발달시킨 요인은 땅이 좁고 각박한 데다 잦은 흉년으로
조상들이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산나물, 들나물을 목구멍에 넘기는 데
불가결했기 때문이다. 영양도 없고 맛도 없는 푸새에 참기름이 영양과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참깨를 효마자(孝麻子)로 부르기도 했는데 아들 한 명보다 노부모에게
효도를 더한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참깨를 상식하면 늙어서 닥치게
마련인 풍을 쫓고 희어진 머리를 검게 해주며 근심걱정을 날려준다 하여
이를 참깨의 삼거지덕(三去之德)이라 했다. 참깨의 주성분으로 36%를
차지하는 지놀레닉산(酸)은 탈(脫) 콜레스테롤 작용을 하고 따라서
동맥경화에서 야기되는 풍을 없애주며 건망증·우울증·불안증을
야기시키는 뇌 속의 제시틴 결핍을 참깨가 보충해 주기에 삼거지덕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셈이다. 이번에는 미국 고혈압학회에 보고된 인도
의학자들의 임상실험에서 참기름 투여군의 혈압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결과가 보도되어 삼거지덕이 보다 과학적 바탕을 얻게 되었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