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姑婦 新聞觀

bindol 2022. 11. 7. 07:32

[이규태 코너] 姑婦 新聞觀

조선일보
입력 2003.04.03 20:05
 
 
 
 

며느리 흉보지 않으면 시어머니들 만나는 재미가 없다. '우리 며느리
부뚜막에 앉아 이마 털 뽑는다' 하면 '우리 며느리 호롱불에 속곳
말린다' 하고 '우리 며느리는 주걱으로 이 잡아죽인다'고 한다.
시어머니에게 예쁜 며느리 없는 걸 보면 구조적인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분신(分身)처럼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아들을 며느리가 가로챈 데
대한 원천적 질투 때문인지 시어머니의 가계권(家計權)이 옮아가는 데
대한 불안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선지 며느리 증오하는 속담이
우리나라처럼 많은 나라도 없다. 며느리는 비빔밥 그릇 씻게 하고 딸은
흰죽 그릇 씻게 하며, 며느리는 갈퀴나무 불을 때게 하고 딸은 장작불
때게 한다. 며느리는 콩쥐요 딸은 팥쥐며, 며느리 사돈은 짚방석에
앉히고 딸 사돈은 꽃방석에 앉힌다. 심지어 요강 소리도 딸은 은조롱
금조롱 하는데 며느리는 물보 터지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실제와는
아랑곳없이 원천적으로 며느리는 밉고 싫고 딸은 곱고 좋다.

한 야당의원이 현 정권의 신문관을 시어머니 며느리 대하듯 하고
시민단체 감싸기를 딸 대하듯 한다는 비유를 했다. 정치가 지나치게
나가는 것을 견제하는 기능이 언론이기에 정치는 신문이 며느리처럼 미울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정권과 신문기능인 언로(言路)
언관(言官) 사관(史官)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였고, 그 사이가 나빠야
좋은 세상이라는 역설도 성립된다. 조광조(趙光祖)와 신진 선비들을
거세하고자 일으킨 기묘사화를 모사하던 어전(御前)에서 사관이던
채세영(蔡世英)의 사필(史筆)을 빼앗아 조광조의 죄를 만들어 쓰려 하자
끝내 빼앗기지 않고 본인 없이 죄를 만드는 것이 부당함을 당당히 논하여
좌중의 목을 움츠리게 했다.

채세영은 기묘정권에는 미운 며느리였지만 '임금 앞에서 붓을 빼앗은
사람'이라 하여 역사에서는 곱게 살아있다. 구약성서에서 일신교를 믿는
시어머니(나오미)는 다신교를 믿는 과부며느리(룻)의 앞날을 위해 곁을
떠나려 한다. 하지만 며느리는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가 이삭을 주워
봉양을 하여 스스로를 희생, 상대를 위하는 고부 간의 본을 보였다.

지금 접촉차단 등으로 언로를 막고 정언간에 골이 깊어만 가는데,
견제하면서 도와주고 경원하면서 위해주는 나오미와 룻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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