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반지 키스
우리 조상들도 경기에 승리하면 달려가 키스하는 관행이 있었던 것 같다.
명종 때 학자 유희춘(柳希春)이 남긴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활
겨루기에서 이긴 친구가 신이 나서 달려와 나의 등을 두들기더니 끝내는
나의 입에 합구(合口)까지 했다.」 합구는 입을 맞춘다는 뜻으로 키스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영웅 에프타가 전쟁에 이겨 개선할 때 맨 먼저
달려와 키스하는 사람을 신에게 희생하기로 서약했었다. 전승을 가장
기뻐하는 행위가 키스임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에프타는 맨
먼저 달려와 키스하는 외동딸을 신에게 바친다. 이처럼 승리에 키스가
따르는 데 동서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옛 할머니들은 손자가 손가락을 다치면 호호 불며 볼과 입술에 가져다
댔다. 노름꾼들도 나누기 전의 투전에 합구하고 서약을 할 때면 성서에
키스하듯이 초자연적인 힘을 불러들일 때 입술을 댔다.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멀어져가는 사람에게 행운과 믿음과 사랑을 전달할 때는 자신의
손에 키스를 하고서 상대에게 던져보였다. 그 초월적 힘을 대행하는 것이
반지였다. 성직자가 서임하면 추기경은 루비반지를 끼는 등 위상에 맞는
반지를 끼는데, 바로 보이지 않는 신과의 약속의 증거다. 구약성서
시대부터 계약문서 외교문서 결재서류에 서명 대신 반지 도장을
찍었음으로 미루어 반지는 신이 보증하는 자신의 동일성이다. 솔로몬이
반지의 힘으로 우주의 신비와 통치의 슬기를 얻었다듯이 중세 유럽에서는
특정 성인의 이름을 새긴 반지를 낌으로써 그 성인의 가호를 받는 것으로
믿었다.
월드컵 진행 중 골을 터뜨리면 다양한 세리머니가 연출되는데
대()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터뜨려 세상을 놀라게 했던 안정환 선수는
왼손 반지에 키스를 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한데 반지 키스로 유명한
것은 스페인 팀의 스타 플레이어 라울이다. 그는 골을 성공시켰을 때마다
오른손 반지에 키스를 했다. 신의 가호에 감사하고 신의 가호를 계속
기원하는 왼손과 오른손의 반지 키스다. 그 신의 가호농도(濃度)를 두고
안정환과 라울이 오늘 격돌한다. 둘 다 미남이라는 것과 둘 다 미녀의
뒷바라지를 받고있다는 것 둘 다 고득점자라는 것이 같으나, 다른 것이
있다면 왼쪽 반지냐 오른쪽 반지냐의 좌우충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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