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장닭과 프랑스

bindol 2022. 11. 23. 05:55

[이규태 코너] 장닭과 프랑스

조선일보
입력 2002.06.12 18:54
 
 
 
 


월드컵 대(對) 덴마크전 프랑스 응원석에서 장닭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도 장닭 문양이 박혀 있었다.
영국의 상징이 표범이요 벨기에의 상징이 사자이듯이 장닭은 프랑스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어제 아침 모든 신문에 클로즈업된 프랑스
예술축구의 영웅 지단은 그라운드에 쓰러진 장닭이었다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자존심과 기대가 그에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광명의 아침을 고하는 장닭이기에 대부분 문화권에서의 장닭 이미지는
긍정적이다. 장닭의 울음이 어둠을 쫓는다 해서 어둠으로 상징되는
악마나 악귀·불행을 쫓아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정초에 대문에 붙이는
세화(歲 )에 장닭을 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에 빠져죽은 사람의
영혼을 찾는 데 장닭을 물 위에 띄우는 것이며 소크라테스가 죽으면서
남긴 장닭 유언은 암흑인 죽음의 세계에서 영혼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이
어둠을 쫓는 장닭이라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장닭 이미지가 긍정적인 것은 동서가 다르지 않은데 하필 프랑스와
결부된 데는 두 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로마시대 지금의 프랑스 지역을
갈리아라 불렀고 그땅에 사는 사람을 갈리아인이라 했다. 그래서
갈리아는 프랑스를 뜻하는 접두사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이를테면
'갤로아메리칸'하면 프랑스계 미국인을, '갤로매니아'하면 프랑스
심취(心醉)를, '갤러컨'하면 프랑스 천주교도를, '갤리시섬'하면
프랑스 어법을 의미하듯이. 그 갈리아의 라틴말 어원인 'Gallus'는
같은 라틴말로 장닭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말로 계(鷄)와 길(吉)의
발음이 같다 해서 닭을 길조(吉鳥)로 여기듯이 갈리아와 닭이 동의어래서
결부된 것일 게다.

또한 장닭은 긍지나 자존심의 상징이기에 갈리아인의 민족성에 부합되어
국가의 상징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중국에서 장닭 볏이 자존심과
권위의 상징이 돼있는 것과도 상통한다. 17세기 프랑스 주화(鑄貨)에
장닭과 그 날개 아래에 수호된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섬에 유폐당했을 때 영국에서는 우리에 갇힌 장닭으로
나타냈었다. 그 장닭의 자존심 때문에 쓰러진 지단의 모습은 프랑스
사람에게 한결 처절하고 아프게 와닿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