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책방 이야기

bindol 2022. 11. 23. 06:00

[이규태 코너] 책방 이야기

조선일보
입력 2002.06.07 19:13
 
 
 
 


개화기 서울의 책방들은 종각(鐘閣)에서 수표교 돌다리에 이르는 길가에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전통 책방은 둘로 갈라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속칭 양반책방으로 책만 파는 전용 전방이다. 전방 안에 깔아놓은
판자에 책을 펴놓긴 했으나 값지고 품위있는 책은 숨겨놓고 팔기에 안에
들어가 주인에게 물어야 다락에서 꺼내 놓았다. 주인은 갓을 쓰고 장죽을
물고 거만했다고 외국인들이 적고 있음으로 미루어 고급문화를 파는
긍지와 체통을 지녔던 것 같다. 양반책방과 대비해 상놈책방으로
속칭되었던 다른 하나는 담배·쌈지·망건·붓·종이 등 잡화를 파는
노점상이 한쪽에 대중적인 책을 늘어놓고 팔거나 빌려주기도 하는
세책가(貰冊家)다. 양반집 마님 찾아다니며 베갯머리에서 책을 읽어주는
책비(冊婢)를 휘하에 많이 거느릴수록 수입이 많았으며 북촌 세도가에
책을 대는 세책가는 벼슬줄을 잡고 있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궁에
단골로 책을 대는 세책가는 구품벼슬인 참봉으로 우대받으며 장사를
했다.

이 종각 이웃의 기와집 책전 가운데 하나가 근대식 서관으로 탈바꿈한
것은 1907년이었다.그 무렵 번역성서를 보급하는 데 바이블 우먼이라
하여 여신도를 대거 동원했다.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이 성서수요를
감당하고 팔도에 번져나가는 바이블 우먼을 총괄하는 거점이 절실해진
것이다. 성서출판 전문가 올링거 목사는 아펜젤러의 배재학당 안에
삼문출판사를 두어 성서 간행과 판매를 맡더니 1906년 봄에 2만부의 성서
신판이 나오자 첫날에 품절되는 그 수요를 감당하기에 규모가 적어
한국예수교문서회를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1907년에 종각 책방거리에서
발족한 한국기독교서회의 전신이다.

이것이 근대화된 한국 서점의 효시로 후에 종로서적으로 변신, 한국
굴지의 대서점으로 군림해왔다. 근 백년 한국문화사의 한 뼈대가 돼온 그
종로서적이 부도로 문을 닫았다. 첨단화하는 경영에 등한했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그것은 지엽적인 것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그를 통해 문화흡수를 해온 영상(映像)세대의 두뇌회로(回路)는 책을
통해 문화를 흡수했던 활자세대의 두뇌회로와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영상세대는 책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종로서적 폐쇄의
주원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