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呪術 축구

bindol 2022. 11. 23. 06:02

[이규태 코너] 呪術 축구

조선일보
입력 2002.06.06 22:29
 
 
 
 


월드컵에 진출한 5개 아프리카 팀 가운데 나이지리아를 제외하고는
팀에 주술사(呪術師)를 참여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기 팀을
승리로 이끄는 데 초자연적인 주술을 부린다는 것이 된다. 아직도
지구촌에는 주술이라는 원시적 사고방식이 도처에 남아 있으며, 그것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음이 월드컵에서 입증된 셈이다.
명성황후는 정동에 있는 단골 무당을 시켜 앙숙이던 대원군을
저주(詛呪)한 사건이 있었다. 신당에 대원군 화상을 그려붙이고 왼손으로
활을 쏴 맞히기를 거듭했던 것이다. 같은 것끼리는 같은 효과를 낸다는
유감주술(類感呪術)로 앙숙을 육체적으로 해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제주기생 애랑은 떠나가는 배비장에게 사랑의 증표로 이(齒)
하나를 빼 갖는다. 옛 기방에서 이를 빼 가짐으로써 아무리 멀리
떠나더라도 변심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었던 감염주술(感染呪術)이다. 이
두 가지 주술로 비도 내리게 하고, 병도 낫게 하고, 사냥도 잘 되게
하고, 싸움도 이기게 하며, 질투로 사랑을 빼앗아 올 수 있으며, 미운
사람 병신으로 만들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원시사고에서 자연스럽다.
하물며 축구시합에서 상대편을 불리하게 하고 자기 편을 유리하게 주술을
부릴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남부에서는 사냥나갈 때 발이 빠른 쥐털을 머리에
섞어땋으면 발이 빨라 추적이 수월하고, 야수의 급습을 받았을때 무난히
빠져나갈 수 있는 주력을 얻는 것으로 알았다. 그대로 축구에 이용하면
우리 편을 유리하게 하는 주술이 된다. 상대선수의 머리카락 손톱 침을
비롯, 몸씻은 물 체취가 스민 옷을 구해 밀랍(蜜蠟)에 섞어 인체를
만들고 해치고 싶은 부위에 못을 박으면 그 선수의 그 부위에 탈을 나게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골대에 유감(類感)·감염(感染)주술을 부려
골을 흡인할 수도, 또 미끄러져 들어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음직하다. 원시사회에서는 이 주술을 관장하는 주술사가 추장이나
임금보다 권위가 컸으며, 신라 초기의 임금들을 주술사를 뜻하는
'차차웅'이라 불렀음도 바로 주술사가 임금을 겸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물론 주술의 효력에 대해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 그를 믿는 사람들의
심리나 사기에는 플러스 효과가 없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