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영산재(靈山齋)
월드컵 기간 중 한국에 들른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준 높은 전통문화
이벤트로 종묘대제와 영산재를 들 수 있다. 석가모니가 살았을 때 자주
들렀던 왕사성(王舍城)을 나와 영취산(靈鷲山)에 오르면 그 정상에
부처님 시절에 쌓았다는 네모 반듯한 축대가 나오고 그 위에 벽돌 건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석가모니가 살았을 적에 가장 많은 설법을
했다는 현장이다. 영취산에는 부처님이 오래 머물렀다는 동굴도 찾아볼
수 있고 데바닷다가 바위를 굴려 부처님을 해치려 했다던
빈비사라도(道)도 걸을 수 있다. 법화경(法華經)에 부처님은 열반에만
계시지 않고 지금도 영취산에 나와 제도(濟度)를 하며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어도 이곳만은 안전하다는 영취산이다. 이 영취산의 부처님
주도의 법회를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 하고 영산회상을 의식화한 것이
영산재다. 영산재는 불교에서 파생한 한국 문화의 집대성인지라
월드컵기간 동안 한국을 깊이 알고 싶어하는 외국 사람들을 위해
영산재의 본고장인 서울 신촌 봉원사(奉元寺)에서 한달 동안 내내
피로하기로 했다 한다.
영산재는 부처님을 그린 커다란 불화를 내걸어 영취산의 법석에 임하는
의식인 괘불(掛佛)로 시작되는데 옛 어머니들 이 괘불을 세 번만 보면
극락왕생한다 하여 몇백리길 노숙하며 더러는 노모 노부를 업고
찾아왔다던 영산재다.
「얇은 사(紗)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던 승무ㅡ살풀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무용 가운데 하나인 승무도 바로 영산재의 춤가운데
하나다. 두 팔을 둥글게 휘둘러 손바닥을 맞추고 다시 맞춘 손바닥을
이탈시켜 크게 둥그러미를 그리며 허리를 굽혔다 세운다. 이 세 가지
연속동작은 원만(圓滿)·자비(慈悲)·귀의(歸依)를 나타내는 염원
표출이다. 이 염원표출이 우리 어머니들 먼동이 틀 때 정화수 떠놓고
하던 바로 그 큰절로 보편화하였으니 우리 힘없는 많은 민중을 얼마만큼
정신적으로 구제했던 동작인가. 판소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음악인
범패(梵唄)도 바로 이 영산재가 고향이다. 소리의 높낮이며 요란스럽지
않은 장단으로 인간 심성속의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잔잔하게
녹여주는 범패로 억눌리고 쪼들려 살았던 우리 서민들. 그로써 마음
가라앉히길 얼마나 했던가.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 코너] 木魚 (0) | 2022.11.23 |
---|---|
[이규태 코너] 축국(蹴鞠) (0) | 2022.11.23 |
[이규태 코너] 頭球(두구) (0) | 2022.11.23 |
[이규태 코너] 왕관의 무게 (0) | 2022.11.23 |
[이규태 코너] 폴란드 (0) | 2022.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