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美白 화장품
밤에만 피는 분꽃은 뒤란 돌담밑이나 장독대가 가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길렀다. 그 씨앗을 갈면 가루분이 되고 그 꽃분을 바르면 얼굴이
달빛같은 은은한 기운이 돈다는 전통 미백(美白) 화장품이다. 얼굴을
곱게 보이려는 행위는 양가에서 할 짓이 아니라는 체면 때문에 숨어서
기른다기도 하고, 중국사신이 오면 얼굴 희어진다는 조선 꽃분이
뇌물로써 선호되어 그 수탈을 피해 숨겨서 기른다고도 했다.
분꽃을 둔 이런 민요가 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월궁항아(月宮姮娥) 노던 달아 /밝게 밝게 비추어서 /분꽃속에 스며들어
/항아처럼 하얀 얼굴 /우리 님이 반기게끔.」 밤에만 피어 달의 몽환적인
기운을 흡인해 두었다가 그 기운을 여인의 얼굴에서 재현시킨 것이 된다.
독일의 관념철학자 헤겔은 「미학」에서 말했다. 「살아있는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것은 극락조(極樂鳥)일 것이나 그 아름다움은 외부로부터
빛을 받아 영롱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의 살결은 내부에서 빛이 스며나와
아름답다.」 한국여인이 피부에서 추구했던 아름다움은 어스름히
스며나오는 월백미(月白美)였다.
이에 비해 서양사람들이 추구해온 것은 아마색 머리에 하얀 얼굴·파란
눈동자의 블론드였다. 성모나 천사는 모두가 블론드요, 악마는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에 흰색 아닌 얼굴을 하고 있는 데 예외가 없다.
페트라르카의 서정시에 나오는 연인 라우라는 석고같은 흰 얼굴에
파란눈이요, 독일 중세의 영웅 서사시 「니베른겐의 노래」의 여주인공은
밤에도 주변이 밝을 정도의 하얀 얼굴이다. 19세기 중엽 이전까지의 유럽
저명미술관에 걸렸던 초상화 가운데 블론드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북구형 블론드에서 남구형의 갈색
피부에 검은 머리·검은 눈동자의 블루넷 선호가 웃돌아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인권·인종차별과 맞물려 반(反)백색피부운동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보도된바로 피부미백의 과장광고로 1g당 값이 금값보다 비싼
수입화장품이 당국에 적발되었는가 하면, 말레이시아에서는 미백 화장품
광고가 인종차별주의 소행이라 하여 이를 규제하는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한다. 백색 군림시대는 가고 한국여인의 월백미색 같은 고유미시대의
자연스런 반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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