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다시「파리의 등불ㅡ」

bindol 2022. 11. 26. 08:38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다시「파리의 등불ㅡ」
입력 2002.04.21 18:47:20

전라도 순창에 신경준(申景濬)이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신숙주의 형제인 신말주(申末舟)의 후예다. 각종 수레를 개발하여 교통과 전쟁에 이용해야 한다는 이분의 상소문 속에 하늘을 나는 날틀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포위된 진주성 안에 갇혀있던 재간있는 어느 한 분이 하늘을 나는 수레를 만들어 가족과 친지를 성밖으로 탈출시켰는데 그 수레의 성능에 대해 30여리 날았다 했으니 12㎞ 난 것이 된다. 비행기를 발명했다는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기는 1903년 말에 노스캐롤라이나의 사막에서 36㎞ 날았으니 그 수백년 전의 한국비행기의 겨우 3배를 더 난 셈이다. 다시 그 4년 후 플라이어 3호기가 40㎞ 비행 기록을 세우자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군사목적으로 라이트 쌍엽기(雙葉機)를 만들게 하여 항공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하지만 1920년대만해도 비행기 타고 곡예를 하거나 날개 위에서 테니스를 하는 등의 쇼 비행이 전부였지 우편이나 군사·여행용으로는 비행거리가 너무 짧았다. 이 무렵 파리 출생의 뉴욕 호텔재벌 한 분이 파리∼뉴욕 간의 시간·공간 거리를 좁히면 떼돈을 벌 것 같아 대서양 무착륙 비행 성공에 2만5000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이에 도전한 것이 26세의 찰스 린드버그다. 1927년의 일이다. 그는 단발 단엽기 스피릿 오브 센트루이스호를 타고 롱아일랜드를 출발했다. 엔진에 채운 1700ℓ의 연료로 30시간이 고작인데 28시간이 지나도 나타났어야 할 아일랜드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어선 하나를 발견하고 기수를 내려 마스트에 닿을랑말랑 접근하여 아일랜드 가는 길이 맞느냐고 물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런 지 1시간 후에 아일랜드가 보였고 33시간 반 만에 파리의 등불이 눈 안에 든 것이다. 「날개여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라는 말은 린드버그뿐 아니라 당시 1차대전 후 희망을 잃은 유럽사람들에게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어 번져나갔다. 이렇게해서 세계적 영웅이 된 것이다. 그런 지 75년 후의 그날인 오는 5월 1일 린드버그의 손자인 민간 조종사 에릭(36)이 19만달러를 들여 특별히 주문한 센트루이스호로 할아버지가 날았던 궤적을 날 것이라 한다. 중국민항기의 추락으로 암흑이 깔린 저멀리 수평에 파리의 등불이 반짝일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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