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주름살 약

bindol 2022. 11. 26. 08:39

[이규태 코너] 주름살 약

조선일보
입력 2002.04.19 19:02
 
 
 
 

부모의 결혼 60돌인 회혼(回婚)잔치 때 「주름살 펴기」라는 절차가
있다. 할아버지가 됐을 아들들에게 때때옷 지어입혀 노부모앞에 기어나가
아양을 떨게 하는 해프닝이다. 노부모를 즐겁게 해드린다 해서 주름살
펴기라 불렸을 것이다. 처음 수확하는 햇과일은 마을에 일정 연령이 넘은
노인에게 갖다드리는 것이 관행인데, 이것도 주름살 펴기라 했다.
주름살은 바로 인생고(人生苦)의 축적이요 늙음의 상징이다. 주름살
펴기와 같은 뜻인 추신(皺伸)이란 말이 한적(漢籍)에도 있으며
유교문화권에 마음의 주름살 펴드리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진시황은 불사약을 구하려 나라를 기울게 했다지만 로마의 네로황제는
늙지 않게 하는 불로약을 구하는 데 국고를 탕진했었다. 그의 아내
포파이어의 얼굴과 육체에서 주름살을 추방하기 위함이었다.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당나귀의 젖은 얼굴의 주름살을
없애고 살결을 섬세하게 한다」 하고 하루에 700번이나 당나귀젖 세수를
하는 부인이 있으며, 포파이어는 당나귀젖 세수를 생활화한 최초의
여인으로, 여행 중에도 그 젖을 대기 위해 50마리의 암탕나귀를 몰고
다녔다 했다. 루이 14세의 궁정 약제사였던 레므리가 써남긴
「화장술」에 보면 빗물이나 냇물로 세수를 하고, 또 그 물과 포도주
등으로 조제 주름살을 펴는 미용술을 적고 페르시아 은자(隱者)로부터
전수받은 비방으로 적어도 25세는 젊게 보이게 한다고 부연했다.
우리나라에도 부잣집에서는 섣달 납일(臘日)에 내린 눈을 받아 녹인
납설수(臘雪水)를 수십독씩 보관해 두었다가 이로써 세수를 하고, 그
물에 창포나 느릅나무 잎·유자를 달여 바르면 주름살이 생기지 않거나
주름골이 얕아지는 것으로 알았다.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은 얼굴이나 목의 근육 긴장을 완화시키는
주사역 보톡스를 주름살 펴는 의약으로 공식 인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미 미국의 유명배우들이 주름살 약으로 써왔던 것으로, 한 번 시술에
400달러가 드나 주사 30일 후에 효험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소멸이나
감소효과는 120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한다. 인류가 추구해온
불로약(不老藥)의 탄생으로 인류의 얼굴에 일대 혁명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