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계란 세우기
'계란 세우기' 하면 생각나는 것이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세울 수 없는
타원형의 계란 한쪽을 약간 짓눌러 세움으로써 세상에 불가능이 없다는
비유로 쓰여져 내렸다. 한데 이 같은 짓눌림 없이도 삶은 계란을
수평상태에서 팽이처럼 돌리면 제풀로 수직으로 서서 돌아간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300년 동안 기적으로만 알려져온 이 계란
세우기가 물리적·수학적으로 입증된 셈이요, 콜럼버스가 굳이 계란
한쪽을 짓누르지 않아도 되는데 괜한 일을 했다는 것이 된다. 그 물리적
발견이나 수학적 입증이 얼마나 뜻있고 큰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의를
끄는 것은 삶은 계란만이 회전 끝에 서는 것이지 날계란은 아무리 돌려도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같지 않고, 그를
비교하는 틀이 적지않이 제시돼 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유럽사람들은
껍데기가 단단한 생계란이요, 한국사람은 껍데기 벗긴 삶은 계란이라는
비교축(比較軸)이 있다.
서양사람들은 혼잡한 인파 속에서 서로 부딪치면 반드시 사과하게끔 돼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쾌하게 여기고 언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자신의 주장과 이익을 내세워 곧잘 부딪친다. 날계란의
껍데기는 단단하기에 부딪치면 소리가 나고 깨지기도 잘한다. 한데 삶은
계란은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 서로 부딪쳐도 충격을 흡수, 소리를 내거나
깨지질 않는다. 또한 날계란은 껍데기에 이름을 써 개별화하거나 개별로
운반이 가능하나 삶은 계란은 이름을 써 개별화하기 어렵고 그릇에 담아
옮겨야 한다. 곧 서양에서는 그 사람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평가를 받는
개인주의인 데 비해 한국에서는 그 사람의 출신신분이나 학교, 그리고
자격 등 담긴 그릇을 보고 평가한다. 날계란에는 때가 묻어도 잘
지워지고 씻겨지지만 삶은 계란에 때가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는다. 곧
대인관계에서 오해나 원이나 한이 서리면 서양사람은 곧잘 풀리는데
한국인 사이에서는 영속된다.
그러하듯이 생계란은 아무리 돌려도 서지 않는데 삶은 계란은 제풀로
돌다 우뚝 선다는것은, 서양사람은 모든 능력을 다해도 1+1=2인데
한국사람은 신바람이 나면 제풀에 겨워 돌기에 1+1=3도 되고 1+1=5도
된다는 삶은 계란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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