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대통령 평가
파란 많았던 아바마마 태종(太宗)의 정치 행적을 적은 실록(實錄)이
완성되자 세종은 그 실록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우의정
맹사성(孟思誠)이 아뢰기를 「실록에 기재된 것은 후세에 전하여 정사에
도움이 되게 하는 사실들입니다. 전하가 보시더라도 상왕을 위해
고치지는 못할 것이요, 지금 한번 보기를 시작하면 후세 임금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니 사관(史官)이 의구심을 가져 그 직책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했다. 이에 세종이 그말을 좇았던 것이다. 조선
왕조에도 임금이 바뀌면 전 임금의 정치 행적을 사실대로 적어 잘잘못을
가려 후세에 본보기로 삼는 평가성 작업이 따랐던 것이다. 그 평가작업을
두고 사실을 왜곡하는 권력의 힘이 미치지 못하게끔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에는 정사(正史) 말고도 후대 임금을 위한 정치 교과서로서 역사적
사실을 둔 평가사서(史書)랄 「자치통감(資治通鑑)」이 있다. 통치에
참고가 되고 자료가 되는 역사책이란 뜻이다. 당태종은 친히 고구려
원정에 나서 국력을 소모시켰던 임금이다. 이 당태종의 정략을 두고
「자치통감」은 태종의 근신인 방현령(房玄齡)의 평가를 길게 실어 후세
임금의 귀감을 삼고 있다. 무고한 사졸들을 적의 칼날 아래 몰아 골수와
간담을 동토에 널어놓았다 하고 만약 고구려가 신절(臣節)을 잃거나
국토를 침범하여 백성을 괴롭혔거나 장래에 중국을 위태롭게 하는 일을
저질렀다든가 하는 3개 조건을 범했다면 몰라도 전대(隋·수나라)의
패배를 설욕하고 신라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한 것이라면 얻는 것은 적고
잃는 것이 많은 만고의 실책이라 했다. 그리고 고구려에 자유를 주고
해외에 나간 군선(軍船)을 불태울 것이며 백성의 징병을 폐지할 것을
간했다. 이 같은 「자치통감」의 대담한 통치자 평가는 후대에 병사를
일으키는 3대 조건으로 정착하여 한반도를 둔 중국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제왕 시절에도 있었던 이 통치자 평가가 민주주의 세상에 없었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민간차원에서 대통령 평가위원회가 발족됐는데
권력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후대의 대통령들을 위한
신(新)자치통감을 만든다는 사명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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