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청계천

bindol 2022. 11. 27. 06:19

[이규태 코너] 청계천

조선일보
입력 2002.03.28 20:15
 
 
 
 


한양의 걸식하는 부랑자를 속된 말로 「꼭지」라고 불렀으며
청계천 다리 밑이 그들 본거지다. 한 다리 밑마다 꼭지딴이라는
우두머리가 있어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광교 꼭지는 북촌
김 대감댁 꼭지요 수표교 꼭지는 혜전(鞋廛) 꼭지라듯이 대가나
상가의 조직 폭력배 구실을 했다. 갑오개혁 때 이 꼭지 조직폭력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자 경무청으로 하여금 자주 소탕령을
내렸지만 워낙 권력 밀착이 뿌리깊어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 복개된 위를 고가도로가 달리고 있는 청계천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선 서울시장 후보들이 표 모을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환경 단체나 환경 학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이미 환경을 살리기 위한
청계천 복원 심포지엄까지 열고 있다. 콘크리트 감옥에서
숨막혀 죽어가고 있는 자연의 해방과 도심에 흐르면서 수다하게
기생한 역사들을 되살리고 친황경공간을 확보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이 때문에 감소할 교통량에 대해서는 천변 양편에 2차선
또는 4차선 도로를 내면 현재보다 주행 시속이 2~3㎞밖에 줄지
않는다고도 했다. 반대여론도 만만치않다. 복개와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데 12조원 이상의 돈이 든다는 것과 그로써 발생될
교통 혼잡 그리고 주변 상가들의 재산권 침해, 그 뭣보다
복원시켜 놓았을 때 오염원이 복판을 흐르는지라 예상했던
청계천이 아니라 오계천(汚溪川)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청계천은 북악 인왕 남산에서 흘러든 물이 도심을 꿰뚫고
흘러 중랑포에 흘러드는 내로 예부터 도심 풍수의 변수가
되어 양론이 충돌돼왔다. 세종 때 이현로(李賢老)는 풍수설을
내걸고 청계천에 쓰레기 던지는 것을 금하여 명당의 물을
맑게 할 것을 청했었다. 명당수가 더럽고 냄새가 난다는 것은
풍수설에서 반란의 조짐이라고 했다. 이에 집현전 교리
어효첨(魚孝瞻)이 반론을 제기하길 이 풍수설은 풍수사 범월봉(范越鳳)의
설이라고 출처를 밝히고 다만 장지(葬地) 풍수에 해당하는 것일 뿐 도읍
풍수와는 아랑곳없다 했다. 지금 청계천을 둔 복원과 복개 유지와의
대결과 흡사한 전력이 있었던 청계천이다. 이를 두고 세종대왕은
「효첨(孝瞻)의 의론이 정직하다」 했다. 이현로의 주장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상보다 실리를 선택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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