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늑대와 어린이
부평의 한 백화점 뜰에서 늑대 한 마리와 어린이들이 얼려노는
보도사진은 연만한 사람들에게 금석지감을 불금케 한다. 반 세기
전만해도 산골에서는 여자 목소리로 어린이를 유인, 잡아먹길 수없이
했던 늑대다. 음흉한 심보를 낭심(狼心)이라 하고 당황하는 꼴을
낭패(狼狽)라 하며 많이 흘린 피를 낭자(狼藉)라 했듯이 늑대 이미지는
흉악·탐욕·교활·잔인 일변도였다. 반 세기 만에 그 흉악한 늑대
이미지가 징발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늑대는 본이 흉악하지 않았다. 늑대 낭(狼)자를 풀어보면
「犬+良」으로 좋은 짐승이다. 어릴 적 인근 산에 늑대가 출몰하면
할애비 늑대니 손자 늑대니 알았을 만큼 조부손(祖父孫) 3대가
동당(同堂)하고 늙은 할애비를 극진히 봉양하는 늑대로 알려져 있었다.
로마의 시조(始祖)를 젖먹여 길러서가 아니라 그 많은 짐승 가운데 사람
아기를 데려다 기르는 것은 늑대밖에 없다. 프랑스·인도 등지에서 자주
발견된 야생아는 모두가 늑대가 주워다 기른 아이였다. 캄차카 반도에서
수(雄)늑대와 동굴에서 동거한 여인이 화제가 됐던 것은 금세기 초였다.
일본에서 늑대를 오오가미라 하는데 그 어원이 대신(大神)임을
미루어보거나 몽골의 영웅 칭기즈칸을 「파란 늑대」라하고 근대 터키의
영웅 케마르를 「회색 늑대」라 우러렀음은 늑대 이미지가
부정적이지만은 않음을 알게 한다.
우리나라 형사 민속에 돈주머니를 잃어버리면 혐의자들을 불러놓고 늑대
다릿살 말린 것(狼筋)을 태워 그 연기에 마비현상을 일으키는 자를
범인으로 삼는 관행이 있었던 것은 늑대의 성이 거짓없이 바르다는
인식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산간 고을에서 공납하는 물품 가운데
늑대 분(糞)이 들어 있는데 봉화 올릴 때 이 분을 태우면 곧게 오르기
때문이다. 이 역시 늑대의 본성이 곧음으로써 일어나는 자연 현상으로
알았었다.
키플링의 「정글 북」은 길 잃은 소년이 늑대에게 길러져 밀림의 왕자가
되어 인간세계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며 10년 전 아카데미상 7개부문을
휩쓴 「늑대와의 춤을」이란 영화는 인디언과 나눈 늑대의 정이
주제였다. 도심 속의 늑대와 어린이의 어우름은 그래서 어느 역사 기간
동안 인간의 악의로 사나워진 늑대이미지의 원점회귀(原點回歸)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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