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안녕 유고슬라비아

bindol 2022. 11. 27. 06:28

[이규태 코너] 안녕 유고슬라비아

 

조선일보
입력 2002.03.24 20:21
 
 
 
 


잡다한 인종과 종교와 문화를 삭혀서 일군 미국을 「위대한 용광로」로
비유하지만 잡다한 야채를 마요네즈로 버무려놓은 샐러드로 비하하기도
한다. 마요네즈를 씻어버리면 모든 야채가 본색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미국이 야채 샐러드라면 유고슬라비아는 한국음료인 화채랄 수 있다.

다섯가지 맛을 내는 오미자 우린 붉은 국물에
수박·오이·배·사과·앵두·잣ㅡ 가진 잡동사니를 띄워 만든 것이
화채다. 6개 공화국과 2개 자치주로 연방을 이루고 20여개 인종이
잡거하며 말도 8개어가 통용되고 있으며 종교도
희랍정교·이슬람교·가톨릭·프로테스탄트가 할거, 찢고 발기고 성한
날이 없는 갈등의 역사를 이어 온 유고슬라비아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후
티토이즘이라는 사회주의 붉은 오미자 국물에 잡동사니를 띄워놓은
화채로 통일시켜놓은 셈이다. 이들 나라들 사이의 반감은 슬로베니아의
한 국민 시인의 시가 대변해주고 있다. 「슬로베니아 소녀의
눈은/세르비아 소녀의 눈보다 덜 푸르다/하지만 슬로베니아의 잡초
꽃은/세르비아의 잡초꽃보다 더 노랗고/콘크리트도 뚫고 피어난다.」

이 유고슬라비아에서 통일 이념인 붉은 오미자 국이 사라지고 보니 6개국
가운데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마케도니아가 차례로 이탈해
독립하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두 나라가 연방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유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드디어 이 양국 대통령은 유고
연방의 국명을 버리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하기로 한
헌법개정안에 서명했다 한다. 1929년 연방왕국의 이름으로 탄생된 「남
슬라브」란 뜻인 유고슬라비아는 1차대전과 2차대전을 발발시키고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의 복판을 흐르며 역사를 피로 적신 드리나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고대에는 로마와 게르만이 대결했고 근세에는
터키와 오스트리아가, 근대에는 헝가리와 독일이, 그리고 얼마전까지
코소보·보스니아 등의 갈등으로 피를 흘렸던 바로 그 강물이다. 연전
베를린에서 목발 짚은 코소보 난민 소녀가 드리나강의 다리에 죽어있는
가족 사진을 들고 서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유고란 이름과 더불어
증발했으면 싶은 드리나강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