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부즈카시

bindol 2022. 11. 28. 16:28

[이규태 코너] 부즈카시

조선일보
입력 2002.02.02 20:05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근교를 지나면서
이 나라의 국기(國技)라는 피 비린 마상투기(馬上鬪技)를 구경한 일이
있다. 기마민족의 용맹을 기르는 부즈카시라는 이름의 이 경기는, 넓은
황무지 복판에 목 잘린 양 한 마리를 놓아두고 양편으로 가른
기사(騎士)들이 이 양을 뺏고 빼앗겨가며 붉은 깃대를 세워둔 골에
던져놓는 편이 이긴다. 말끼리 부딪쳐 물고 차고 기어오르고 마상의
선수들끼리 채찍질하며 싸우기로, 낙마를 하여 짓밟히고 말에 끌려
달리기도 하는 북방 기마민족의 원시 스포츠랄 것이다. 아프간 사람들이
그토록 즐겼던 이 부즈카시를 탈레반 정권이 금지시켜 내리다가 탈레반
축출과 더불어 등장, 여가를 독점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부즈카시는 이란·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기마민족의 무술로
당나라를 거쳐 한국에 들어와서는 격구(擊毬)로 정착했으며,
「용비어천가」에 보면 태조 이성계는 격구 챔피언이었다. 말 앞발
틈으로 들어가 뒷발 틈으로 나오며, 엎드려 말 겨드랑이에 붙었다가
꼬리를 붙들고 몸을 날리기도 했다 한다. 한편으로 티베트를 거쳐 인도에
들어가 19세기 중엽에 영국 기병대가 이를 채택, 영국의 폴로 경기가
되고 있다.

부즈카시는 「튜레 정신」을 시험하는 일종의 성인식 고행이라고도 했다.
부즈카시 경기장에는 많은 젊은 여인들이 구경하고 있었는데 예비 신랑을
선택하기 위함이라 했다. 용맹을 보이지 않으면 아가씨들의 선택권에
들지 않기에 경기가 가열될 수밖에 없겠다. 튜레는
용기·힘·양기·정력이기도 하면서 어느 그 한 뜻이 아니요, 신에의
귀의, 죽음을 초월한 가치이기도 하면서 그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낙마로 갈비가 부러지고 팔다리가 부러지며 머리통이 깨져도 불굴하는
기마민족 정신이 부즈카시에 전승된 튜레라는 것이다. 튜레의 크기에
여인들의 선망이 정비례한다는 데 수긍이 간다. 세조 때 서역에서 귀화한
한봉련(韓奉連)이라는 장사가 있었는데, 활을 쏘지 않고도 호랑이에게
접근해 손으로 때려잡았으며, 호환이 생기는 곳이면 달려갔다는 이
포호장(捕虎將)이 바로 튜레 정신으로 다져진 아프가니스탄 유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부즈카시를 보면서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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