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실버 시터

bindol 2022. 11. 28. 16:35

[이규태 코너] 실버 시터

 

조선일보
입력 2002.01.27 18:56
 
 
 
 


전통 사회에서 효자의 조건으로 '노모에게는 책비, 노부에게는
입담꾼ㅡ'이란 말이 있었다. 늙으신 어머니에게는 책 읽어드리는
계집종을 드려 이야기책을 읽어드리고 늙으신 아버님에게는 떠돌아다니며
우스개 이야기를 해서 웃기는 입담꾼을 드려 웃기게 해드림으로써
효도한다는 뜻이다. 외로운 노인들 말동무해주고 산책 같이하며 고독을
덜어주는 신종 직업 실버 시터의 전통적 존재형태랄 수가 있다. 책비는
부름을 받고 가 누워 있는 마님 머리맡에서 이야기 책을 읽어드리는데 그
격앙과 어조로 울리고 웃기기를 마음대로 했다. 대가는 이야기 듣는
노모를 얼마나 많이 울려서 눈물을 흘리게 했는가로 값이 오르내렸는데
수건 하나를 적셨을 때 한 짠보, 석 장 울렸을 때 석 짠보란 말로 책비의
격을 평가했다한다. 아마도 울어서 적신 수건이라해서 짠보라 했을
것이다.

늙은 아버지의 실버 시터랄 도우미 입담꾼은 시골의 경우 소금장수나
땜통장이 일용품 팔고 다니는 무시로장수 등으로 이 고을 저 고을 떠돌며
듣고 본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엮어 귀를 즐겁게 해주고 밥이나 잠자리를
얻고 노자를 얻기도 했다. 이 같은 뉴스성 입담말고 판소리를 피로하고
다니는 소리꾼도 있었다.한양에는 정자를 차려놓고 이 사랑 저 사랑
불려다니며 직업적으로 시사 문제로 해학을 하고 다니는 입담꾼이
있었다. 이를 청풍명월이라 했는데 성종 때 유명한 입담꾼 유생원의 정자
가 청풍정이요, 박생원의 정자가 명월정인데서 비롯된 이름으로 노·소론
동·서인 편의 청풍명월이 있어 반대 파당 헐뜯는 소리 듣고 싶을 때 파당
을 골라 입담꾼을 샀다.

독일에서는 노인들의 수발보험이 정착하여 공익근무자들로 하여금 실버
시터노릇을 시키고 있음을 보았다. 대가족제도의 붕괴로 준비없이 소외된
노인을 위해 아무런 대책도 없는 우리 나라에서 노부모 모시기 역겨운
자식 며느리들이 임시 방편으로 시간당 돈으로 도우미를 고용하는 실버
시터 풍조가 번져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머리맡에서 말동무도 돼
주고 가까운 데 산책도 함께 함으로써 고독을 달래주는 도우미인데
차선적이긴 하지만 노인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가족과 함께 있고 싶은
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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