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아들이 없이 죽었을 때 아우가 대신해서 血統(혈통)을 잇는 일을 뜻하는 사자성어가 ‘형망제급’이다.
‘禮訟(예송)논쟁’이라고 들어봤을 것이다. 현종이 즉위하고 ‘형망제급’으로 왕위를 계승한 효종의 장례를 치르는 기간 동안 효종의 어머니인 자의대비(1624 - 1688)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를 놓고 남인들과 서인들이 다툰 예법에 관한 논쟁을 말한다.
자의대비는 효종의 아버지인 인조가 늘그막에 받아들였던 왕비인데, 아들인 효종보다도 나이가 어렸다고 한다. (아들보다 어린 마누라라…… 전하! 왠 주책이십니까?)
송시열(1607 – 1689)을 비롯한 서인은 경국대전에 나와 있는 법을 들어 차남일 경우에는 어머니가 1년 동안 상복을 입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반면에 윤선도(1587 -1671, 정철의 가사와 더불어 조선시가에 쌍벽을 이룬 인물)를 대표로 하는 남인들은 차남이라도 효종이 왕위를 이었으니까 장남과 같은 대우를 받아서 어머니가 3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을 한 것이다. 그냥 논쟁만 했다면 다행이지만, 1차 논쟁 후에 윤선도가 유배를, 2차 논쟁 후에는 송시열이 유배를 갔었다.
이까짓 거가 뭐 중요하다고 그 야단법석을 떨었단 말인가? 차라리 그 시간에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우리 역사에서 부끄러웠던 예송논쟁이 바로 ‘형망제급’으로 인해 발생했던 사건이었다.
兄 (맏 형)
· 口(입 구)와 儿(어진사람 인 = 人)의 회의자
· 아우보다 머리가 큰 형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입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큰머리를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커다란 입을 강조해서 신을 맞아하거나 빌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 즉 제사를 지내는 맏아들을 나타낸다고도 하지만, 여기서는 큰입보다는 ‘머리가 크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지금도 우리의 어르신들이 형제간의 다툼이 있을 때, ‘대가리 큰 놈이 참아라!’라는 말씀을 하신다. 실제로 수학적으로 머리의 면적이나 부피가 큰 사람이 참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다. 손 위 형을 ‘머리가 크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 또한 우리 민족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라고 진태하 박사님은 말씀하신다.
亡 (망할 망, 없을 무)
· 본래 소경이 지팡이를 짚고 가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 이후 亡이 ‘없다’ 또는 ‘죽다’의 뜻으로 쓰이게 되어, 다시 盲(소경 맹)자를 만들었다.

弟 (아우 제)
· 본래 화살의 줄을 감는 것을 본뜬 글자인데, 줄을 감을 때는 반드시 순서(위 아래)가 있어야 함으로, 형 다음의 아우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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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 금문, 전서의 모양을 보면 글자 안에 활의 모양을 본뜬 글자인 弓(활 궁)이 들어가 있다. 
주살(화살의 오늬에 줄을 매어 쏘는 화살)은 화살대에 줄을 감을 때 그냥 막 칭칭 감는 것이 아니라 次第(차제), 곧 순서가 있어야 하므로 맏형 다음에 낳은 여러 동생들을 나타내는데 쓰에게 되었다.
참고로 弋는 주살을 나타내는 ‘주살 익’이고, 第(차례 제)도 ‘순서’, ‘차례’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及 (미칠 급)
· 본래 가는 사람을 뒤에서 손으로 잡는 모양을 본떠 ‘미치다’의 뜻이 되었다.

갑골문을 보면 뒤에서 손으로 사람을 붙잡는 모양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즉 及의 오른쪽 밑에 又(오른 손 우)가 약간 변형되어 있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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