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우리의 한강 표기인 漢江을 韓江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제안한 분은 바로 당시 진태하 명지대 국문과 교수님으로, 한강은 ‘큰 강’을 뜻하는데 韓에도 ‘크다’의 뜻이 있는 만큼 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강이란 명칭의 기원은 순우리말인 ‘한가람’에서 비롯됐다. ‘가람’은 강의 고어. 즉 한강의 본래 의미는 ‘큰 강’이다. 한자의 한강 표기 변경은 단순히 한강의 한자 명칭 자체만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새로운 韓江을 통해 부활시키고 재창조해 문화강국으로서 한민족 재도약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자는데 본질적 의의가 있다.
하지만 반대 의견에 의하면, 수천년 동안 천문지식에 대한 전통을 이어온 우리 조상들이 지명을 정할 때에도 천문지식을 활용하였는데, 漢江은 천문에서 은하수를 의미하고 漢陽은 태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景福宮(경복궁)의 景은 서울의 하늘에 뜬 해를 의미하는 문자라고 한다.
그리고 韓을 ‘크다’로 풀이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금문학자인 낙빈기의 해석에 의하면 韓이라는 문자가 순임금이 요임금에게 구테타?를 일으킴으로써 생겨난 문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크다’가 아니라 ‘쿠테타’를 의미하는 문자라고 한다. 오히려 桓雄天王(환웅천왕)의 桓에 ‘크다’는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어느 주장이 맞는 것일까?
韓 (한국 한)
· 倝(해돋을 간)와 韋(에울 위)의 형성자
· 설문해자에서는 ‘우물난간?’으로 풀었지만, 해돋는 쪽에서 둘러싸인韋 아름다운 ‘한국’을 뜻한다. 원래 우리말의 ‘한’을 한자로 적은 것이다.

倝은 해가 뜰 때 艸풀 숲 사이에서 햇빛이 빛나는 모양, 또는 사람이 두 손으로 태양을 받들고 있는 모양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韋는 갑골문에서 성을 두 발舛(어그러질 천)로 ‘에워싼’ 모습이다. 간혹 발이 셋이나 넷으로 표현되기도 했으며, 성곽은 네모가 아닌 둥굴게 표현되기도 했지만 의미는 같다.
이후 韋가 ‘무두질을 거친 가죽’이라는 뜻으로 전의되자, 원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성곽(口)을 더한 圍(에워쌀 위)를 다시 만들게 된 것이다.
결국 韓을 형성자로 풀게 되면 음이 倝(간)에서 ‘한’으로 변경된 것이 된다. 하지만 韓이 ‘우물난간’의 모양이고, ‘간’이라는 음에서 왔다는 것은 약간 억지스런 해석이 아닌가 싶다.
韓은 고대 국가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그것만 보아도 ‘우물난간’의 뜻으로 국가 이름을 사용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쉽게 추정해 낼수 있다.
그리고 韓의 좌변은 朝(아침 조)자의 좌변과 동일하다. 두 글자 모두 나라이름으로 쓰였다는 것으로 볼 때 ‘종묘’와 관련이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중국의 금문학자 낙빈기 선생은 한국의 韓과 조선의 朝 모두 두 손으로 해를 받드는 모습으로, 자신들을 태양을 선조로 한 韋(위)씨와 月(월)씨를 나타낸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韋의 모습을 보면 봉토를 중심으로 주위를 돌고 있는 발에 모양이 나와있는데 ‘에워싼다’고 보지 않고 ‘호위를 한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봉토 가운데 세로로 쳐진 5개의 획으로부터 이 글자가 舜(순)임금의 이름자라는 해석을 하였다.

결국 韓자는 순임금이 조상을 모신 종묘(사당)에 제사를 드렸다는 내용을 표현하는 글자라는 것이다.
약 4,300여년 전,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천자인 舜(순)은 성은 사, 씨는 유우이며 이름은 중화로 황제의 손자인 저욱의 7대손이라 하며 東夷(동이)의 땅인 기주 저풍 태생이라고 한다.
맹자도 舜임금을 동이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韓은 우리 겨례의 상징어다. 글자로 풀어보면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지만, 우리의 상고사는 아직도 너무 많이 베일에 싸여있다
상고에 우리 선조가 세운 최초의 나라 이름도 ‘한국(桓國)’이라고 하는데, 韓과 桓(환) 모두 우리말 ‘한’을 표현한 문자들이다.
갑골문이 발견된지 얼마되지 않아서 우린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당했다. 이후 일본의 강점기와 그 시기에 감행되었던 식민사관 강요와 민족 말살 정책으로 우리는 그만 과거와 단절이 되고 말았다.
이제라도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의 기록을 되찾아야 하는데, 고한글(한자) 공부가 그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漢 (한수 한)
· 氵(물 수)와 菫(진흙 근)의 형성자
· 원래 강이름으로 쓰인 글자인데, 뒤에 國名(국명)이 되었다.
菫(진흙 근)에 대해 설문해자를 지은 허신은 불에 익혀 먹었던 진흙으로 해석했지만, 다른 학자들은 제사에 바치는 짐승들을 불에 태우는 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고 嘆(탄식할 탄)자에서 확인한 적이 있다.



진태하 박사님 말씀에 의하면 漢자가 殷代(은대)의 갑골문에는 없고, 周代(주대)의 금문과 秦代(진대) 소전에 아래와 같이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각 고서에서 보면 漢은 결코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漢族(한족)의 명칭이나 漢(한)이라는 나라의 명칭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아니라, 漢水(한수)라는 강물 명칭으로 만들어진 글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漢族(한족)에 대해서는 ‘한나라 때 군대의 위세가 멀리까지 떨치어 외국인들이 모두 우리 나라 사람들을 일컬어 漢人이라고 하여 위진시대 이후에 곧 이러한 명칭이 있음으로써 우리나라 사람들도 드디어 스스로 漢族이라고 이름하게 되었다’는 기록을 볼때, 위진 또는 한나라 무제, 선제 이후에 그것도 외국인들에 의하여 일컬어진 명칭인 漢族이 중국인들에게 역수입되어 쓰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漢字(한자)에 대해서도 ‘한족 사람들의 문자인데, 몽고문자에 대칭해서 쓰인 말이다’라는 기록에 의하면 元(원)나라 때 몽고인들에 의하여 붙여진 명칭인데, 이 명칭이 한국, 일본 등에 전파되고 오히려 중국에 역수입 되어 쓰인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漢字를 漢族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사실임을 알 수 있고, 한자라는 명칭도 오늘날 중국의 입장에서는 ‘中國文字’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漢字를 古韓契(고한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江 (강 강)
· 氵(물 수)와 工(장인 공)의 형성자
· 원래 揚子江(양자강)의 고유명사였는데, 뒤에 보통명사로 쓰였다.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인 揚子江(양자강)을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長江(장강)으로 부른다. 이 장강이 흐르면서 바위에 부딪쳐 내는 소리가 ‘꿍꿍’ (工의 고음)을 난다고 해서 江이란 글자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즉, 성부인 工은 물소리의 의성어다. 이런 식으로 형성자 중 의성어를 성부로 만든 한자가 매우 많다.
河(물 하)도 마찬가지인데, 河는 두번째로 긴 강인 黃河(황하)를 지칭하던 고유명사였는데, 역시 뒤에 보통명사로 바뀐 사례다. 可도 ‘콸콸’ 흐르는 황하의 물소리를 나타낸 의성어로 河도 의성어를 이용한 형성자가 된다.
'實用 漢字' 카테고리의 다른 글
| 蚩尤天王 古韓契(고한글) 풀이 (0) | 2019.01.03 |
|---|---|
| 夷蠻戎狄 古韓契(고한글) 풀이 (0) | 2019.01.03 |
| 夏爐冬扇 古韓契(고한글) 풀이 (0) | 2019.01.03 |
| 觀形察色 古韓契(고한글) 풀이 (0) | 2019.01.03 |
| 日就月將 古韓契(고한글) 풀이 (0) | 2019.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