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334

잔을 띄워라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사람이 사는 것은 과연 정답이 있을까? 누구나 구속은 싫어하고 자유는 좋아한다. 늘 일에 치여 바쁘고 힘들게 살기보다는 여유와 한가로움을 느끼면서 살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구속과 바쁘고 힘듦을 자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들을 피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마음가짐으로부터 비롯된다. 朝鮮의 시인 金麟厚는 그의 시를 통해 여유와 한가로움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는 물에 술잔을 돌리다(洑流傳盃) 列坐石渦邊(열좌석와변) 물살 이는 돌에 줄지어 앉으니 盤蔬隨意足(반소수의족) 쟁반에 푸성귀가 먹음직하게 차려졌네 洄波自去來(회파자거래) 굽이치는 물결이 저절로 오고 가는데 盞斝閒相屬(잔가한상촉) 물에 뜬 술잔들을 한가로이 서로 권하네 술자리의 요체는 자유로움과 여유..

산으로 돌아가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요즘 자연인이라는 말이 제법 귀에 익다. 방송을 켜면 시도때도없이 나오는 한 프로그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자연인의 연원은 꽤나 깊을 듯하다.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도시의 개념이 생긴 것과 비례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백이숙제(伯夷叔齊)나 죽림칠현(竹林七賢) 같은 역사상 인물들도 도시를 떠나 산으로 들어간 자연인들이다. 당(唐)의 시인 배적(裵迪)은 그의 친구가 자연인의 삶을 택해 산에 들어가는 것을 진심으로 격려해 마지 않았다. 최구를 보내며(送崔九) 歸山深淺去(귀산심천거) 돌아가는 산 깊든지 얕든지 須盡丘壑美(수진구학미) 응당 산수(山水)의 아름다움 다할지라. 莫學武陵人(막학무릉인) 무릉 어부 배우지 말지니 暫遊桃..

봄날은 간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의 분량이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전혀 같지 않을 때가 많다. 겨울 석 달은 지독히도 가지 않더니, 춘삼월 석 달은 금세 지나가고 만다. 그만큼 봄을 기다렸고, 또한 봄을 보내지 않으려는 욕망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봄이 떠나는 풍광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한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만중(金萬重)은 봄이 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 안타까운 마음도 듬뿍 들어 있다. 봄날은 간다(春盡) 南溪春水已平堤 남계춘수이평제 煙草茫茫路欲迷 연초망망로욕미 山鳥一聲山日暮 산조일성산일모 亂紅飛度小橋西 난홍비도소교서 남쪽 개울 봄물은 이미 둑에 닿아 있고 안개 덮인 풀 아득히 펼쳐져 길은 거의 잃을..

안방의 정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봄은 꽃의 계절이다. 무채색의 얼굴로 긴 겨울을 버텨 낸 초목들은 온화한 봄바람에 안도하고는 조금의 꾸밈도 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다. 꽃은 피는가 싶으면 곧 지고 만다. 이런 의미에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덧없는 꽃의 일생에 대해 정곡을 찌른 말이다. 피는 꽃과 지는 꽃 사이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떠할까? 조선(朝鮮)의 시인 이옥봉(李玉峯)에게 낙화(落花)는 단순히 꽃이 지는 게 아니었다. 안방의 정(閨情) 有約來何晩(유약래하만) 만날 기약 있었건만 오시는 게 왜 이리 늦는지 庭梅欲謝時(정매욕사시) 마당 매화 지려 할 때 忽聞枝上鵲(홀문지상작) 문득 가지 위 까치울음 듣고는 虛畵鏡中眉(허화경중미) 부질없이 거..

그리움(相思)

그리움(相思)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봄은 꽃의 계절이다. 산과 들에도 집 마당에도 담장 밑에도 온통 꽃이다. 사람마다 꽃에 대한 기호는 다르겠지만, 꽃을 좋아하는 마음만은 동일할 것이다. 사람이 어떤 꽃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심미적 요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꽃과 함께 남아 있는 좋은 기억이 그것을 좋아하게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가끔은 꽃이 아닌 것에서 봄의 기억을 꺼내기도 한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수 많은 봄꽃이 아닌 어떤 열매에 자신의 기억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움(相思) 紅豆生南國 홍두생남국 春來發幾枝 춘래발기지 願君多采擷 원군다채힐 此物最相思 차물최상사 홍두는 남쪽 땅에서 자라는데 봄이 오니 몇 가지에 열매가 돋아났네 원하노니 그대여 많이..

봄 밤의 피리 소리

봄 밤의 피리 소리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봄은 꽃의 계절이고, 따라서 봄의 감각은 시각에 치우쳐 있다. 그리고 꽃과 불가분의 관계인 향기로 말미암아 후각 또한 비중이 큰 봄의 감각이다. 봄이 오면 새들도 활동이 왕성해지기 때문에 새 소리도 많이 들리기 마련이지만, 청각은 아무래도 시각과 후각을 앞서지는 못한다. 그러나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에게 봄의 감각은 청각이 으뜸이었다. 봄 밤의 피리 소리(春夜聞笛) 誰家玉笛暗飛聲(수가옥적암비성) 누구 집 피리인지 밤중에 날던 소리가 散入春風滿洛城(산입춘풍만낙성) 봄바람에 흩어져 낙양성에 가득하네 此夜曲中聞折柳(차야곡중문절류) 오늘 밤 노래 속에 절류곡도 들려오니 何人不起故園情(하인불기고원정) 누군들 고향 생각이 나지 않으랴..

溪上春日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겨울이 깊을 때 봄은 이윽고 가녀린 태동을 시작한다. 두꺼운 얼음 밑을 흐르는 작은 물이 차츰 얼음의 두꺼움을 낮추면서 끝내는 얼음 위를 흐르게 된다. 봄은 이처럼 인내하며 긴 호흡으로 우리 곁에 찾아오곤 한다. 세상 일에 분주한 사람에게도, 자연에 묻혀 한가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도 봄은 공평하게 다가오지만, 봄의 도래가 실감 나는 것은 아무래도 후자일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성혼(成渾)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봄날 시냇가에서(溪上春日) 五十年來臥碧山(오십년래와벽산) 푸른 산속에 누운 이래로 오십 년인데 是非何事到人間(시비하사도인간) 시비가 무슨 일로 세상에 왔단 말인가? 小堂無限春風地(소당무한춘풍지) 작은 집은 끝 없는 봄바람이 있는 곳이고 花笑柳眠閒又閒(화소류면한..

山園小梅

山園小梅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꽃을 말하면서 우두머리 운운한다면 저속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매화를 일러 꽃의 우두머리 즉 화괴(花魁)라고 일컫는 것은 도리어 당당해 보인다. 꽃을 피우기 어려운 한겨울에 추위를 무릅쓰고, 꿋꿋하게 피워내 온갖 꽃들의 개화에 물꼬를 튼 용기는 우두머리 소리를 들어도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北宋의 시인林逋는 꽃의 우두머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명구를 남겨 놓았다. 산속 뜰의 작은 매화(山園小梅) 重芳搖落獨暄姸(중방요락독훤연) 온 꽃이 지고 난 후에 홀로 곱게 피어 占盡風情向小園(점진풍정향소원) 작은 뜰 풍치 다 차지했네 疎影橫斜水淸淺(소영횡사수청천) 성긴 그림자는 맑고 얕은 개울에 비스듬히 기울고 暗香浮動月黃昏(암향부동월황혼) 그윽한 향기는 어스름 달빛 아래 떠도네 霜..

매화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사람이 살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게 성급함이다. 성급함은 평정심을 잃게 하여 결과적으로 일을 그르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급함도 피할 수 없는 경우라면 피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지혜이다. 한겨울에 봄을 기다릴 때, 사람들은 성급함을 피할 수 없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광려(李匡呂)도 봄을 기다릴 때 성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滿戶影交脩竹枝 만호영교수죽지 夜分南閣月生時 야분남각월생시 此身定與香全化 차신정여향전화 嗅逼梅花寂不知 후핍매화적부지 집 가득 매화 그림자가 대나무에 걸쳤고 밤 깊어 남쪽 누각에 달이 나올 때면 이 몸은 분명 향기와 하나가 되어 매화에 다가가 향기 맡아도 ..

모주 한 동이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겨울이 되면 몸이 추운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마음까지 추워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 사항일 뿐, 현실은 몸과 마음이 함께 추운 경우가 허다하다. 마음이 추운 것은 결코 날씨 탓이 아니다. 예상한 대로 외로움이 그 주범이다. 가족과 친구로부터 떨어져 사는 삶은 더운 여름이라도 춥게 느껴질 터인데, 추운 겨울에는 말할 것도 없이 추울 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유희춘(柳希春)은 겨울의 마음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모주 한 동이를 집에 보내며(以母酒一盆送于家) 雪下風增冷(설하풍증랭) 눈 내리고 바람 불어 냉기를 더하는데 思君坐冷房(사군좌냉방) 그대 걱정하며 찬 방에 앉았네 此醪雖品下(차료수품하) 이 탁주가 비록 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