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874

전술핵

Opinion :분수대 전술핵 중앙일보 입력 2022.10.12 00:10 한영익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한영익 정치에디터 고려 말기인 1380년 전라도 진포 인근에서 나라의 명운을 건 전투가 벌어졌다. 진포대첩이다. 최무선 장군은 전함 100척을 동원해 500여 척이나 되는 왜구 함대를 격파했다. 처음으로 사용한 화포(火砲)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칼과 활이 당시 두루 쓰이던 전술무기(tactical weapon)였다면, 화약은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이자 전략무기(strategic weapon)였던 셈이다. 중국은 화약의 중요 재료인 염초(질산칼륨) 제조법을 국가 기밀로 정하고 수출도 제한했다. 최무선 장군이 흙에서 질산칼륨을 얻는 ‘취토법(取土法)’을 원나라를 통해 힘들게 들..

분수대 2022.10.12

불꽃놀이

Opinion :분수대 불꽃놀이 중앙일보 입력 2022.10.11 00:22 지면보기 이경희 기자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장 구독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이것은 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천신(天神)이 시켜서 그런 것이다.” 일본 사신이 조선의 군기감이 선보인 불꽃놀이에 놀라 이렇게 말했다는 조선왕조실록(정종 1년, 1399년) 기록이다. 불꽃놀이 원조는 중국이다. 7세기 초 원시적인 불꽃(연화)이 있었고, 9세기 화약제조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불꽃놀이를 고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에 불꽃놀이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 때부터는 화약을 이용한 불꽃놀이가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누구보다 불꽃놀이를 즐긴 건 조선 성종이었다. 성종 8년(1477년) 궁중 후원에서 열던 불꽃놀이에..

분수대 2022.10.11

깜깜이’ 부실

Opinion :분수대 ‘깜깜이’ 부실 중앙일보 입력 2022.10.10 00:02 지면보기 최현주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최현주 금융팀 기자 빚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같다. BC 2400년 메소포타미아에선 수메르인이 부채 탕감 법령을 만들었다. 이전의 모든 채무 관계를 무효로 한다는 내용이다. 구약성서에도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禧年)에 부채를 탕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BC 594년 아테네에선 집정관인 솔론이 이례적인 부채 탕감 법령을 발표했다. ‘솔론의 개혁’이다.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은 자유인이 되었고, 빚 때문에 저당 잡힌 땅이나 재산도 본래 주인에게 돌려줬다. 이 과정에서 재화를 빌려준 채권자는 재산상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런데도 솔론의 개혁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데는 손해를 본..

분수대 2022.10.11

××의 어원

Opinion :분수대 ××의 어원 중앙일보 입력 2022.10.07 00:17 지면보기 심새롬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심새롬 정치팀 기자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온라인 가나다’라는 게시판이 있다. 누구나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어문 규범과 어법, 표준국어대사전 내용 등을 문의하는 곳이다. ‘에요’와 ‘예요’, ‘되’와 ‘돼’ 같이 쉽게 혼동하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질문이 자주 올라온다. 20년 넘게 운영됐다는 이 국가 공인 상담 서비스에서 사람들이 유독 욕설 관련 호기심을 끊임없이 제기한 점은 흥미롭다. “개××라는 말이 합성어인지 파생어인지 궁금하다”(2013년 12월)에서부터 “사내 새끼라는 말은 비속어냐 아니냐”(2022년 5월)라는 질문까지 욕 관련 궁금증이 줄기차게 국어원 문을 두드렸다. 운영 초..

분수대 2022.10.07

핵 버튼

Opinion :분수대 핵 버튼 중앙일보 입력 2022.10.06 00:33 박형수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박형수 국제팀 기자 “과거 미국은 일본에 두 차례 핵무기를 사용한 선례를 남겼다. 서방은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등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병합한다고 선언하며 외친 일성이다. 이어 우크라이나를 향해 “모든 군사 행동과 전쟁을 즉각 중단하고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라”고 호통쳤다. 푸틴이 언급한 선례란 2차 대전 중이던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투하한 핵탄을 의미한다. 당시 핵탄의 압도적 위력은 두 도시를 생지옥으로 만들고, 결사항전을 외치던 ‘대일본제국’을 무조건 ..

분수대 2022.10.06

레버리지

Opinion :분수대 레버리지 중앙일보 입력 2022.10.05 00:09 지면보기 장원석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장원석 S팀 기자 금융에선 실제 가격 변동률보다 몇 배 많은 투자수익률이 발생하는 걸 레버리지(Leverage)라고 한다. 지렛대에 빗댄 표현이다. 레버리지의 마중물은 부채다. 빚을 많이 낼수록 레버리지 효과도 커진다. 부동산에선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경우, 주식이라면 신용 매수가 그 예다. 부채 없이 레버리지 효과를 볼 방법도 있다. 레버리지 ETF(상장지수펀드)다. 상품명에 2X 또는 레버리지라고 표기돼 있는데 추종하는 지수가 1% 상승할 때 수익률이 2% 상승하고, 지수가 1% 하락하면 수익률도 2% 하락하는 구조다. 같은 방식으로 3배, 4배짜리 상품도 만들 수 있다. 하락에..

분수대 2022.10.05

영국 파운드화의 추락

Opinion :분수대 영국 파운드화의 추락 중앙일보 입력 2022.10.04 00:32 지면보기 조현숙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70년 치세가 막을 내림과 함께 많은 것이 달라진다. 영국 파운드화 도안도 그중 하나다. 영국의 모든 지폐와 동전의 앞면을 장식했던 엘리자베스 2세 얼굴은 그의 뒤를 이은 찰스 3세 얼굴로 바뀐다. 1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조폐국 전통에 따라서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이 회사는 알프레드 대왕(849~899년) 시절부터 왕의 얼굴을 동전에 새겨왔고 지금까지 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영국 조폐국은 조각가 마틴 제닝스가 만든 새로운 도안의 50펜스짜리 동전을 공개했다. 왕관을..

분수대 2022.10.04

세계박람회

Opinion :분수대 세계박람회 중앙일보 입력 2022.10.03 00:16 지면보기 전영선 기자중앙일보 팀장 구독 전영선 K엔터팀 팀장 ‘우리 시대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국제 행사.’ 세계박람회기구(BIE)가 제시하는 세계박람회(엑스포) 소개 첫 문장이다. 엑스포 개최 가장 큰 명분은, 개최국이 어떤 부차적 효과를 기대하건,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해 모여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는 자리라는 것이다. 영감을 주는 기술, 일반 대중이 체험을 통해 공감대를 확산할 수 있는 이벤트로 채워진다. ‘식량’(2015 밀라노), ‘미래 연결성’(2020 두바이), ‘보건’(2025 오사카·간사이) 등의 큰 주제를 정하고, 세계인과 국제기구를 한데 모은다. 이 정도 대의명분이 없이 현 인류가 ..

분수대 2022.10.04

악마의 가래

Opinion :분수대 악마의 가래 중앙일보 입력 2022.09.30 00:31 위문희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위문희 사회2팀 기자 0.03g. 일회용 주사기 안에 채워 넣는 필로폰 1회 투약량이다. 1회분 시가는 10만원. 지난 26일 강남의 한 호텔에서 작곡가 겸 가수 돈스파이크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당시 필로폰 30g을 소지하고 있었다. 1000회분으로 시가는 1억원 상당이다. 중독이 심해지면 주사기의 반 칸(0.05g)을 필로폰으로 채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합성마약인 필로폰은 일본에서 개발돼 한때 합법적으로 유통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일본의 한 제약회사가 ‘히로뽕(ヒロポン)’이란 각성제를 판매한 것이 시작이다. 마약사범을 가리키는 ‘뽕쟁이’란 속어도 히로뽕에서 유래했..

분수대 2022.09.30

수리남 외전

Opinion :분수대 수리남 외전 중앙일보 입력 2022.09.29 00:38 송지훈 기자중앙일보 스포츠팀 차장 구독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며 주목받는 남미 국가 수리남은 남한의 1.5배 크기에 전 국민이 54만 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우리나라와는 교류가 거의 없다가 드라마 흥행과 맞물리며 일약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한국전쟁 당시 수리남 군인 115명이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이력이 있으니 우리에겐 ‘알려지지 않은 혈맹’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홍어·마약·갱단·부패 등의 키워드가 먼저 떠오르지만, 해외에서 수리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다름 아닌 축구다. 17세기 이후 지난 1975년까지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사람과 자원..

분수대 2022.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