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874

수리남

Opinion :분수대 수리남 중앙일보 입력 2022.09.14 00:49 지면보기 한영익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한영익 정치에디터 연휴 기간 화제가 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는 기상천외한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거물 마약상 전요환 목사가 수리남 현지 경찰을 사병(私兵)처럼 동원해 마약 구매자를 환대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는 수리남 권력의 심장부까지 매수한 실력자였다. 드라마는 부패한 정부가 나라를 어디까지 혼란으로 빠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마약, 조직, 부패한 정부가 모두 있는 수리남’이란 극중 내레이션에서 핵심은 단연 부패한 정부다. 정부를 매수한 덕분에 코카인 유통을 독점할 수 있었고, 이렇게 번 돈으로 대형 범죄 조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요환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조봉행 역..

분수대 2022.09.26

엘리자베스

Opinion :분수대 엘리자베스 중앙일보 입력 2022.09.13 01:06 지면보기 이경희 기자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장 구독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흔히 ‘태정태세문단세’로 외우는 조선시대 왕의 이름은 사후에 붙이는 ‘묘호’다. 왕자가 태어나 받는 이름은 이방원(태종), 이산(정조) 등으로 일반인들과 언뜻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 외자였다. 임금의 이름은 누구도 함부로 부를 수 없고, 문서에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한자 하나만으로 지었다. 왕의 이름자는 뜻이 통하는 글자로 바꾸거나 획을 생략하는 등의 방법으로 회피했는데, 이를 '피휘'라 한다. 반면 서구에선 부모나 조상이 썼던 이름을 다시 쓰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 서거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재위 1952~2022..

분수대 2022.09.26

명절음식

Opinion :분수대 명절음식 중앙일보 입력 2022.09.09 00:01 지면보기 심새롬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심새롬 정치팀 기자 K명절이 부활했다. 명절에 빠지지 않는 게 명절음식이다. 추석에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건 2000년도 더 된 풍습이다. 고대사회부터 풍농제(豊農祭)를 지냈고, 삼국사기에 신라 3대 왕인 유리왕 때 술과 음식을 마련해 가을 길쌈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명절음식은 전 세계 공통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들이 송편을 만들듯 중국은 월병을, 일본은 당고(団子)를, 미국에서는 칠면조구이와 호박파이를 만들어 추수감사절을 기념한다. 하지만 먹을 것이 넘쳐나는 현대에는 명절음식이 불필요·불합리·불공평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적잖다. 설·추석마다 귀경객들이 버리고 간 명절음식 ..

분수대 2022.09.26

조용한 퇴사

Opinion :분수대 조용한 퇴사 중앙일보 입력 2022.09.08 00:42 지면보기 박형수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박형수 국제팀 기자 오전 9시, 업무 시작. 내 프로젝트 범위 내에선 되도록 성실하되, 초과 업무나 돌발 상황엔 응하지 않는다. 오후 6시, 업무를 칼같이 종료함과 동시에 휴대전화를 끄고 e메일은 무시한다. 저녁은 동료나 상사가 아닌 가족·친구와 함께한다. 일은 충실히 하되, 완벽을 추구하진 않는다. 사표는 던지지 않았지만, 회사의 평가·경쟁과는 결별했다. 회사가 내게 제공한 것 이상을 되돌려줄 생각이 없으며, 조직에서 더 나은 지위·조건을 얻으려 애쓰지 않는다. 미국 MZ세대 사이에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 방식이다. 미국 뉴욕의 24살 엔지니..

분수대 2022.09.26

블록딜

Opinion :분수대 블록딜 중앙일보 입력 2022.09.07 00:26 업데이트 2022.09.07 11:17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지면보기 장원석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장원석 S팀 기자 지난달 31일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35% 가운데 4.47%(2854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시장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이 발표에 당일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6.2% 하락했고, 다음날에도 5.7% 빠졌다. 블록딜은 대량으로 주식을 팔 때, 살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거래하는 걸 말한다. 주로 기관투자자나 외국인이 산다. 장중에 한꺼번에 많은 물량을 내놓으면 쉽게 팔리지도 않겠지만,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주로 장 시작 전이나 후에 주식을 넘기고, 이후 공시를 한다. 통상 블록딜..

분수대 2022.09.26

외환위기

외환위기 중앙일보 입력 2022.09.06 00:59 조현숙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외환위기의 정의는 간단하다. 원화와 맞바꿔 쓸 달러(외환)가 모자라 생긴 위기다. 1997년 한국이 경험했다. 한국은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며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그해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 달러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했다. 대가는 컸다. IMF는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했다. 지독한 돈 가뭄에 주택 대출금리는 연 20%대,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30%대로 치솟았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던 한국 경제는 빠르게 침몰했다.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고 가계 파산이 이어졌다. IMF 외환위기가 한국인에 남긴 상처는 컸다. 경제가 불안하게 흘러갈 때면 외환위기 공포가 소환되는 이유다. 200..

분수대 2022.09.06

신조어

신조어 중앙일보 입력 2022.09.05 00:43 전영선 기자중앙일보 팀장 구독 전영선 K엔터팀 팀장 ‘알·잘·딱·깔·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공식석상(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2차 회의)에서 쓰면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신조어 혹은 유행어다. 이 말은 2018년 게임 스트리머이자 ‘신조어 부자’, 우왁굳의 방송 중 생성됐다. 그러다 2020년 방탄소년단(BTS) 자체 콘텐트에 등장해 대중성을 확보하더니,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최 회장은 “알아서 잘·딱·깔끔하고·센스 있게 잘 준비해 주신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현장 분위기는 매우 좋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발언을 계기로 MZ세대의 마음을 잡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대기업 회장님이 늘어난 ..

분수대 2022.09.05

윤핵관

윤핵관 중앙일보 입력 2022.09.02 00:42 위문희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위문희 사회2팀 기자 기사에 ‘관계자’를 등장시킬 때가 있다. 실명 보도가 원칙이지만 익명을 전제로 해도 보도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는 경우다. 단독으로 확인된 내용을 앞세우거나 기사의 ‘야마(やま·핵심)’를 살리는 발언이 필요할 때 관계자 인용 보도를 한다. 관계자발 보도에도 문법은 존재한다. 급에 따라 표현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수석) 이상을 가리킨다. 보통 정무·홍보수석일 때가 많다. 비서관 이하는 ‘대통령실 관계자’다. 고위 관계자가 아니어도 부처에서 파견된 ‘늘공(직업 공무원)’ 비서관을 관계자로 인용한 단독 보도는 주목도가 높다.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서다..

분수대 2022.09.02

선수와 병역

선수와 병역 중앙일보 입력 2022.09.01 00:30 송지훈 기자중앙일보 스포츠팀 차장 구독 송지훈 스포츠디렉터 차장 병역 회피 논란으로 ‘제2의 유승준’이라 지탄받던 축구대표팀 출신 공격수 석현준(31)이 마침내 귀국한다. 신변을 정리한 뒤 조만간 한국으로 건너와 병역법 위반에 따른 처벌을 받고, 군 복무도 이행할 예정이다. 지난 2019년 병무청이 정해준 기한을 넘겨 프랑스에 무단 체류하며 병역 기피자 명단에 오른 지 3년 만이다.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젊은 남성이라면 예외 없이 수행해야 한다. 운동선수도 마찬가지다. 통상적인 군 입대 연령인 20대 중후반은 운동선수들의 전성기와 대략 겹친다. 운동 능력이 절정에 오른 시기에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오늘도 다양한..

분수대 2022.09.01

탄핵

탄핵 중앙일보 입력 2022.08.31 00:28 한영익 기자중앙일보 기자 구독 한영익 정치에디터 헌법상 탄핵심판 대상이 되는 공직자 가운데 실제로 탄핵이 된 사람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국회에서 소추안이 통과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을 받은 사람도 3명에 불과하다. 박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2004년), 임성근 전 판사(2021년)다. 헌재는 노 전 대통령과 임 전 판사 탄핵소추안은 각각 기각·각하했다. 국회 탄핵소추안이 헌재로 넘어간 사례 3건 가운데 2건이 최근 5년 내에 이뤄졌다는 건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애당초 한국 헌정사에서는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더라도 국회 표결까지 간 경우가 드물었다. 유태흥 전 대법원장은 1985년 독재정권에 저항한 판사들을 좌천했다..

분수대 2022.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