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은 객관적 대상세계에 있고 용은 주관적 자아세계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또한 변화되는 세계에 맞게[中] 쓰는[庸] 것이 곧 중용이라 할 수도 있으므로 이로 보면 주관과 객관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일체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중용, 즉 ‘맞게 쓰는 것’의 내용은 무엇인가? 객관이 주관에 맞는 것[中]이 진(眞)이라 한다면, 주관이 객관을 쓰는 것[庸]은 이(理)라 할 수 있다. 이 진리는 중용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형식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며, 이 진리의 일차적 내용이 인의(仁義)이고 인의의 구체적인 내용이 예악(禮樂)인 것이다. 따라서, 인의의 이상을 예악으로써 현실에 중정하도록 쓰는 것이 곧 진리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중은 진리의 소재(所在)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