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198

새장 밖의 자유[이준식의 한시 한 수]〈18〉

畵眉鳥 / 歐陽脩(개똥지빠귀) 百囀千聲隨意移 山花紅紫樹高低 始知鎖向金籠聽 不及林間自在啼 백전천성수의이 산화홍자수고저 시지쇄향금농청 불급임간자재제 온갖 소리 조잘대며 제멋대로 나다니네 울긋불긋 산꽃 사이, 높고 낮은 나무 위로 이제야 알겠네, 금빛 새장에 갇혀 내던 그 소리 숲속 자유로이 지저귈 때만 못하다는 걸 歐陽修/北宋 / 詠畵眉鳥 - 囀: 지저귀다 시제 ‘화미조’는 문자 그대로 눈썹을 그린 새, 눈 주변에 선명한 흰색 줄무늬가 길게 나 있어 마치 그린 듯한 눈썹을 가졌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개똥지빠귀라는 우리말 이름도 정겹다. 참새나 딱새처럼 체구는 자그마해도 목청이 맑고 카랑카랑해서 더 눈길을 끈다. 시는 언뜻 보면 숲속 새소리를 즐기는 한가로운 풍경을 묘사한 듯한데 곱씹어보면 속박에서 벗어난..

내일 근심은 내일[이준식의 한시 한 수]〈17〉

自遣 / 羅隱(스스로를 위로하다) 得即高歌失即休 득즉고가실즉휴 多愁多恨亦悠悠 다수다한역유유 今朝有酒今朝醉 금조유주금조취 明日愁來明日愁 명일수래명일수 얻으면 흥겹게 노래하고 잃어도 그저그만 근심 많고 한 많아도 여유만만 오늘 술은 오늘로 취하고 내일 근심은 내일 하면 되지 제목 그대로 자기 위안의 노래다. 친구에게 건네는 권유로 읽어도 좋겠다. 얻고 잃는다는 게 대수인가. 크게는 입신양명과 실패, 작게는 주변으로부터의 인정과 소외, 굳이 그걸 세상살이의 득실이라고 이른다면 쪼잔하게 따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어차피 끝없는 근심과 한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 안달복달한다고 허방(구덩이)을 피해 갈 수 있던가. 오늘 술은 오늘로 취하고, 내일 근심은 내일 하면 되지에는 마음 느긋해지는 유쾌한 메시지가 담겨 ..

세상의 진실[이준식의 한시 한 수]〈16〉

題西林壁 / 蘇軾(서림사의 벽에 쓰다) 橫看成嶺側成峰 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 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 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비스듬히 보면 고개요 곁에서 보면 봉우리라 원근 고저에 따라 경치가 제각각일세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 내가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지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는 산세. 정작 산속에서는 그 진면목을 파악하기 어렵다. 숲을 벗어나지 않고서 어찌 숲을 제대로 보겠는가. 사물에 몰입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물의 실체를 알아낸다는 법은 없다. 당사자가 모르는 세상의 진실이 때로 방관자의 눈에는 쉽게 들어온다. 협소하고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인식은 어쩔 수 없이 단편적이고 일방적이고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각을 달리..

재상을 향한 비아냥[이준식의 한시 한 수]〈15〉

題興化寺園亭 / 賈島(흥화사 정원에 부치는 시) 破卻千家作一池 파각천가작일지 不裁桃李種薔薇 부재도리종장미 薔薇花落秋風起 장미화락추풍기 荊棘滿亭君自知 형극만정군자지 수많은 집 허물어 연못 하나 만들고 복숭아 자두 대신 장미를 심었구나 장미꽃 지고 가을바람 불 때 되면 정원에 가시만 가득한 걸 그제야 아시겠지 민가를 허물고 거대한 연못을 조성한 것도 못마땅한데 그 주변에 심은 나무를 보니 더욱 고약스럽다. 경관을 위해서였다고 해도 왜 하필 유실수도 아닌 관상용 장미인가. 기록을 보면 이 시는 가도가 과거에 낙방한 직후, 당시의 재상 배도(裴度)가 흥화사에 개인 정원을 수축한 것을 고깝게 여긴 나머지 그 담벼락에다 화풀이로 써놓은 거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재상을 향한 한 서생의 신경증적 비아냥이 섬뜩할 정도..

담대한 낙천주의[이준식의 한시 한 수]〈14〉

登觀雀樓 / 王之渙(관작루에 올라) 白日依山盡 백일의산진 黃河入海流 황하입해류 欲窮千里目 욕궁천리목 更上一層樓 갱상일층루 해는 산등성이에 기대어 스러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드네 천리 아득한 곳을 바라보고자 다시 한 층을 더 올라가네 높다란 누각에 올라 산 너머 낙일(落日·지는 해)과 바다로 흘러드는 강물을 조감하는 시인, 뒤이어 시야를 최대한 넓히고자 다시 더 높은 곳으로 오르겠다는 다짐. 표면상 이 시는 호탕한 호연지기를 노래하고 있다. 대자연의 장엄한 미감, 그리고 삶의 기개를 관통하는 시인의 통찰을 읽을 수 있다. 제4구 ‘경상일층루’는 인생살이의 진취적 모색과 기상을 표현하는 성어로 곧잘 쓰인다. 다시 한 층을 더 오르려는 의지는 자신을 향한, 또 세상을 향한 담대한 옵티미즘(낙천주의)이라 할 만..

[이준식의 한시 한수]〈13〉옛사람의 사랑 맹세

上邪 / 漢代 民歌(하늘이시여!) 上邪! 我欲與君相知 長命無絶衰 山無陵江水爲竭 冬雷震震夏雨雪 天地合乃敢與君絶 상사 아욕여군상지 장영무절쇠 산무릉강수위갈 동뇌진진하우설 천지합내감여절 하늘이시여! 내 님과 사랑을 맺어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으리라 산줄기가 없어지고 강물이 다 마르고 겨울에 천둥이 쾅쾅거리고여름날 눈보라가 치고 저 하늘과 땅이 합쳐진다면 그때는 기꺼이 님과 헤어지리다 거침없는 사랑 고백이다. 화자는 도무지 실현 불가능한 이런저런 자연현상을 들어 마음을 토로하는데, 그 절정은 ‘저 하늘과 땅이 합쳐진다면 그때 기꺼이 님과 헤어지겠다’는 언약이다. 고대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 할 만하다. 첫 구에서 ‘하늘이시여’라고 했으니 스스로 사랑을 다짐하는 독백 같기도 하고, 눈앞의 상대에..

[이준식의 한시 한 수]〈12〉달빛 속의 혼술

月下獨酌 / 李白(달빛 속의 혼술) 天若不愛酒 천약불애주 酒星不在天 주성부재천 地若不愛酒 지약불애주 地應無酒泉 지응무주천 天地旣愛酒 천지기애주 愛酒不愧天 애주불괴천 已聞淸比聖 이문청비성 復道濁如賢 부도탁여현 賢聖旣已飮 현성기이음 何必求神仙 하필구신선 三杯通大道 삼배통대도 一斗合自然 일두합자연 但得酒中趣 단득주중취 勿爲醒者傳 물위성자전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주성이란 별이 하늘에 없었겠고 땅이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땅에도 분명 주천이란 지명은 없었으리 천지가 다 술을 사랑했으니 술 좋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청주는 성인에 비견된다 들었고 탁주는 현자와 같다고들 말하지 성인 현자가 다 술을 마셨거 굳이 신선을 찾을 필요 있으랴 술 석 잔에 대도와 통하고 술 한 말이면 자연과 합일되지 술에서만..

[이준식의 한시 한 수]〈11〉시인의 눈물

登幽州臺歌 / 陳子昻 前不見古人 後不見來者 念天地之悠悠 獨愴然而涕下 전불견고인 후불견래자 염천지지유유 독창연이체하 앞으로는 옛사람 보이지 않고 뒤로는 올 사람 볼 수가 없네 천지의 아득함을 생각하면서 홀로 비통에 잠겨 눈물 흘리네 암울한 현실을 마주한 시인의 비탄을 노래했다. 옛사람 혹은 미래에 올 어떤 인물, 그는 아마도 인재를 알아보는 명군이거나 아니면 그 명군을 보좌하여 마음껏 자신의 웅지를 펴는 영웅일 것이다. 하지만 망망한 천지 그 어디에도 자신을 인정해 주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으니 시인은 암담하기만 하다.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은 제(齊)나라가 침공해 오자 천하의 인재를 영입하는 데 주력했고, 병법에 능통했던 낙의(樂毅)를 발탁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유적지가 바로 유주대..

[이준식의 한시 한 수]〈10〉백거이의 中隱

對酒 / 白居易(술을 마주하고) 巧拙賢愚相是非 교졸현우상시비 何如一醉盡忘機 하여일취진망기 君知天地中寬窄 군지천지중관작 雕鶚鸞皇各自飛 조악난황각자비 능숙하니 서투니 잘났니 못났니 서로 시시비비하지만 흠뻑 취해 세상만사 다 잊은들 어떠리 그대 아실테지 천지는 공교롭게도 넓고 또 좁아서 보라매든 봉황이든 제 흥대로 난다는 걸 유능한 인재가 산림에 은거하면 소은(小隱), 혼잡한 시정 속에서 담담하게 살아가면 중은(中隱), 관직에 있되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 그걸 대은(大隱)이라 했다. 도가에서 말하는 진정한 은자의 모습은 대은의 삶이었다. 백거이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속세로 나온 듯 초야에 묻힌 듯, 바쁜 듯 한가한 듯 살겠노라’ 천명하면서 그것을 중은이라 명명했다. 대은이란 게 원래 ..

[이준식의 한시 한 수]〈9〉조식의 칠보시<七步詩>

七步詩 / 曹植 煮豆燃荳箕: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다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 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 콩을 삶으려고 콩깍지를 태우니 가마솥 콩이 뜨거워 우는구나 본시 같은 뿌리에서 나왔건만 뜨겁게 삶음이 어찌 이리 급한고 萁 : 콩깎지 기 煮 : 삶을 자 煎 : 달일 전 삼국시대 魏王 曹操에게는 시문에 뛰어난 두 아들 曹丕와 曹植이 있었다. 특히 조식은 ‘천하의 재주를 한 석(石)으로 친다면, 그중 8할은 조식의 것이다’라는 칭송이 따를 정도로 시재가 출중했다. 조조 역시 그런 아들을 유난히 총애해 당초 그를 태자로 책봉하려 했다. 하지만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는 조식의 기질이 못 미더워 결국 조비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조비가 文帝로 등극한 이후 조식의 생활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