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別曲 223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01] 무르익음과 문드러짐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01] 무르익음과 문드러짐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7.22 03:00 ‘난상(爛商)’에 ‘토론(討論)’을 덧대 ‘난상토론’이라 함은 ‘역전(驛前)’에 ‘앞’을 붙여 ‘역전 앞’이라 부르는 꼴이다. ‘난상’이라는 말 자체가 ‘충분할 때[爛]까지 의논하다[商]’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조선시대 영조(英祖) 이후에야 쓰임이 잦아진 것으로 나온다. 한자를 함께 썼던 중국이나 일본에는 용례가 없다. 앞 글자 ‘爛'는 ‘무르익다’ ‘흐드러지다’ 등의 새김이 먼저다. 사물의 기운이 최고에 이를 때를 가리킨다. 찬란(燦爛), 현란(絢爛), 천진난만(天眞爛漫), 능수능란(能手能爛)의 우리말 쓰임새가 적잖다. 그러나 극성(極盛)은 쇠락(衰落)을 내비치는 조짐이다. 무..

차이나別曲 2022.07.22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00] 총리가 사라졌다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00] 총리가 사라졌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7.15 03:00 “자르려 해도 끊지 못하고, 다듬고자 하나 더 헝클어지니(剪不斷, 理還亂)…”라는 노래가 있다. 망국(亡國)의 군주였으나 문재(文才)가 아주 빼어났던 남당(南唐) 이욱(李煜)의 사(詞)에 나온다. 나라 잃고 적국에 포로로 잡혀와 지은 작품이다. 없어지기는커녕 더욱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제 나라와 헤어진 슬픔, 즉 ‘이수(離愁)’다. 요즘의 중국인들도 자주 읊는 명구다. 얽히고설켜 좀체 가닥을 잡지 못하는 상황을 이 노랫말로 표현할 때가 많다. 무엇인가 자르는 행위를 전(剪), 엉킨 실타래 등을 매만져 가닥 잡는 일을 이(理)로 묘사했다. 뒤 글자 쓰임새는 아주 많다. 머리카락 다듬는 이발..

차이나別曲 2022.07.15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9] ‘바람과 나무’의 노래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9] ‘바람과 나무’의 노래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7.08 03:00 표준(標準)이라는 말은 자주 쓴다. 앞의 표(標)는 나무의 맨 윗가지를 가리킨다. 그에 견줘 사물의 높낮이를 파악할 수 있다. 뒤의 준(準)은 물 있는 곳의 수면을 지칭한다. 이로써 사물의 기울기를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 단어는 기준, 규범 등의 뜻을 얻는다. 그렇듯 우뚝 솟은 나무의 꼭대기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곧잘 닿는다. 그곳에 거센 바람이 걸려 나무가 몹시 흔들릴 때는 더욱 그렇다. 오늘은 흔히 ‘풍목(風木)’이라고도 적는 바람과 나무의 이야기다. 성어로는 우선 풍목지비(風木之悲)가 떠오른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는 중국 속언에서 ..

차이나別曲 2022.07.08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8] 야비함과 고상함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8] 야비함과 고상함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7.01 03:00 유비(劉備)가 초야에 있던 제갈량(諸葛亮)을 세 번 찾아가 제 진영으로 끌어들인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는 퍽 유명하다. 제갈량은 그때를 회고하면서 “돌아가신 황제께서 제 미천함을 따지지 않으시고(先帝不以臣卑鄙)…”라고 적었다. 유비가 세상을 뜬 뒤 북벌(北伐)에 나선 제갈량이 새 황제 유선(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에 담겼다. 여기에 등장하는 비비(卑鄙)라는 단어는 ‘신분이 낮으며[卑], 지식 견해 등이 부족함[鄙]’을 의미했다. 앞 글자는 높고 낮음의 존비(尊卑)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뒤의 ‘비(鄙)’는 정상적인 문물을 갖추지 못한 ‘야만(野蠻)’의 상태를 가리킨다. 본..

차이나別曲 2022.07.01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7] 무릉도원의 꿈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7] 무릉도원의 꿈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6.24 03:00 중국인이 꿈꿨던 이상향(理想鄕)은 도화원(桃花源)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흔히 무릉도원(武陵桃源), 중국은 보통 세외도원(世外桃源)이라고 적는다. 쾌락과 환희의 뜻으로도 쓸 수 있지만 본래 ‘사람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의 지칭이다. 동진(東晋)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년)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했다. 어느 날 고기잡이 어부가 물길 따라 계곡으로 들어가다 복숭아꽃 흐드러진 숲을 만난다. 이어 더 깊은 골짜기 안쪽에서 마주친 곳이 ‘도화원’이다. 이곳에서 어부는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들을 만난다. “진(秦)나라 때의 난(亂)을 피해 이곳으로 왔다”는 주민들은 어부에게 “지금이..

차이나別曲 2022.06.24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6] 당나라와 중국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6] 당나라와 중국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6.17 00:00 당나귀와 당면. 두 단어 앞에 붙은 ‘당’은 과거의 중국을 가리켰던 글자 당(唐)에서 비롯했다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그런 씀씀이의 ‘당’은 제법 많다. 중국인을 당인(唐人), 그곳의 물품을 당물(唐物), 그 학문을 당학(唐學)으로 지칭했던 사례들이다. 중국 역사에서 극성기(極盛期)를 맞았던 당 왕조로 인해 생겨난 개념이자 호칭이다. 따라서 중국인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이 글자로 곧잘 적는다. 해외의 중국인들이 몰려 사는 ‘차이나타운’을 대부분 당인가(唐人街)로 적는 점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쿵후 스타 리샤오룽(李小龍)의 영화 ‘당산대형(唐山大兄)’의 ‘당산’은 해외로 이주한..

차이나別曲 2022.06.17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5] “나는 마지막 세대 중국인”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5] “나는 마지막 세대 중국인”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6.10 00:00 몸집보다 머리가 큰 아기를 형상화한 한자가 ‘자(子)’다. 나중에는 ‘아들’이라는 뜻을 얻지만, 본래의 출발점에서는 그저 갓 낳은 아기를 지칭했다. 그 아이 옆에 실[糸]을 붙인 글자가 ‘손(孫)’이다. 후대가 실처럼 이어진다는 뜻이다. 둘을 합치면 자손(子孫)이다. 자자손손(子子孫孫), 세세대대(世世代代), 자손만대(子孫萬代) 등의 언어를 발전시킨 중국은 지나치리만큼 자손을 향한 애착이 강하다. 부모님께 불효(不孝)함에 “후대를 잇지 못함이 가장 크다(無後爲大)”고 했을 정도다. 그 혈통의 이어짐을 보통은 세대(世代)라는 말로 표현한다. 세(世)는 흔히 30년을 주기(週期)로 ..

차이나別曲 2022.06.10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4] 중국의 5월 35일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194] 중국의 5월 35일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6.03 00:00 과거 베이징(北京)을 일컬었던 여러 호칭 중 하나는 베이핑(北平)이다. 북쪽 지역의 평온(平穩)과 안정(安定)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중국인은 보통 그 둘을 줄여 ‘평정(平定)’이라는 단어로 곧잘 적는다. 전란과 재난을 잔혹하리만치 자주 겪은 중국인의 심성에 평온과 안정을 향한 꿈은 아주 견고하다. 이른바 ‘태평(太平)’을 갈구하는 심리다. 달리 태평(泰平)이라거나 승평(昇平), 또는 승평(承平)으로도 적는다. 수도(首都)의 대명사처럼 쓰는 장안(長安)이라는 말이 우선 그 맥락이다. 우리도 “장안의 화제다”라며 곧잘 사용한다. 이 단어는 ‘태평’을 향한 심리가 정치적으로 영근 이름이..

차이나別曲 2022.06.03

[유광종의 차이나별곡] [193] 침묵하는 지식인들

[유광종의 차이나별곡] [193] 침묵하는 지식인들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5.27 00:00 말이 벼룩 등의 벌레에 물려 갑자기 날뛰는 경우가 있는가 보다. 그 상황을 적는 한자는 ‘소(騷)’다. 이 글자의 우리 용례도 제법 많다. 소란(騷亂), 소동(騷動), 소요(騷擾) 등의 사례다. 소객(騷客)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흔히 시를 읊는 문인을 일컫기도 한다. 일러스트=김성규 글자만을 보면 ‘소란을 떠는 사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유래는 문학작품이다. 고대 중국 남방문학의 대표에 해당하는 ‘초사(楚辭)’의 ‘이소(離騷)’편이다. 정의롭지 않은 세상사에 대한 원망을 작자 굴원(屈原)이 낭만주의 시풍으로 그려낸 걸작이다. 그 작품의 후대 영향이 아주 커 무릇 시를 짓는 사람들은 ..

차이나別曲 2022.05.27

[유광종의 차이나별곡] [192] ‘내빼기’에 몰리는 민심

[유광종의 차이나별곡] [192] ‘내빼기’에 몰리는 민심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입력 2022.05.20 00:00 두 가지 대립적인 개념을 한데 엮는 단어 구성은 중국의 언어 전통에서 퍽 돋보인다. 음양(陰陽), 강약(强弱), 노소(老少) 등이 사례다. 그런 맥락에서 잘나가는 학문이나 학설을 현학(顯學), 그 반대를 은학(隱學)으로 적을 때가 있다. ‘두드러짐[顯]’과 ‘가려짐[隱]’의 뚜렷한 콘트라스트다. /일러스트=김성규 법가(法家)의 토대를 이룬 전국시대 한비자(韓非子)는 당시의 ‘현학’으로 두 학설을 꼽았다.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다. 전자는 한(漢)에 이르러 관학(官學)의 위상을 차지한 뒤 줄곧 중국인의 삶을 지배한 대표적 학문이다. 그에 비해 다른 이에게도 사랑을 실천하라는 겸애(兼..

차이나別曲 202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