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文 文法

한문문법 07 - 허자(虛字)의 용법 ⑦ 이(以)

bindol 2021. 9. 23. 07:32

1. 이(以)자는 주로 관계사로 쓰인다. 한문에서 관계사는 대부분 동사에서부터 변화된 것인데, 이(以)자 또한 용(用)자와 같은 뜻으로서 '…을 가지고', '…으로써'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으나, 용(用)자는 동사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낸다 하겠다. 그러나 이(以)자는 단독으로는 동사로 쓰이지 못하며, 동사로 쓰일 경우는 위(爲)자와 연합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以…爲…' 의 연합된 구문은 두 가지 뜻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사실을 나타내는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만든다(삼는다)'는 뜻이며, 다른 하나는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여기다(생각하다)의 뜻인 것이다.

예1) 啞者口, 聾者耳。

벙어리는 손으로 입을 삼고, 귀먹어리는 눈으로 귀를 삼는다.

예2) 上古布貝錢, 後世銀銅之屬錢, 近代卽版印紙錢。(錢)

상고시대에는 포패로서 돈으로 삼았고, 후세에는 은동 등속으로 돈으로 만들었고, 근대에는 쇠판에 종이를 인쇄하여 돈을 만들었다.

예3) 一切事業無不學術基礎。

모든 사업은 학술로써 기초를 삼지 않은 것이 없다.

두 번째 경우의 예로

예4) 乎?

당신은 나를 모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예5) 今人往往潛心學問不切實際。

지금 사람들은 왕왕 학문에 잠심하는 것을 실제에 절실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6) 里人皆其弟小人, 而其兄長者。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의 동생을 소인이라 여겼고, 그의 형을 어른이라고 여겼다.

또한 '以…爲…' 의 구문은 두 글자가 합쳐져 '以爲'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때도 그 뜻은 '생각한다', '여긴다'는 동사이다.

예7) 其意天下事固易也。

그의 뜻은 천하사를 진실로 쉽다고 생각한다.

예8) 捨本逐末, 綜必無成。

가만히 생각하건대, 근본을 버리고 말단만 쫓으면 끝내 성공하지 못하리라.

2. 이(以)자 보어를 동사 앞에 끌어 오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때의 이(以)자는 관계사임이 틀림 없지만, 동사로 간주하여도 무방하다. 이런 경우는 두 개의 보어를 가진 구문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예로

예9) 吾不能天下與人。

나는 팔짱을 끼고 천하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다.

예10) 所乘馬贈之。

이에 타던 말을 두었다.

예11) 陳勝起山東, 使者聞。

진승이 산동에서 일어났다함을 사자가 이것을 들었다.

예12) 巨畵懸之壁間。

큰 크림 이것을 벽 사이에 걸어 놓았다.

위의 예11) 의 예문 이(以)자 밑에는 지(之)자가 생략되었고, 네번째 예문 현(懸)자 밑에는 지(之)자가 보충되어었다. 이(以)자는 그 밑에 명사를 동반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상례와 달리 동사 뒤에 이(以)자가 오는 경우도 있다. 이때의 이(以)자는 결코 동사로 간주될 수 없고, 다만 관계사라 하겠다. 예로

예13) 示人弱。

사람에게 약점을 보였다.

예14) 口實。

사람에게 구실을 주었다.

예15) 錢, 不受。(與之錢)

돈을 주어도 받지를 않는다.

예16) 書遣之, 吿將歸。(吿之將歸)

먼저 편지를 보내고 장차 돌아가리라 알렸다.

위의 예문중 위의 예15), 예16)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以)자 앞에 즉 동사 바로 뒤에 지(之)자가 생략되어 쓰인 것이다. 대개 동사 뒤에 지(之)자가 생략되면 이(以)자(그와 같이 쓰인 명사까지)는 동사 뒤에 위치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면 '錢與之'나 '與之錢'이라고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以錢與'하고는 할 수 없고 '與錢'이라고는 쓸 수 있다는 말이다.

3. 이(以)자가 관계사로 쓰일 때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뜻은 영어의 'with'와 같이, 어떤 동작이 어떤 물건을 수단으로 한다거나, 어떤 물건에 의거하여 완성되어짐을 표시한다. 예로

예17) 一指探鼻孔, 自得。

한 손가락으로 콧구명을 찌르니, 껄껄 웃으며 좋아했다.

예18) 舌耕者, 有筆耕者。

혀로 농사 짓는 이도 있고, 붓으로 농사 짓는 이도 있다.

예19) 久之, 能足音辨人。

오래되니, 능히 발자국 소리로 사람을 판별할 수 있었다.

예20) 富貴人?

어찌 거부로써 사람에게 교만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以)자(밑에 있는 명사까지)는 동사의 뒤에 올 수도 있다. 더우기 동사의 뒤에 지(之)자가 생략된 경우에는 물론이다. 예로

예21) 理, 動之情。

이치로써 깨우치고, 인정으로써 감동시킨다.

예22) 愛之, 不其道, 害之。

사랑하되, 그 도로써 하지 않으면, 바로 족히 이를 해친다.

예23) 遇强迫, 拒之死, 彼强迫亦無所用。

가령 강한 핍박을 당하더라도, 죽음으로써 이를 항거한다면, 저 강박함도 또한 소용이 없다.

예24) 時勢萬變, 而我則應不變。

시우가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나는 응당 번하지 않으리라.

4. 이(以)자가 빙자(憑藉)하는 의미를 나타낼 때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원인을 나타내고, 다른 하나는 표준을 나타내는 경우이다. 원인과 빙자의 개념은 본래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다. 예를 들면 '富貴人(부귀로써 사람에게 교만하다)'이란 구문에서 '富貴'는 '人'의 빙자물이라 하겠지만, 또한 원인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以)자를 써서 원인을 표시한 경우, 그 뒤에는 하나의 명사(혹은 대명사)를 동반하거나, 소구문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以)자가 명사를 동반한 경우면 그 위치는 언제나 동사 앞에 오게 된다. 예로

예25) 欲窮其勝, 雨未果。

그 명승지를 찾아 가려 했지만, 비 때문에 그러하지 못했다.

예26) 未嘗貧廢學。

일찌기 가난 때문에 배움을 그만 두지는 안했다.

예27) 失敗自餒, 不成功自

滿。

실패로 인하여 스스로 허탈해서는 안되고, 성공했다고 스스로 자만해서도 안된다.

예28) 人材培養而出, 器識歷練而成。

인재는 배양함으로 말미암아 나오고, 기물에 대한 지식은 경험과 훈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이(以)자 뒤에 소구문이 따르고 있을 때는 주구문의 앞에 올 수도 있고 뒤에 올 경우도 있다. 앞에 오는 경우부터 예를 들어 보자

예29) 其啞而孝也, 謂之啞孝子。

사람들은 그가 벙어리이면서 효도를 다하기 때문에 그를 벙어리효자라 불렀다.

예30) 時局多而行苟且之政。

시국이 어려움이 많다 하여서 구차(苟且)한 정치를 행하지 말아라.

예31) 國之多難, 未敢退休。

나라의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감히 물러나서 쉬지를 못하였다.

위 예문의 예31)은 소구문이 이(以)자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사조의 형식을 취하여 명사가 뒤따르는 경우와 차이가 없는 것다. 다음, 뒤에 오는 경우의 예

예32) 皆謂之啞孝子, 其啞而孝也。

모두가 그를 벙어리효자하고 부르는데, 그가 벙어리이면서 효도를 다하기 때문이다.

예33) 今人喜用萬年筆, 其便於帶也。

오늘날 사람들은 만년필을 사용하기를 좋아하는데, 그것은 휴대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예34) 其地多雲四界逼於高山也。

그 곳은 안개와 구름이 많은데, 사방 경계가 높은 산으로 꽉 들어찼기 때문이다.

이상의 예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以)자가 뒤따르는 소구문이 만약 주구문의 뒤에 올 경우에는 거의 모두가 야(也)자를 써서 일단 구문을 정지시킨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이자가 뒤따르는 소구문이 대분분 지(之)자 혹은 기(其)자를 이용하여 사조의 형식으로 변경하여 표현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以)자가 본래 관계사로서 뒤에 하나의 단사를 동반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사조가 구문상에서 하나의 단사처럼 사용되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以)자의 후면에 일반 소구가 뒤따르는 경우도 있으니, 이때의 이(以)자는 연접관계사로 보아 무방한 것이다.

5. 표준을 나타내는 이(以)자는, 영어로 'according to ~ ' 나 'in view of ~ ' 등과 같은 뜻일 경우이다. 즉 '~에 따르면', '~의 관점에서 본다면'이라는 의미가 나타난다. 이에 이(以)자는 통상 동사의 앞에 오게 된다.

예35) 衆客次就坐。

여러 손님이 차례에 따라 앉았다.

예36) 園有門, 時啓閉。

정원에 문이 있는데, 시간에 따라 열고 닫는다.

예37) 閱覽室中, 男女別左右。

열람실 안에서 남녀에 따라서 좌우를 갈랐다.

예38) 利息之月計者爲月息, 年計者爲週息。

이식(이자)은 월로 셈하면, 월식이 되고, 변으로 셈하면 주식이 된다.

예39) 奴畜之, 彼亦奴者居。

사람을 노예라는 관점에서 기르고, 그도 또한 노예의 관점에서 스스로 지낸다.

6. 이(以)자는 또한 시일을 나타내는 품사에 끼어들어 마치 어(於)자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용법은 동사의 앞에서만 한정되고 어(於)자처럼 동사의 뒤에는 거의 사용되지 아니한다. 예로

예40) 八月十九日返, 而君中秋後一日行, 終不得一

나는 8월 19일에 돌아오고, 그대는 중추후 1일에 떠났으므로, 결국 한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예41) 至道乙未歲, 自翰林出上。

나는 지도 을미년에 한림으로부터 저강에 나왔다.

예42) 孟嘗君五月五日生, 其父告其母日: 「勿擧也。」

맹상군은 5월 5일 출생하였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거동하지 말라.' 하였다.

7. 이제 이(以)자와 결합된 어구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이(以)자 소(所)자와 결합하여 '所以'라는 숙어로 쓰이는 경우가 구문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것은 '…하는 까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예로

예43) 人類之萬物之靈者, 尚智而不尙力也。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까닭은 지혜를 숭상하고 힘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44) 彼之工藝日精, 製造日者, 恃機器爲之用也。

저들이 공예품이 날로 정치(精緻)해지고, 제조품이 날로 확대되는 까닭은 기계를 믿고 이것을 이용한 때문이다.

예45) 君子之爲君子, 小人之爲小人, 皆此一念之差也。

군자가 군자인 까닭과 소인이 소인이 까닭은 모두가 이 한 가지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이와 같이 '所以'가 상구에 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나 하구에 오는 경우도 있다. 예로

예46) 尙智而不尙力,此人類之所爲萬物之靈也。

지혜를 숭상하고 완력을 숭상하지 않음, 이것이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된 까닭이다.

예47) 有機器則人力省而成本廉, 此其工藝日精而製造日宏也。 

기계가 있으면 인력이 절약되고 밑천도 저렴하게 되어 이것이 공예품이 날로 정치해 지고 제조품이 날로 확대되는 까닭이다.

예48) 親賢臣遠小人, 此先漢也, 親小人遠賢臣, 此後漢也。

현신을 친하고 소인을 멀리한 것, 이것이 선한의 응융한 까닭이요, 소인을 친하고 현신을 멀리한 것, 이것이 후한이 무너진 까닭이다.

'所以'가 들어 있는 구문은 '~ 하는 까닭' 이라는 의미가 따르기 때문에 그 다음에 오는 구문은 '~하는 때문이다'라는 의미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所以'가 들어 있는 구문 뒤에는 자(者)자가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자(者)자에는 '~라는 까닭(之故)'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이것은 '所以'를 '~하는 바'의 뜻으로만 생각하는 경우이다.

8. 이(以)자 시(是)자와 연합하여 '是以'로 쓰이거나, '以此'로 쓰이는 경우도 자주 나타난다. 이것도 '이 때문에(because of this)'라는 뜻으로 구수(句首)에 쓰이기도 하고 구중(句中)에, 즉 주어와 설명어 사이에 쓰이기도 한다.

예49) 其爲人也, 多疑而寡斷, 吾

去之。

그의 위인(爲人)이 의심이 많고, 결단력이 부족하다. 나는 이 때문이 그를 떠났다.

예50) 君子之於禽獸也, 見其生不

忍見其死, 聞其聲不忍食其肉, 君子遠庖厨也。

군자는 금수에 있어서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차마 그것이 죽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듣고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군자는 푸주(庖厨)간을 멀리한다.

'是以'는 곧 '以是'이다. 그러나 '以是'라고 자주 쓰이지 않고, 그 대신에 '以此'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이것은 하나의 습관이라 하겠다.

예51) 余借書必如期送還, 人多書借余。

나는 책을 빌리면 반드시 기약한대로 돌려 보낸다. 이 때문에 사람이 많이 나에게 책을 빌러 준다.

예52) 其術不, 不爲人所知。

그 기술을 숨기고 스스로 밝히지 아니하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였다.

9. 이밖에 이(以)자 유(有)자 무(無)자와 결합하여 '有以', '無以'로 쓰인다. 이것 역시 하나의 숙어처럼 보인다. 예로

예53) 殺人與刀, 異乎?

살인을 하는데 몽둥이와 칼로 함에 다를 바가 있는가?

예54) 余歸鄕而爲家。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도 집을 삼을 바가 없다.

예55) 惟足下敎之。

오직 족하(동료)만이 이를 가르칠 수 있다.

예56) 吾人生於劇變之世, 茍中心無主, 不彷徨, 自處。

우리들은 급변하는 세상에 태어나서, 만약 마음 속에 줏대가 없다면, 방황하지 않는자가 드물어 스스로 대처할 수가 없다.

위에서 '有以', '無以' 이(以)자 3항의 용법임이 틀림없다. 이것은 '有所以'와 '無所以'의 략(略)이라고 보거나, '有可以', '無可以'의 략(略)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3항과 같은 용법으로 보는 까닭은 아래 예문 '何以'의 경우와 비교하여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예57) 爲家? 無爲家。(無爲家之資)

무엇으로써 집을 지을 것인가? 집을 지을 것이 없다. (집을 지을 재료가 없다.)

예58) 敎之? 有敎之。(有敎之之言)

무엇으로 가르칠 것인가? 가르칠 바가 없다.(가르칠 만한 말이 없다.)

예59) 異乎? 有異乎? (有相異之道乎? )

무엇이 다른가? 다른 것이 있는가? (서로 다른 바의 도가 있는가?)

10. 이상에서 우리는 이(以)자의 관계사(전치사 혹은 후치사)로서의 용법에 대하여 주로 살펴왔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음에 설명한 연접관계사 이(而)자와 같이 사용되는 경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두 개의 형용사를 연접시키는 경우부터 보자.

예60) 其責己也重周, 其待人也輕約。

자기를 책하는 일은 무겁고 주도하나 다른 사람에 대하여는 가법고 간약(簡約)하다.

예61) 近, 則遊者衆, 險遠, 則至者少。

편하고 가까우면 놀러가는 자가 많지만, 험하고 멀면 이르는 자가 적다.

예62) 視駝所種樹, 或遷徙, 無不活, 且硬茂, 早實蕃。

타(郭駝) 가 심은 나무는 혹 옮겨 심어도 살지 않음이 없고, 또 크게 무성하며 일찍 열매를 맺고 주렁주렁 매달린다.

위에서 쓰인 이(以)자는 비교적 고문의 색채가 많아서, 이(而)자에 비하면 자주 쓰이거나 통속적인 것은 아니다. 이(以)자는 다만 순접일 경우에만 쓰이고 역접일 경우에 이(而)자를 쓰지 아니하면 안된다.

11. 이(以)자는 또한 형용사나 동사에 부사를 연접시키는 데 사용된다.

예63) 今夫人, 生而呱呱啼, 啞啞異也。

이제 무릇 사람이 낳으면 으앙으앙 울고 벙긋벙긋 웃고 하여 다를 것이 없다.

예64) 其聲急者, 促, 緩者, 和。

그 소리가 급한 것은 슬픈듯 촉박하고, 느린 것은 퍼진듯 온화하다.

위와 같은 용법의 이(以)자도 역시 이(而)자처럼 보편화된 석은 아니다.

12. 이(以)자는 두 개의 각각 다른 주어의 소구문을 연접시킬 수는 없지만, 두 개의 동사 및 그 부속부분을 연접시킬 수 있다. 이러한 용법의 이(以)자는 단순한 여과(濾過)작용만을 하는 이(而)자의 순접용법과 같은 경우는 대단히 드물고, 대부분 특수한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용법은 아래의 행위가 위의 행위에 대한 목적일 경우이다. 예로

예65) 聽其音辨其姓氏, 審其語判其是非。

그 소리를 듣고 그 성씨를 판별하고, 그 말씨를 살펴서 그 시비를 판단한다.

예66) 爪其膚驗其生枯, 其本觀其疏密, 而木之性日離矣。

그 껍질을 긁어서 그것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 밑둥을 흔들어서 그것이 엉성한지 빽빽한지 살펴보면, 나무의 천성을 날로 유리될 것이다.

예67) 務須繼努九, 求貫徹。

계속 노력함으로써 관철(貫徹)을 구하여야 한다.

예68) 讀書有得, 當隨時筆記, 免遠忘。

책을 읽어 얻음이 없으면, 마땅히 수시로 필기를 하여서 잊어버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위의 예문은 모두 아래 행위가 위의 행위에 대한 목적일 경우이다. 이(以)자 번역이 '~써', '~을 가지고'라고 나타나지 안했을지라도, 그러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以求', '~以免'의 구문에서 목적의 뜻은 뚜렷하다. 이러한 용법은 기술한 이(以)자 3항과 상통하는 것이며, 이(以)자 '以之'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13. 때때로 이(以)자는 목적을 표시하지 않고 결과를 표시하여 '以之'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예69) 發憤忘食, 樂忘憂。

분이 나서 식사도 잊고, 즐거워서 걱정까지도 잊는다.

예70) 回也聞一知十, 賜也聞一知二。

회(回)는 하나를 들으면 열까지 알고, 사(賜)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한다.

예71) 或多難興邦, 或逸豫

身。

혹은 많은 어려움으로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혹은 안일로 망신까지도 한다.

예72) 可戰而不戰, 亡其國, 可悲也。

싸울 수 있는데도 싸우지 않아 그 나라까지 망하면 슬픈 일이다.

목적과 결과, 이 두 가지 개념은 대단히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위의 예72)에서 '亡國'은 '不戰'할 때의 기대하는 결과는 아니므로, '不戰'의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以)자의 용법은 전술한 이(以)자 4항과 상통하며 '以此'와 같은 것이다. 또 이러한 이(以)자 이(而)자로 바꿔 사용할 수도 있다. 즉 예69) '樂忘憂'을 '樂忘憂', 예70) '聞一知十'를 '聞一知十'이라 하여도 전혀 차이가 없다.

14. 이(以)자는 또한 그 위의 행동이 그 아래의 행동에 수단이나 바법이 돔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예로

예73) 有穴然, 予與友入。

굴이 어둑하여, 나와 틴구는 불을 받쳐들고서 들어갔다.

예74) 群賊爲之心折, 傾耳聽。

뭇 도적들이 이 때문에 마음이 변하여 귀를 기울려서 들었다.

예75) 呼其名而之, 談笑死。

그 이름을 부르며 이를 꾸짖고, 담소하면서 죽었다.

예76) 太子及賓客知其事者, 皆白送之。

태자 및 그 사실을 아는 손님들은 모두 흰 의관을 입고서 이를 전송하였다.

수단과 목적은 본래 상대적인 것이다. 위의 예75)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래의 사실이 위의 사실에 대한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12항 참조) 그러나 여기서의 내용은 확실히 아래의 사실이 주체가 되고, 위의 사실은 단지 그 수단과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비록 결과가 '死'이기는 하지만, '死' '談笑'의 결과는 아니다. '談笑'는 단지 '死'의 정태에 불과하다. 이러한 구문의 이(以)자 이(而)자로 바꿔 쓸 수 있다.

15. 이(以)자 '以上', '以東' 등과 같은 말에 쓰인다. 이는 이(而)자보다 더욱 보편화한 것이다.

예77) 外, 將軍制之。

나 이외는 장군이 이를 제지한다.

예78) 五嶺南, 古爲百粤之地。

오령 이남은 옛널 백월의 땅이었다.

예79) 於是延畫工命之曰:「鼻上畫有光, 鼻下畫大姉。」

이에 화공을 맞이하여 명하기를 ; '코이상은 유광으로 그리고, 코 이하는 큰 누님을 그리라' 하였다.

예80) 六十點上爲合格。

60점 이상은 합격이다.

이(以)자를 쓰든, 이(而)자를 쓰든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위에 명사가 범위 안에 포함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점이다. 위의 예79)에서 '鼻以上'과 '鼻以下'는 비가 포함되는 것이 '有光'의 것인가? '大姉'의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다. 이(以)자 통상적으로 어떤 범위안에 포함되는 경우에 쓰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 특히 법안문상에 한자표시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명백히 해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81) 六十點上爲合格, 五十九點下爲不合。

60점 이상은 합격이고, 59점 이하는 불합격이다.

예82) 月利在二分及二分上者爲高利者。

월리로 2% 및 2% 이상인 자는 고리채자가 된다.

예83) 年滿二十足歲者須服兵役, 滿四十五歲上者免。

나이가 만 20세가 찬 자는 반드시 병역복무를 하여야 하고, 만 45세 이상인 자는 면제된다.

16. 이(以)자는 또 지(至)자 급(及)자와 결합하여 '以至', '以及' 등의 숙어를 이룬다, 예로

예84) 自王公卿相工藝雜流, 凡有名者, 皆留像於

왕공경상으로부터 공예잡류에 이르기까지 무릇 유명한 사람은 모두 집에 사진을 남겨 놓았다.

예85) 一地之山川形勝風俗人情, 無不詳載。

한 지방의 산천 명승지로부터 풍속인정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실려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러한 이(以)자는 본질적으로 이(而)자(16, 17 항 참조) 와 같은 것이지만, 그 용법이 같지 않기 때문에 서로 비교항 연구하여 볼 만한 것이다.

17.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以)자 이(而)자는서로 비슷한 용법이 많다. 또한 의미상으로는 똑같지 않지만, 형식적으로는 똑같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문중에서는 왕왕 섞여 쓰이기도 한다. 특히 변려체(騈儷體) 문장에서는 자주 이(以)자 이(而)자가 상대적으로 쓰이고 있다. 예로

예86) 由千里浦而南, 直橋並小港東, 盡周氏也。

천리포의 남쪽에서부터 직교와 소항 동쪽에는 모두 주씨이다.

예87) 自知事不就, 柱而笑, 

형가(荆軻)는 일이 성취되지 못할 줄 스스로 알고, 기둥에 의지하여 웃고, 웅크리고 앉아서 꾸짖었다.

예88) 舟遙遙, 風而吹衣。

배는 건들건들 가벼히 떠나가고, 바람은 한들한들 옷에 불어온다.

예89) 登東泉, 隨清流而賦詩。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물 따라 시를 읊는다.

출처 : 신아사출판 홍인표저 한문문법(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