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334

늙어야 보이는 것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하루에 저녁이 있고, 한 해에 세모(歲暮)가 있듯이, 인생에도 만년(晩年)이 있기 마련이다. 젊은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들은 늙지 않을 것이고, 지금 늙은 사람들은 본래부터 늙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얕은 성취나 재주에 기고만장하기도 하고, 돈벌이나 출세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나이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각도, 인생의 가치에 대한 견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젊은 사람이 보기에, 의기소침하고 기운 없고 쓸쓸할 것만 같은 인생의 만년(晩年)도 그 나이가 되어서 보면, 분명히 다르게 보이게 되어 있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만년(晩年)을 맞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특유의 담담한 어조..

눈 쌓인 겨울 저녁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겨울은 한해의 끝자락이다. 그래서 그런지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늙은 나이가 부쩍 의식이 된다. 나이 한살의 무게가 실감이 나는 계절이 겨울인 것이다. 한 해가 넘어가는 겨울, 여기에 하루해가 넘어가는 저녁이면 나이 든 사람들은 옛 추억이 떠올라 감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겨울 저녁에 눈이 쌓인 모습을 보고 언젠가 가 보았던 친구의 집이 아련히 떠올랐다. ◈ 겨울 저녁 눈을 보며 호거사의 집을 생각하다(冬晩對雪憶胡居士家) 寒更傳曉箭(한경전효전) : 차가운 저녁북소리 새벽으로 전해 가는데 淸鏡覽衰顔(청경람쇠안) : 맑은 거울에 초췌한 얼굴 비춰본다. 隔牖風驚竹(격유풍경죽) : 창 밖에는 바람 불어 대나무 놀라고 開門雪滿山(개..

겨울 소나무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속성으로 말미암아, 소나무는 옛날부터 지조나 절개 같은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나무로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아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찍이 춘추시대(春秋時代)의 공자(孔子)가 “한 해가 저물어 겨울이 오고 나서야, 송백(松柏)이 나중에 시듦을 알 수 있다”고 설파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속세를 떠나 고고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소나무는 언제나 스승인 동시에 벗이었다. 당(唐)의 시인 송지문(宋之問)이 본 소나무의 인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 제노송수(題松樹) 歲晩東巖下(세만동암하) : 동쪽 바위 아래 한 해가 저무는데 周顧何悽惻(주고하처측) : 주위를 돌아보니 어찌 이리 서글픈지 日落西山陰(일락서산음) : 서산에 해지니..

강남의 단귤

김태봉 풀은 아예 자취를 감추었고, 나무엔 잎 새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겨울이 되어야만, 비로소 눈에 띄는 것들이 있는데, 중국 강남 지역에 서식하는 단귤(丹橘)나무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단귤은 눈과 얼음의 혹한을 견뎌야 하는 송백(松柏)과는 달리 겨울에도 날씨가 비교적 온화한 지역에서 서식하는 특징이 있지만, 그래도 겨울을 견디어 이겨내는 것은 송백(松柏)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당(唐)의 시인 장구령(張九齡)은 이러한 단귤에게서 세한심(歲寒心)을 읽어냈다. 감우(感遇) 江南有丹橘(강남유단귤) ;강남 땅에 단귤나무 있어 經冬猶綠林(경동유녹림) ;겨울 지나도 여전히 푸른 숲이네 豈伊地氣暖(개이지기난) ;어찌 그 땅이 따뜻해서리요 自有歲寒心(자유세한심) ;스스로 추위 이기는 마음이 있다네 可以荐嘉..

동지가 지나고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한 해 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이 동지(冬至)이다. 차츰 짧아지기만 하던 해는 이날을 기점으로 짧아짐을 멈추고, 서서히 길어지는 단계로 접어든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일들에는 동지(冬至)와 같은 변곡점이 반드시 내재되어 있다. 짧아지면 어느 날을 기점으로 해서는 반드시 길어지고, 낮아지면 어느 날에는 반드시 높아지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그러나 하나 예외가 있으니, 인생이 그것이다. 인생은 흘러가기만 할 뿐, 돌아오는 변곡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지(冬至)가 지난뒤에 느끼는 쓸쓸함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가 그러하였다. 동지 후에(至後) 冬至至後日初長(동지지후일초장):동지가 후에 해가 처음으로 길어지니 遠在劍南思洛陽(원재검남..

어떤 고향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사람으로 태어나 살다 보면, 자의로든 타의로든 고향을 떠나고 집을 나가서 살아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어 있다. 여행이나 일로 인한 경우는 덜 하겠지만, 가난이나 화(禍)를 피해서, 또는 어떤 형태로든 불우(不遇)로 인해 그런 일을 당하면, 그 심정은 말할 수 없이 불안하고 외롭고 쓸쓸할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에서 맞는 객지 생활은 순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마음 다스리기이다.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곳이지만, 그곳도 고향이려니 생각하며 정을 붙이고 살려면, 먼저 마음부터 다스려져야 한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정치적 불우(不遇)로 인해 여러 차례 폄적(貶謫)을 당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구강(九江)의 여산..

고갯마루의 눈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소한(小寒)이 지나고 나면 겨울도 거의 반환점을 돈 것으로 보아도 된다. 겨울 한복판에 여기저기 눈을 돌리면 보이는 것이 바로 눈이다. 들판을 하얗게 덮은 것도, 산등성이에 하얗게 굽이친 것도 모두 눈이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눈은 비가 추워서 변한 것에 불과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비와 크게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다. 새하얀 빛깔 때문에 순결의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하고, 목화 솜 같은 질감 때문에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눈의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송(宋)의 시인 양만리(楊萬里)에게 눈은 무엇이었을까? 고갯마루의 눈(嶺雪) 好山幸自綠嶄嶄(호산행자녹참참) : 좋은 산은 저절로 푸르고도 가파르고 須把輕雲護深嵐(수파경운호심람) : 가벼운 구름 가져..

슬픔의 미학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회자정리(會者定離)요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 했던가? 법화경(法華經)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사람의 삶이란 만남과 헤어짐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시대라도 이별은 어쩔 수 없이 슬픈 일일 수밖에 없으니 하물며 한 번 헤어지고 나면 깜깜 무소식이던 시절에야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정든 고향,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면서 느끼는 소회(所懷)를 담담하게 읊은 이별시는 시공(時空)을 초월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당(唐)의 시인 두목(杜牧)에게도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증별(贈別) 多情卻似總無情(다정각사총무정) : 다정함이 도리어 무정함과 같아 惟覺樽前笑不成(유각준전소불성) : 술항아리 앞에서도 웃음이 안 나옴을 느낄 ..

어떤 인생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사람은 저마다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이 숙명처럼 붙어다닌다. 도대체 이유는 무엇일까? 부모를 어떻게 만나는가에 따라서 빈부가 결정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렇다면, 부지런하면 부자가 될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운명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있을 수 없다. 정답은 사람들은 모두 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다. 그것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말이다. 송(宋)의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우연한 기회에 길을 지나다 어떤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가난한 인생이었을까? ◈ 길가 점포(道傍店) 路傍野店兩三家(노방야점량삼가) : 길가에 시골 가게 두세 집 淸曉無湯況有茶(청효무탕황유다) : 새벽에 뜨거운 물 없는데 하물며 차가..

나그네와 동백꽃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역마살(驛馬煞)이라도 낀 것일까?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몇 달이면 이곳저곳 거처를 옮겨 다니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타고난 팔자 탓이라고 한다면 자의(自意)로 떠도는 것이니 그러한 타향살이야 감수(甘受)할 만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귀양살이처럼 순전히 타의(他意)에 의한 타향살이는 여간한 인내심을 갖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생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조선(朝鮮)의 시인 정약용(丁若鏞)은 반평생을 유배지(流配地)를 떠돌아야 하는 기구한 신세였다. 시인의 고단한 타향살이에 위안이 된 것은 바로 동백꽃 한 송이였다. ◈ 나그네 속마음(客中書懷) 北風吹我如飛雪(북풍취아여비설) : 북풍이 흰 눈처럼 날리어 내게 불어오고 南抵康津賣飯家(남저강진매반가) : 나는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