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334

지난 봄 되찾기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일찍이 그의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라는 글에서 하늘과 땅이라는 것은 만물이 잠깐 묵었다 가는 여관이고, 빛과 그늘이라는 것은 백대를 걸쳐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라고 설파한 바 있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세월은 참으로 꾸준하고 참으로 무심하다. 봄도 예외가 아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왔다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가는 것이다. 끝도 모를 옛날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사람들 모두 이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아쉬움마저 떨칠 수는 없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가는 봄이 아쉬워 그것을 찾아 나서기까지 하였다. ◈ 대림사 복숭아꽃(大林寺桃花) 人間四月芳菲盡(..

꽃은 지고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사람들이 유난히 봄을 짧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봄에 피는 꽃 때문일 것이다. 봄의 물리적인 시간은 다른 계절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사람들은 꽃이 피면 봄이 왔다고 생각하고, 꽃이 지면 봄이 갔다고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봄이 다 가기도 전에 꽃은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당(唐)의 시인 이상은(李商隱)도 떨어진 꽃잎을 보고 봄이 간다고 느낀 것은 마찬가지였다. ◈ 낙화(落花) 高閣客竟去,(고각객경거) 높은 누각엔 손님들 마침내 떠나고 小園花亂飛.(소원화난비) 작은 동산에는 꽃이 어지러이 날도다 參差連曲陌,(삼차련곡맥) 이리저리 날다가 굽은 밭두렁에 닿았고 迢遞送斜暉 .(초체송사휘) 멀리까지 날아가 지는 햇빛에 실려 가누나 腸斷未忍掃,(장단미인..

근심 내보내기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근심일 것이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지위가 높으면 높은 대로, 지위가 낮으면 낮은 대로 근심은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인간은 삶을 영위하는 동안은 적어도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근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근심을 어떻게 푸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근심이란 놈이 저절로 알아서 물러가는 것일 텐데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 근심이 저절로 떠나다(自遣) 對酒不覺瞑(대주부각명) : 술잔 마주하니 날 저문 줄 몰랐는데 花落盈我衣(화락영아의) : 꽃잎은 떨어져 나의 옷깃에 가득하구다 ..

매실과 파초 그리고 늦잠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매화나무는 꽃으로는 봄을 알리고, 열매로는 여름을 알리는 계절의 전령사이다. 매실은 특이하게도 빨갛게가 아니라 파랗게 익어간다. 과연 여름을 알리는 열매답지 않은가? 물론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것은 매실만이 아니다. 온갖 초목들이 진초록의 이파리를 드리우는 것 또한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남송(南宋)의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파란 기운의 초여름 풍광을 통해 인생을 관조(觀照)했다. ◈ 한가히 사는 초여름 오후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閑居初夏午睡起) 梅子留酸軟齒牙(매자류산연치아) : 매실의 신맛이 남아 치아를 무르게 하고 芭蕉分綠與窓紗(파초분록여창사) : 파초는 초록빛을 나누어 비단 창문에 주는구나 日長睡起無情思(일장수기무정사) : 해 길어 잠에서 깨어 아무런 생각 없..

초여름의 하루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계절은 계절마다 나름의 모습이 있다. 초여름도 예외는 아니다.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는 초여름을 일컫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초여름은 뭐니뭐니해도 우거진 나무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 그 풍광의 중심이 아닐 수 없다. 초여름을 지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초여름의 풍광을 벗 삼아야만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자신의 초여름 나기를 담담한 어조로 읊고 있다. ◈ 산해경을 읽으며(讀山海經) 孟夏草木長(맹하초목장) : 초여름이라 초목은 자라나 繞屋樹扶疎(요옥수부소) : 집을 빙 둘러 나무가 무성하다 衆鳥欣有託(중조흔유탁) : 새들은 의지할 곳 있음 기뻐하고 吾亦愛吾廬(오역애오려) : 나도 내 초막집을 좋아하노라 旣耕亦已種(기..

석류 꽃과 여름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여름의 주인공은 꽃이 아니다. 봄 천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각양각색의 꽃들은 여름이 되면, 대부분 떨어져 사라지고 만다. 그 대신 연록(軟綠)의 어린 태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농익을 대로 농익은 녹색의 이파리들이 제 세상을 구가(謳歌)한다. 그러나 녹색이 지배하는 여름 철에도 주눅들지 않고 꿋꿋이 자신만의 자태를 뽐내는 꽃이 있으니, 석류(石榴) 꽃이 그 주인공이다. 송(宋)의 시인 소순흠(蘇舜欽)의 별장에도 석류가 꽃을 피워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여름 날(夏意) 別院深深夏簽淸(별원심심하점청) : 별채 깊고 깊은 곳에 여름 돗자리 시원하고 石榴開遍透簾明(석류개편투렴명) : 석류꽃 활짝 피어 주렴 안까지 밝게 비추누나. 松陰滿地日當午(송음만지일당오) : 정오에 소나무 ..

여름밤의 감흥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땡볕일 것이다. 그래서 땡볕을 가려주는 그늘을 찾아 들어가고, 땡볕이 아예 없는 밤을 기다리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여름밤은 사람들에게 반갑고 매력적인 존재이지만, 낮 시간이 길어진 만큼, 시간이 짧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아무리 농익은 녹음(綠陰)일지라도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몸과 마음이 편해야 풍광을 즐길 여유가 생길 것 아닌가 그래서 여름은 밤의 풍광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운치로 다가오곤 하는 것이리라. 당(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에게도 여름은 밤이 좋은 계절이었다. ◈ 어느 여름 남정에서 신재를 생각하며(夏日南亭懷辛大) 山光忽西落(산광홀서낙), : 산의 해 홀연히 지고 池..

어느 농촌의 여름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한여름 농촌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은 한가하고 느리다는 것이다. 더위에 지쳐 일을 하기도 힘들지만, 또 딱히 바쁜 일도 없는 편이다. 여름이 아무리 덥더라도, 더우면 더운 대로 다 사는 법이 있게 마련이다. 여름의 한가하고 느릿한 속성에 사람이 맞추어 사는 것이 그 방법이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는 한여름 농촌에서 기거하며, 그 풍광 속에서 인생을 관조(觀照)하고 있다. ◈ 시골집(渭川田家) 斜光照墟落(사광조허락) : 저녁 햇빛 마을 비추고 窮巷牛羊歸(궁항우양귀) : 외진 골목길로 소와 양 돌아온다 野老念牧童(야로념목동) : 촌 늙은이 목동을 염려해 倚杖候荊扉(의장후형비) : 지팡이에 의지해 사립문에서 기다린다 雉雊麥苗秀(치구맥묘수) : 꿩은 울고 보리 싹은 꽃피고 蠶..

은거의 모습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 등 사람들의 관계는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는 맛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문득문득 모든 관계를 끊고 혼자서 살아가는 것을 꿈꾸곤 한다. 그러나 대개는 생각에 머물 뿐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남의 눈을 피해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고, 남으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혼자 사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은 경우도 있겠지만, 은거(隱居)의 보통 유형은 세속적 가치와 인위적 삶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자연의 일부로서 무념무상의 상태를 견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唐)의 시인 유장경(劉長..

여름이 좋은 이유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여름은 더워야 맛이다. 사람들은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하려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정작 더위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다. 산야의 초목들은 여름 더위를 먹어야만 비로소 결실(結實)의 성과를 이룰 수 있고 사람들의 농사 또한 더위를 거치지 않고는 어떠한 수확도 거둘 수 없으니 말이다. 송(宋)의 시인 소식(蘇軾)은 여름 더위가 주는 혜택을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 유종권 련구에 사족을 붙이다(足柳公權聯句) 人皆苦炎熱(인개고염열) : 사람들 모두 더위를 괴롭다하나 我愛夏日長(아애하일장) : 난 여름날이 긴 것이 좋다네 薰風自南來(훈풍자남내) : 따뜻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고 殿閣生微凉(전각생미량) : 전각엔 잔잔하고 시원한 바람이 인다 一爲居所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