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334

태산의 위엄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올망졸망 야트막한 동네의 야산들은 사람들에게 정겨움으로 다가오지만, 우뚝 솟은 큰 산은 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산세는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고, 산속의 비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큰 산에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오악(五嶽) 중 동악(東嶽)인 태산(泰山)은 그 기험한 산세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데, 그 산의 위엄(威嚴)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는 표현의 달인이었지만, 그 역시 태산(泰山)의 위엄을 그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대종산을 바라보며(望岳) 岱宗夫如何(대종부여하), ;대종산은 무릇 어떻게 하길래 齊魯靑未了(제노청미료). ;제나..

망여산폭포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한여름의 무더위와 인간사의 번다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것으로는 산 속의 폭포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이과수 같은 거대한 폭포가 아닐지라도 산속 깊고 높은 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힘들여 오른 나그네에게 그 수줍은 자태를 보여주는 폭포로는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九江)시 외곽에 있는 여산(廬山)의 삼첩천(三疊泉)을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다. 이 폭포만큼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이름을 지닌 폭포는 찾기 어려운데, 이는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의 붓 덕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望櫻┌瀑布)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 향로봉에 해 비치니, 자색 안개 피어올라 遙看瀑布掛前川(요간폭포괘전천) : 아득히 폭포 바라보니..

초가을 상념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가을이 여름과 가장 다른 것은 아마도 빛깔일 것이다. 같은 빛깔일지라도 한층 맑고 투명한 것이 가을 빛이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세월의 흐름이 선명히 보이는 지도 모른다. 눈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세월의 흐름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이 오면 자신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고, 우수(憂愁)와 상념(想念)에 빠져들곤 한다. 남송(南宋)의 시인 문천상(文天祥)에게도 가을은 애틋한 정을 북돋우는 계절이었다. ◈ 초가을(早秋) 隻影飄零天一涯(척영표령천일애) : 외로운 그림자는 하늘 가를 떠다니며 千秋搖落亦何之(천추요락역하지) : 천추에 흔들려 떨어져 또한 어디로 가려나 朝看帶緩方嫌瘦(조간대완방혐수) : 아침에 보니 허리띠 느슨해져 이제는 수척해짐이 싫고 夜怯衾單始覺衰(..

어느 가을밤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사람들은 가을에 유독 외로움을 타기 쉽다. 그래서 가족이 그립고, 고향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다. 홀로 먼 타향을 떠돌다가 가을을 맞는 사람들의 외로움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맑고 아름다운 가을 풍광을 함께 하지 못하는 서글픔과 쌀쌀해진 날씨와 지는 낙엽이 주는 쓸쓸함이 합쳐져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만들어낸다. 이런 가을날에 객지에서 가까운 친구들을, 그것도 뜻하지 않게 우연히 만난다면 그 반가움이 어떻겠는가? 당(唐)의 시인 대숙륜(戴叔倫)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 객사에서 친구들과 우연히 모이다(江鄕故人偶集客舍) 天秋月又滿,(천추월우만), 때는 가을, 달은 또 보름달 城闕夜千重.(성궐야천중), 성궐에 밤이 들어 밤은 천 겹이나 깊은데 還作江南會,(환작강남회), 강남..

가을 국화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가을 하면 떠오르는 꽃은 뭐니뭐니해도 국화이다. 색깔과 모양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기도 하지만, 어느 것이든 가을 느낌을 풍기기는 매한가지이다. 집안에서 정성들여 기른 국화는 고고한 선비의 기품을 지니고 있고, 산야를 덮고 있는 들국화는 청초하면서도 강인하다. 이러한 국화를 보게 되면, 사람들은 가을 정취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도 예외가 아니었다. ◈ 몽득과 술 사 마시고 후일을 기약하며(與夢得沽酒閑飮且約後期) 少時猶不憂生計(소시유불우생계) : 젊어서도 생계에 마음 두지 않았거늘 後誰能惜酒錢(노후수능석주전) : 늙고 난 뒤 누가 술값을 아낄 수 있을까 共把十千沽一斗(공파십천고일두) : 일만 전을 모두 들여 술 한 말 사는데 相看七十缺三年(상간..

가을 상념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맑고 푸른 하늘에 한 조각 흰 구름이 떠 있는 모습은 가을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여기에 기러기까지 가세하면 가을 하늘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이다. 그러나 가을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부쩍 쌀쌀해진 바람이라도 갑자기 불어오고, 낙엽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모습은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쓸쓸한 모습을 지닌 것이 가을이다.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이러한 가을의 양면성을 잘 그려내고 있다. ◈ 추사(秋思) 夕照紅於燒(석조홍어소) : 석양은 타는 불빛보다 붉고 晴空碧勝藍(청공벽승람) : 맑은 하늘은 쪽빛보다 푸르네 獸形雲不一(수형운불일) : 짐승모양 구름은 일정하지 않고 弓勢月初三(..

가을 연꽃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가을을 표현하는 형용사를 하나 들라하면 그것은 ‘맑다’일 것이다. 가을이면 우선 하늘이 맑고, 다음으로 날씨가 맑고, 마지막으로 물이 맑다. 맑은 하늘 아래서, 맑은 날씨에, 맑은 물에 고운 연꽃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허난설헌(許雪軒)은 길지 않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호사(豪奢)를 누리는 행운이 있었다. ◈ 채연곡(采蓮曲)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 가을은 맑고 긴 호수엔 벽옥 같은 물 흐르고 荷花深處繫舟(하화심처계난주) : 연꽃 우거진 곳에 아름다운 목련배 매여 있다네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 임을 만나 물 사이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 멀리 사람들이 알아보아서..

가을 마중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가을은 산으로부터 온다. 낮은 세상은 아직 한여름인데도 높은 산은 어느덧 가을이다. 산에 가까울수록 가을은 그만큼 가까워진다. 물론 고도의 차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현상이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들이 가을이 오기를 고대하는 것은 한여름 무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을이 가져다주는 정서의 풍요로움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당(唐)의 시인 온정균(溫庭筠)은 가을을 맞으러 산에 들어가 이른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였다. ◈ 초가을 산에서(早秋山居) 山近覺寒早(산근각한조) : 산이 가까워지니 추위가 이름이 느껴지고 草堂山氣晴(초당산기청) : 초당에 산 기운은 맑기만하구나 樹凋窓有日(수조창유일) : 나뭇잎 시드니 햇빛 창에 들고 池滿水無聲(지만수무성) : 못에 물..

매미의 울음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것을 제일 아쉬워하는 것이 있다면, 이는 아마도 매미가 될 것이다. 여름이 한창을 지나 막바지로 향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사방천지에서 끝 모를 울음을 온몸으로 토해내는 것이 매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미의 이러한 안타까운 울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속절없이 가버리고 마는 것이니, 매미가 헛수고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당(唐)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본 매미도 이와 별다르지 않았다. ◈ 매미(蟬) 本以高難飽,(본이고난포), 본성이 고결하여 배부르기 어려운데도 徒勞恨費聲.(도노한비성). 헛되이 수고하여 한스럽게 소리만 허비했네 五更疏欲斷,(오경소욕단), 오경에는 드문 소리 끊어질 듯 이어지지만 一樹碧無情.(일수벽무정). 나무는 무정하여 ..

가을 마중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가을은 산으로부터 온다. 낮은 세상은 아직 한여름인데도 높은 산은 어느덧 가을이다. 산에 가까울수록 가을은 그만큼 가까워진다. 물론 고도의 차이로 말미암아 생기는 현상이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들이 가을이 오기를 고대하는 것은 한여름 무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을이 가져다주는 정서의 풍요로움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당(唐)의 시인 온정균(溫庭筠)은 가을을 맞으러 산에 들어가 이른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였다. ◈ 초가을 산에서(早秋山居) 山近覺寒早(산근각한조) : 산이 가까워지니 추위가 이름이 느껴지고 草堂山氣晴(초당산기청) : 초당에 산 기운은 맑기만하구나 樹凋窓有日(수조창유일) : 나뭇잎 시드니 햇빛 창에 들고 池滿水無聲(지만수무성) : 못에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