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334

봄 찾기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제일 기다리는 것은 아마도 봄일 것이다. 석 달 남짓한 겨울은 삭막하고 쓸쓸해서 마냥 길게 느껴지는데, 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는 힘은 바로 얼마 안 있어 봄이 올 것을 믿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봄은 야속하게도 빨리 오라고 보챈다고 해서 결코 빨리 오는 법이 없다. 때가 되어야 비로소 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성미 급한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봄을 기다릴 수가 없다. 그래서 봄을 찾아 산야로 나서곤 했는데, 송(宋)의 시인 대익(戴益)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봄을 찾아서(探春) 終日尋春不見春(종일심춘불견춘) : 하루종일 봄을 찾았으나 찾지 못한 채 杖藜踏破幾重雲(장려답파기중운) : 지팡이 짚고 몇겹 구름까지 갔었던가 歸..

봄추위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겨울 추위를 피해서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봄이 온 것을 뒤늦게 알고 깜짝 놀라 뛰쳐나온다는 경칩(驚蟄)이 지나고 나서도, 추위가 완전히 지나갔다고 마음을 놓는 것은 금물이다. 심심치 않게 꽃샘추위가 출몰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은 것이다. 꽃샘추위에 놀라 다시 겨울이 온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잔설(殘雪)에 여풍(餘風)일 뿐이다. 봄 같지 않을 뿐, 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송(宋)의 시인 진여의(陳與義)도 봄추위의 매운 맛을 제대로 맛봤지만, 봄이 왔음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봄추위(春寒) 二月巴陵日日風(이월파릉일일풍) : 이월의 파릉 땅 날마다 바람 불어 春寒未了怯園公(춘한미료겁원공) : ..

멀리 있는 그대에게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은 소생의 계절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파랗게 잎이 돋아나고, 메말랐던 대지에는 연록의 풀들이 앞다투어 고개를 디밀고 나온다. 겨우내 숨죽였던 꽃망울들은 일제히 그 요염한 자태를 터뜨린다. 어디 이뿐인가? 고요하기만 했던 산속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온갖 새들의 울음으로 가득하다.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무성에서 유성으로 옮아가는 자연의 변모에 발맞추어 사람들의 마음도 서서히 무감에서 유감으로 바뀌어간다. 봄 버들가지 춘사(春絲)가 봄 그리움 춘사(春思)와 동음인 것은 우연만이 아니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는 멀리서 불어온 봄바람에 멀리 있는 친구에게 편지 보낼 생각이 솟구쳤다. 멀리 있는 그대에게6(寄遠6) 陽臺隔楚水(양대격초수) : 양대는 초수의 건너편에 ..

봄날의 원망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이 오면 풀이 돋고 꽃이 핀다. 이것은 자연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김이 있을 리 없다. 사람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봄이 오면 자연처럼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세상 이치 아니던가? 어김없이 돌아오는 봄의 화사함이 도리어 사람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도드라지게 한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봄날의 아픔을 잘 읽어내고 있다. 봄의 원망(春怨) 白馬金羈遼海東(백마금기료해동) : 황금 굴레 백마 타고 임은 요동 가버려 羅帷繡被臥春風(라유수피와춘풍) : 비단휘장치고 수놓은 이불을 펴 놓은 방에 봄바람이 찾아와 누워 있네 落月低軒窺燭盡(낙월저헌규촉진) : 처마 밑 지는 달은 지는 촛불 엿보는데 飛花入戶笑床空(비화입호소상공) : 꽃..

봄 앓이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흔히 가을을 사색과 추억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봄 또한 이 못지않게 사람들로 하여금 지난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가을이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서 자연스럽게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게 한다면, 봄은 자연의 생동과 행락(行樂)의 들뜬 기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상념에 빠지게 한다. 당(唐)의 시인 두목(杜牧)은 봄날 생동하는 경물들에 자극되어 애닲게 봄 앓이를 하였다. 안주 부운사 누각에서 호주 장낭중에게 (題安州浮雲寺樓寄湖州張郎中) 去夏疎雨餘(거하소우여) : 지난여름 성긴 비 갠 뒤에 同倚朱欄語(동의주난어) : 함께 붉은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했었지 當時樓下水(당시루하수) : 당시에 누대 아래를 흐르던 물 今日到何處(금일도하처) : 지금은 어느 곳에 이르렀는가 恨如春草多(한여춘초..

봄비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비는 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어 초목을 소생시키고 꽃을 피우게 만드는 것도 봄비이고, 봄의 주인공인 꽃을 떨어지게 하는 것도 봄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봄비는 자연 경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도 봄비는 특별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당(唐)의 시인 이상은(李商隱)에게 봄비는 무엇이었을까? 봄비(春雨) 愴卧新春白袷衣(창와신춘백겁의) 새 봄에 흰 겹옷 입고 쓸쓸히 누워 있자니 白門寥落意多違(백문요낙의다위) 적막해진 백문거리 세상사는 뜻 같지 않네 紅樓隔雨相望冷(홍누격우상망냉) 홍루는 비 너머로 차갑게 보이는데 珠箔飄燈獨自歸(주박표등독자귀) 주렴속 흔들리는 등불만 저절로 돌아오네 遠路應悲春晼晩(원로..

봄의 우수(憂愁)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을 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봄은 사람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슬프게, 유쾌하기보다는 침울하게 하는 경향이 분명 있다. 봄날 사람의 슬픔과 침울 모드는 풀과 꽃 같은 자연 경물의 화사함과 생기발랄함에 대비되어 더욱 도드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춥고 삭막한 겨울에는 모르고 지냈던 마음속 시름들이 봄풀 돋아나 듯, 봄꽃 피어나 듯 살아나는 것이리라. 당(唐)의 시인 가지(賈至)도 이러한 봄의 우수(憂愁)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봄의 우수(春思) 草色靑靑柳色黃(초색청청유색황) : 풀빛은 파릇파릇 버들빛은 노릇노릇 桃花歷亂李花香(도화역란이화향) : 복사꽃 만발하고 오얏꽃 향기로워라 東風不爲吹愁去(동풍불위취수거) : 봄바람 불어도 시름은 불어낼 줄 모르고 春日偏能惹恨長(춘일..

봄나들이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봄은 감각의 계절이다. 몸의 모든 감각기관이 분주하게 작동하며, 봄의 향연을 만끽한다. 눈은 눈대로, 코는 코대로, 귀는 귀대로 봄을 영접하기에 바쁘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물이면 물, 봄의 기운은 미치지 않는 데가 없다. 이러한 봄의 감각은 아무래도 번화한 도회지보다는 한적한 산골이나 호반에 더 잘 어울린다. 당(唐)의 시인 서부(徐俯)는 호숫가를 거닐며 봄의 정취를 만끽하는 기쁨을 누렸다. 봄날 호숫가에서(春日游湖上) 雙飛燕子何時回(쌍비연자하시회) : 쌍쌍이 나는 제비 언제 돌아왔나 夾岸桃花蘸水開(협안도화잠수개) : 언덕을 끼고 복사꽃은 물에 잠겨 피었네 春雨斷橋人不渡(춘우단교인부도) : 봄비에 다리 끊겨 아무도 오지 않는데 小舟撑出柳陰來(소주탱출류음래) : 쪽..

봄은 저물고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단 열흘도 피어 있지 못한 것이 꽃이란 말인데, 봄이 와서 꽃이 피기를 학수고대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말을 실감할 것이다. 꽃이 피는 것은 반갑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꽃이 지는 쓸쓸함을 생각하면 차라리 피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낙화(花)는 아름다운 경관의 사라짐일 뿐만 아니고, 세월의 흐름에 대한 가장 감각적인 깨우침이기도 하다. 송(宋)의 시인 구양수(歐陽修)가 떨어진 꽃잎을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풍락정 봄놀이(豊樂亭游春三首3) 紅樹靑山日欲斜(홍수청산일욕사) : 붉은 나무 푸른 산에 날은 저무는데 長郊草色綠無涯(장교초색록무애) : 먼 교외로 풀빛은 끝없이 푸르다. 游人不管春將老(유인불관춘장로)..

배꽃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매화를 필두로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같은 꽃들이 봄의 초반을 장식하는 역할을 마치고 들어가면, 그때 등장하여 들판을 새하얗게 수놓는 꽃이 있으니 배꽃이 그것이다. 특히 봄밤의 달빛 아래 은은히 빛나는 배꽃의 자태는 가히 봄 풍광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달밤의 은은한 모습과는 달리 해 밝은 낮에는 배꽃은 화사하다 못해 요염하기까지 하니, 배꽃은 밤이면 밤대로 낮이면 낮대로 그 매력을 사람을 향해 유감없이 발산한다. 송(宋)의 시인 소식(蘇軾)의 눈에도 어느 봄날 배꽃이 들어왔다. 동편 난간의 배꽃(東梨花) 梨花淡白柳深靑(이화담백류심청) : 배꽃은 엷게 희고 버들은 짙푸른데 柳絮飛時花滿城(유서비시화만성) : 버들개지 흩날릴 때, 꽃은 성에 가득하다 惆悵東欄一株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