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587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82> 에너지와 알러지 ; 잘 먹고 잘 살려면?

피아노 보일러 마케팅 컴퓨터 에너지… 이들 낱말들의 공통점은? 우리말로 번역이 잘 안되는 외래어다. 피아노는 이탈리아어로 여리게 라는 뜻인데 건반악기 일종인 피아노로 굳어졌다. 보일러는 물을 가열해 증기나 온수를 보급하는 장치인데 번역이 곤란하다. 마케팅을 시장기획, 컴퓨터를 연산장치라 번역할 수 있겠지만 어색하다. 에너지는 기(氣)도 아니고 힘(力)도 아니다. 에너지는 그냥 에너지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에네르기, 즉 에너지(energy)는 ‘안에’ 엔(en)과 ‘일’ 에르곤(ergon)의 합성어로 안에 담긴 일이다. 몸을 힘들게 쓰는 노동 일과 다르게 물리학에서 일은 물체에 가한 힘의 크기와 힘에 의해 움직인 거리를 곱한 값이다. 움직이도록 일할 힘(power, force)이 안에 담겨 있으니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81> 스테로이드와 콜레스테롤 ; 스테의 정체

화학 의학 전문용어인데 일상 생활용어처럼 쓰이는 대표적 낱말을 꼽으라면? 아마도 스테로이드와 콜레스테롤이 아닐까 싶다. 영어로 된 외국어이지만 국어가 되다시피 한 외래어로 쓰인다. 익숙한 용어다. 그럴수록 오히려 잘 모르는 용어이기 쉽다. 다섯 글자로 되어 있는 스테로이드와 콜레스테롤에서 ‘스테’라는 두 글자가 겹친다. 그러니 따로 별개의 용어가 아니라 서로 연관된 낱말인 듯하다.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길래? 스테로이드란 지방(脂肪)처럼 물과 친하지 않아-물을 멀리하여-물에 녹지 않는 소수성 물질인 지질(脂質)의 일종이다. 어렵다. 더 설명하자면? 스테로이드는 지방산을 함유하지 않고 6각형 탄소 원자 고리 세 개와 5각형 탄소 원자 고리 한 개로 이루어진 유기화합물이란다. 되게 어렵다. 아무튼 스테로이드..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80> 지질과 지방 ; 뱃살에 마블링

소들은 풀만 먹어도 몸 안에 기름기가 많다.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란 소들은 기름기가 더 많은 살을 가진다. 살코기에 대리석(marble) 무늬를 넣은 마블링 제품(?)이다. 소가 먹는 풀이나 옥수수는 모두 탄수화물이다. 풀은 식이섬유로도 불리는 섬유질(cellulose)이 주성분이며, 옥수수는 전분(澱粉)으로도 불리는 녹말(starch)이 주성분이다. 모두 단당류인 포도당이 중합체로 길게 이어진 다당류에 속한다. 이들 탄수화물 안에는 기름 성분이 없다. 어찌 된 연유로 풀과 옥수수만 먹은 소고기에 기름이 잔뜩 끼는 걸까? 소는 섬유질 분해 소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 다를 뿐 소와 사람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똑같다. 넓은 초원에서 풀만 뜯어 먹고 자란 소의 살코기에는 기름기가 많지 않다. 좁은 축사에 갇..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9> 알코올과 알칼리 ; 음양의 조화

다음 중 9개 알들과 어원이 다른 1개의 알은? ①알라 ②알고리즘 ③알지브라 ④알자지라 ⑤알카에다 ⑥알케미 ⑦알바트로스 ⑧알레고리 ⑨알코올 ⑩알칼리. 9개 낱말들에서 처음의 알은 The와 비슷한 맥락으로 쓰이는 정관사다. 알라(Allah)는 The God으로 무슬림들이 절대복종하는 하나님이시다. 알고리즘(Algorithm)은 바그다드에 살던 알콰리즈미(Al-Khwarizmi, 780~850)의 유럽식 표기로 그가 밝힌 연산절차다. 알지브라(Algebra)는 그가 쓴 대수학책 알자브르(Al-jabr)에서 온 낱말이다. 알자지라(Al-Jazeera)는 중동지역 아랍권을 대표하는 방송사다. 알카에다(Al-Queda)는 범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조직한 행동본부다. 알케미(Al-chemy)는 변화 기술로 연금술이다..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8> 염분과 염기 ; 전자의 조화

염분(鹽分)이란 낱말은 쉽게 다가온다. 글자 그대로 소금 성분이다. 음식에 염분이 많으면 짜고 적으면 싱겁다. 순우리말로 간이라 한다. 소금으로 만드는 간장은 간을 내는 조미료다. 염분인 소금기가 적당히 있어야 간이 맞아 음식 맛이 난다. 소금은 주로 염전에서 생산된다. 이렇게 소금(salt)을 뜻하는 염(鹽)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상적 생활 용어다. 그런데 염이 전문적 화학 용어가 되면 어려워진다. 화학에서 염이란 산(酸)과 염기(鹽基)가 반응해 중화되어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염과 염기는 동의어가 아니라 연관어다. 산(Acid)과 반응한 염기(Base)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지는 화합물이 염이다. 더 어렵게 설명하자면 산의 음(-)이온과 염기의 양(+)이온이 정전기적 인력으로 결합하고 있는 화합물..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7> 발현과 발생 ; 변종 인류

필자는 초등 5학년 때 뭔가 묵직한 왠지 엉뚱한 질문을 했었다. 해당 시대 경제 사회 문화 등은 하나도 안 바뀌는데 왜 왕조가 바뀌면 안정된 국가가 되나? 머리가 커서 알고 보니 그것은 결국 정치 문제였다. 사회적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정치란 정치권력, 즉 정권을 통해 이루어진다. 왕조가 바뀌어 정권이 안정되면 국가가 안정되는 법이다. 강력하게 통치하는 공산당 정권이 약해지면 중국도 혼란한 국가가 될 것이며, 쿠데타가 빈번한 아프리카 국가들 중 어느 한 나라라도 정권이 강해지면 안정된 국가가 된다. 이처럼 인간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힘을 행사하는 정치다. 정치의 주체인 정권(regime)은 반드시 변한다. 레짐 체인지! 이는 인류 역사에 늘 있어 왔고 앞으로도 꼭 있을 것이다. 생명 역..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6> 암호와 부호 ; 64개 코돈

코드라는 외래어는 chord와 code로 구분된다. 코드(chord)는 화음을 뜻하는 음악 용어다. 코드(code)는 부호를 뜻하는 통신 용어다. 이 코드(code)와 구분하기 위한 코돈(codon)은 유전생물학 용어다. 나 어릴 적 국어나 영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던 단어다. 생물 시간에도 배우지 않았던 코돈이다. 생명의 센트럴 도그마가 발표된 1950년대 전후로 과학자들이 만들어 쓰긴 했어도 그들만이 아는 전문 학술용어였다. 그러다가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1996년에 생명과학 및 생명공학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코돈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리고 영어와 국어사전에도 등재되는 일반용어가 되었다. 영어사전에는 간단하게 나와 있다. codon: 유전 정보의 최소 단위. 국어사전엔 보다 자세하게 나와 있다. 코돈..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5> 복사와 복제 ; 인위적 복제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복사와 복제 ; 인위적 복제 복사의 한자를 모르면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천체물리학에서 복사(輻射)는 수레바퀴살(輻)처럼 방사(射)되어 퍼져 간다는 뜻이다. 태양이 내는 복사열은 복사되어 지구로 도달한다. 복사기를 사용하는 현대인의 일상용어가 된 복사(複寫)는 원본을 겹쳐서(複) 베낀다(寫)는 뜻이다. 영어로는 카피(copy)다. 미국영화에서 무전기에다 Do you copy?라고 묻는 건 내 말을 상대방이 하나도 안 틀리게 그대로 베껴서 정확하게 들었느냐는 뜻이다. 이런 베낀다는 복사와 결이 다른 복제란? 베낄 사(寫)가 아니라 만들 제(製)를 쓰는 복제(複製)는 생물학에서 주로 쓰인다. 복제양 돌리는 암수 교배나 인공수정 없이 실험실에서 만든 인공 양이다...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4> 후성과 후생 ; 유전학의 전환

나는 애기 때부터 팝송을 많이 들었단다. 울 엄마가 라디오 프로그램인 ‘3시의 다이얼’을 들으며 집안일을 하셨는데 나도 덩달아 팝송을 늘 많이 듣고 흥얼거렸단다. 초등학생 때 독수리표 전축 장만 후 아버지가 팝송 레코드를 많이 사가지고 오셨는데 나 혼자서 참 많이도 들었다. 중학생 때 삼촌이 치던 기타를 물려받았는데 동네 형한테서 간단한 코드와 주법을 배웠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소풍을 가면 기타를 들고 나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버닝 러브’ 등을 불렀는데 당시 내 별명이 엘비스 박이었다. 기타는 나한테 반려악기다. 매일 치며 노래 불러왔다. 지금도 어떻게 하면 잘 치고 잘 부를지 노력한다. 이제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한다. 내가 자녀를 낳는다면 내가 후천적으로 가지게 된 음악적 특성이 유전될까? 이 질문에..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3> 보호와 보수 ; 인간 보호의 한계

보호와 보수에서 보(保)는 사람(亻)이 아이(子→呆)를 지킨다는 뜻이다. 아이 子 모양이 변해서 呆가 되었다는 설에 따른다면 그렇다. 그래서 保는 지킬 보다. 보수(保守)는 지키며 또 지킨다는 뜻이다. 왼쪽의 진보(進步)와 견주어 오른쪽의 정치학 용어로 많이 쓰이는 보수(保守)다. 보호(保護)도 역시 지키며 또 지킨다는 뜻이다. 여러 경우에 일상용어로 많이 쓰이는 낱말이다. 자연보호 아동보호 인권보호 등등등… 생물학 용어로도 많이 쓰인다. 생물에 색보호가 있다. 생명체는 색보호 능력을 어찌 가지게 되는 걸까? 용불용설로는 설명할 수 없다. 가령 그냥 개구리가 자신을 보호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피부색을 바꾸어 청개구리가 되지 않는다. 역시 자연선택설로 설명이 된다. 처음엔 한 가지 색깔의 개구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