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 땅의 歷史 138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선비가 절에 불을 질렀기로서니 수사는 왜 하는가!”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선비가 절에 불을 질렀기로서니 수사는 왜 하는가!” 295. 흥천사 동종의 운명과 조선 선비 불교 탄압사 ‘흥천사명 동종’에 새겨진 문양. 세조 때 만든 이 대종(大鐘)은 운명이 기구했다. 조선초기 왕실 종교로 융성했던 불교는 이후 사림이 득세하면서 실질적으로 유림들의 테러 대상이 됐다. 서울 정동에 있던 흥천사도 수시로 방화에 시달렸고 많은 절들이 유생들 방화로 폐사됐다. 흥천사 종은 폐사지를 떠나 공무원들 출퇴근 시보용 종으로 쓰이기도 했다./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3.30 03:00 * 유튜브 https://youtu.be/2nm5E9VZq_I 에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덕수궁에는 커다란 종이 야외에 전시돼 있었다. 지금은 경복궁에서 복원과 보..

법도 초월했던 운동권 호소인들... 새 정부가 지켜야 할 사소한 약속은

법도 초월했던 운동권 호소인들... 새 정부가 지켜야 할 사소한 약속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3.22 17:45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상단의 정의의 여신상 1894년 갑오개혁은 고종과 민씨 척족정권이 동학농민전쟁 진압을 위해 청일 양국 군대를 청병함으로써 생긴 일종의 부산물이다. 일본세력을 등에 업은 개혁정부가 일본 입맛대로 일을 진행하지 않자 일본 특명전권공사 이노우에 가오루가 고종-민비 부부를 면담했다. 회유와 협박 가운데 입헌군주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고종과 민비는 “백성은 처음부터 군주 명령에 따르게 돼 있다”며 군주권 제한을 거부했다. 가오루는 “대화가 불가능한 자들”이라고 했다. 코로나 창궐 3년 전 이미 대한민국은 중증 감염증에 걸려 있었다. 조선500년 기저질환인 ‘명분’과 ..

청와대와 경희궁

청와대와 경희궁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3.19 13:59 광화문시대를 열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청사로 옮기려고 계획 중이라고 한다. 광화문거리에 있는 정부청사와 국방부청사 가운데 고민 중이라는 말도 있는데, 용산이 확정적이라는 말도 있다. 이전 목적이 ‘국민과의 소통’이니 장소가 어디가 됐든 그 소통이라는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것이다. 목적 달성에 대한 경제, 사회, 정치, 국방, 경호 등등 제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이 필요하다. 현 청와대 건물 한두 개를 대통령 집무실로 쓰고 나머지 공간을 개방해 국민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문득 청와대 이전과 관련해 400년 전 광해군시대와 풍경이 겹친다. 교하로 천도를 계획한 왕이기도 했고 궁궐 ..

[박종인의 땅의 歷史] 조정은 日軍 위문단 보내고, 병사는 中·日로 갈려 총을 겨눴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조정은 日軍 위문단 보내고, 병사는 中·日로 갈려 총을 겨눴다 294. 갑오년 삼국지, 운명의 청일전쟁 ⑤무능한 지도자 탓에신음하는 조선 1895년 3월 19일 조선정부는 군무대신 조희연을 단장으로 한 일본군 위문단을 파견했다. 그달 19일 위문단은 여순 옆 금주성 일본군 사령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줄 가운데 군복 입은 사람이 조희연이다. /일본국회도서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3.16 03:00 1894년 2월 15일(양력) 호남 고부에서 터진 동학농민전쟁은 치안력이 전무했던 조선정부로 하여금 청나라 군사를 부르게 만들었다. 조선 진출을 노리고 있던 일본은 즉각 ‘동시출병’이라는 천진조약(1885)을 근거로 조선으로 대규모 군단을 파병했다. 풍도 앞바다에서 개시된 ..

[박종인의 땅의 歷史]“책 팔아 잔뜩 밥해 먹고 자랑하고 나니 서글퍼졌소”

293. 책 바보 이덕무의 죽음과 깨뜨리지 못한 서얼 차별 창덕궁 주합루에서 바라본 후원 전경. 정조는 주합루 1층에 규장각을 만들고 친위 학자 세력을 키웠다. 그 가운데 서얼출신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서이수도 있었다. 하지만 훗날 정조는 이 서얼 출신들을 "배우(광대)로 기른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덕무는 그 발언이 있고 일년 뒤에 죽었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3.02 03:00 * 유튜브 https://youtu.be/P9fjrqIh2Oo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산에서 이성으로, 이름을 바꾼 왕 정조가 즉위한 1776년 5월 22일 조선 정부는 호조에 속한 공무원 산학산원(算學算員) 명칭을 주학계사(籌學計士)로 바꿨다. 충남 논산에 있는 이산(尼山)..

평양에서 기생파티…淸, 부패의 바다에 침몰하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291. 갑오년 삼국지, 운명의 청일전쟁 ④평양에서 기생파티 벌인 청나라 군사 위해위(威海衛) 해군기지 앞바다에 침몰한 중국 북양함대 소속 위원호. 중국은 근대적 군사기계로 무장했지만 근대를 맞는 정신은 부패해 있었다. 부패가 가로막은 근대화는 공동체의 침몰을 막지 못했다. /일본국회도서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2.23 03:00 “그때 제 말씀을 들으시지….” 1895년 3월 20일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과 일본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시모노세키 연회장 춘범루 1층 회의실에서 마주 앉았다. 여전히 진행 중인 청일전쟁을 끝내고 강화조약을 맺겠다는 자리다. 대화 내용은 청나라(이하 중국) 측 ‘馬關議和中日談話錄(마관의화중일담화록·편자 미상)’과 일본 외무성 ‘일본외교문서’(28권 2책..

[박종인의 땅의 歷史] 고종이 말했다, “이토 경, 귀국하지 말고 나를 위해 일해주시오”

291.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짝사랑한 고종 서울 덕수궁 부속건물인 중명전은 1905년 11월 17일 2차한일협약(을사조약)이 체결된 장소다. 1층 회의실에는 당시 협상테이블 현장이 재현돼 있다. 오른쪽 등이 보이는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오른쪽 사진)다. 한일의정서(1904년 2월 23일)에서 2차한일협약 직후까지 고종(왼쪽 사진)은 상식적으로는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그 이토 히로부미에게 집착했다.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2.16 03:00 * 유튜브 https://youtu.be/eVavfK9TQ94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04년 2월 8일 일본군이 청나라 여순항에 있는 러시아 극동함대에 어뢰를 발사했다. 러시아 전함 두 척이 대파됐다. 다음 날 일본 함대 14척이 대한제국..

[박종인의 땅의 歷史] 군함 만들 돈으로 淸 황실은 서태후 환갑잔치를 벌였다

290. 갑오년 삼국지, 운명의 청일전쟁 ③황실 부패가 초래한 대참패 청일전쟁은 일본 승리가 예견된 전쟁이었다. 작심을 하고 온 나라가 일치단결해 군비 확장에 뛰어든 일본과 파벌로 분열된 권력자들이 ‘서태후 환갑잔치’라는 허황한 행사를 위해 군사예산을 궁궐 신축공사에 투입한 청나라와는 겨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쟁 전 천하 무적이었던 청나라 북양함대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허술한 군기를 노출하고 함대 중요 군사 기밀을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오만까지 저질렀다. 청나라 패전은 필연이었다. '대고산만 대격전'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판화 왼쪽에 참전한 북양함대 군함 이름이, 오른쪽에는 일본 함대 군함 이름이 적혀 있다. /일본국회도서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2.09 03:00 ‘인종을 개량하지 않는 한…..

[박종인의 땅의 歷史] “양국 관계는 청나라 대신과 조선 국왕이 협의해 처리한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양국 관계는 청나라 대신과 조선 국왕이 협의해 처리한다” 289. 對中 굴욕외교와 1882년 조중상민수륙통상무역장정 서울 수유리 애국선열-광복군 합동묘역에 있는 헤이그 밀사 이준 묘역.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서 실질적인 총독 역할을 했던 청나라 관리 원세개가 쓴 이준 만가(輓歌)가 새겨져 있다. 청(淸)은 붕괴되는 천하(天下) 질서 속에서 조선을 끝까지 속국으로 규정했다. 조선과 맺은 통상조약은 조약이 아니라 내규(內規)를 뜻하는 ‘장정(章程)’이었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1.26 03:00 * 유튜브 https://youtu.be/Xyrlpg7v4lI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준 묘역에 붙은 원세개의 만가(輓歌) 서울 수유리 애국선열·광복..

[박종인의 땅의 歷史] 淸, 일본에 격침되다

288. 갑오년 삼국지, 운명의 청일전쟁 ②풍도(豐島)의 포성 1894년 7월 25일 새벽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청-일 풍도해전은 선전포고 없이 일본이 개시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청 해군을 위탁수송하던 영국 상선 고승호가 침몰하고 탑승했던 승무원은 몰살됐다. 영국은 민간 선박을 공격한 일본에 항의를 하지 않았다. 지원군을 잃은 청나라는 이후 육전과 해전에서 연전연패했다. 사진은 일본측이 제작한 판화다. /영국박물관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2.01.19 03:00 1885년 4월 18일 청나라 북양통상대신 이홍장과 일본 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가 천진(天津)에서 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한 해 전 12월 벌어진 갑신정변을 청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조선 주재 일본인들이 입은 피해 보상과 재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