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874

[분수대] 좌표에 좌표를 잃다[출처: 중앙일보]

하현옥 금융팀장 별것 아닌 사과와 파리도 누군가에겐 세상을 바꾸는 발견의 계기가 된다.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을 발견했고 이는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이어졌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좌표를 발견해 수학의 발전에 새 장을 열었다. 좌표(座標)는 직선이나 평면, 혹은 공간에서 특정한 위치를 지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값을 뜻한다. 평면에서는 가로축(x축)과 세로축(y축), 공간으로 확대하면 높이 축(z축) 상에 위치를 숫자로 표시한다. ‘30년 전쟁’(1618~48)에 참전했던 데카르트가 침대에 누워 천장에 붙은 파리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떠올리다 좌표를 고안했다. ..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대통령의 사과[출처: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팀 차장 1961년 4월 미국의 쿠바 침공 사흘 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침공을 계획한 건 미국 정부이며,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고 밝힌다. 당시 한 기자는 “왜 국무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나”고 묻자 케네디는 이렇게 답한다. “추가적 발표나 논의를 한다 해서 책임을 피할 순 없습니다. 내가 이 정부의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지도자의 사과엔 세 가지 요소를 갖춰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①공식성=공개적인 자리에서 하라 ②직접성=본인이 국민을 상대로 하라 ③책임성=모든 책임은 자신에게서 끝난다는 점을 명확히 하라. 따라서 “충분한 고민 없이 이뤄진 듯한 대통령의 사과는 역효과만 일으킬 수 있다”(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지적이다. 조국 사퇴와 관련, 1..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18% 그레이[출처: 중앙일보]

이동현 산업1팀 차장 휴대전화 카메라가 전문가용 카메라를 능가하는 세상이지만 아직까지 구닥다리 필름 카메라를 이길 수 없는 게 있다. 관용도(寬容度)다. 영어로는 래티튜드(latitude)인데, 통상 위도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선택이나 행동방식에서 자유의 범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진에서 관용도는 노출(exposure)을 잘못 맞췄을 때 현상 과정에서 적정노출로 보정할 수 있는 범위를 뜻한다. 다소 어둡거나 밝더라도 현상 과정에서 보정할 수 있다. 디지털 사진은 다이내믹 레인지에서도 아직 필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가장 어두운 영역과 밝은 영역 사이를 세분해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뜻한다. 계조(階調)라고도 하는데, 디지털 사진에선 아주 밝거나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을 살려내기 쉽지 않다. 사진의 적정노출에..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유시민과 ‘피터의 법칙’[출처: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팀 차장 “스타 플레이어가 꼭 명장(名將)이 되는 건 아니다”는 스포츠계 정설이다. 그만큼 실제 경기력과 이를 관리·감독하는 건 별개라는 의미다. 히딩크도 선수 때는 무명이었다. 이를 경영학적으로 분석한 이는 미국 컬럼비아대 로렌스 피터 교수다. 그는 1969년 저서에서 “수직적 계층조직에서 승진은 업무성과만을 기초로 한다. 출중한 이도 승진을 거듭하면 자신의 능력 밖 단계까지 도달하고, 결국 조직의 상위 직급은 무능한 이들로 채워진다”고 설파했다. 관료제의 병폐를 통찰한 ‘피터의 법칙’이었다. 새삼 이 법칙이 회자된 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때문이다. 22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판하면서 ‘피터의 법칙’을 꺼냈다. 지난 17일 국감에서 윤 총장의 “MB(이명박) 정부 때 쿨했다”는 발언을 ..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경제수석과 자기실현적 예언[출처: 중앙일보]

하현옥 금융팀장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왕이자 조각가인 피그말리온. 그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한 뒤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인다. 조각상과 사랑에 빠져 그런 아내를 맞게 해달라고 기도한 그의 지극정성에 여신 아프로디테가 갈라테이아에 숨을 불어넣어 준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어떤 일이 잘 풀릴 것으로 믿으면 잘 되고, 안 풀릴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같은 말이 됐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은 집단의 사회 역학을 설명하며 ‘자기실현적 예언’이라 일컬었다. 이를 위해 가상의 은행 부도 사태를 예로 들었다. 건실한 지역 은행에 어느 날 특별한 이유 없이 많은 고객이 방문하고, 그 장면을 목격한 어떤 고객이 은행의 재정 상태에 문제가 생겼을까 불안해하며 돈을 인출한다. 은행이 파산..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감방 동기[출처: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팀 차장 9일 심재철(61) 한국당 원내대표가 당선되고 채 1시간도 안 돼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문희상(74) 국회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화 동지로 말하면, 이인영보다 심재철이 나랑 더 빨리 만났어요. 합동수사본부 감방 동기야!” 문 의장의 언급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말한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신군부는 “김대중 일당이 북한 사주를 받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도했다”며 DJ 주변 인사를 싹 잡아들였다. 문 의장은 DJ 장남 김홍일 전 의원과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활동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투옥당했다. 심 원내대표는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남산 중앙정보부가 아닌 치안본부 특수대에 끌려가 사건 연루자 중 가장 혹독한 고문을 받..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정치 산수’와 ‘코드 통계’[출처: 중앙일보]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포화지방은 건강의 적으로 여겨진다. 안셀 키스의 ‘7개국 연구’라는 논문 탓이다. 포화지방 섭취가 심장병 발생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히며 저지방 식단 강박증의 신호탄을 쐈다. 하지만 22개국 데이터 중 ‘결론’에 맞는 7개국만을 선별해 끼워 맞춘 자료였다. 데이비드 핸드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교수는 이를 ‘선택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10개의 과녁 모두 정중앙에 화살이 하나씩 꽂혀 있지만, 화살을 벽에 마구 쏜 뒤 화살이 꽂힌 자리에 과녁을 그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입맛에만 맞는 데이터를 고른다는 의미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만 정부는 종종 통계 조작의 유혹에 빠진다. 통계가 ‘정치 산수’로 불리는 이유다. 정치 산수에 능하지 않아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안드레아..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제야의 구라[출처: 중앙일보]

김승현 논설위원 구라는 거짓말이나 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일상에선 구라치다(거짓말하다), 구라풀다(이야기하다)로 활용된다. 도박판에서 뭔가를 숨기는 속임수를 뜻하는 일본어 ‘구라마스(晦ます)’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근거 없다는 반론이 있다. 순우리말이라는 설, 바람 잡는 정치인을 ‘사쿠라’로 비하하던 것에서 변형됐다는 주장도 있다. 1960년대 신문에는 어린이들이 쓰는 신종 은어로 소개됐다. 입담 좋은 사람은 성(姓)에 구라를 붙인다. 야구해설의 하구라(故 하일성)와 허구라(허구연), 문단의 황구라(황석영) 등으로 부르는 식이다. 이쯤 되면 속된 표현을 넘어서 골계미(滑稽美)를 기대하게 하는 장르(genre)에 가깝다. 구라가 예명인 방송인 김구라(본명 김현동)의 성장사(史)는 그 단어와..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공수처(公搜處), 공수처(空手處)[출처: 중앙일보]

박진석 사회에디터 명명(命名)의 중요성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한자어의 비중이 큰 탓에 동음이의어로 언어유희를 즐기기 좋은 한국어의 경우 더욱 그렇다. 큰 고민 없이 이름을 안이하게 붙였다가는 패러디와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유난히 간판을 자주 갈아치우는 정당과 정부 부처들도 새 이름을 짓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더불당’, 자유한국당은 ‘자한당’이라는 비호감형 약칭으로 불리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지난 정부 때의 미래창조과학부는 미창과부, 미과부, 미창부, 창과부 등 예비 약칭들의 어감이 모두 좋지 못해 고민하다가 결국 안전한 미래부를 선택했다. 반면 안전행정부는 ‘안행부’ 사용을 강행했다가 ‘안 행복한 부처’라는 놀림에 시달렸다. 2003년 서울지검 형사9부는 금융수..

분수대 2021.01.30

[분수대] 탑골공원[출처: 중앙일보]

장혜수 스포츠팀장 서울은 고려 시대 남경으로 불렸다. 대각국사 의천의 아버지 문종은 남경에 궁궐을 지었고(1068년), 숙종은 남경 천도를 계획했다. 남경에는 많은 사람이 살았고, 사찰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흥복사다. 남경은 새 왕조 조선의 도읍이 됐다. 조선의 억불정책과 도성 내 공간 부족으로 흥복사 규모는 점점 줄었다. 그러던 중 불교 법회에서 기이한 현상이 목격됐다. 세조는 1465년 흥복사 자리에 새 절을 세웠다. 원각사다. 세조는 원각사에 5만근짜리 범종(고종 때 보신각으로 옮겨져 1985년까지 보신각종으로 사용, 보물 2호)과 12m 높이의 불탑(원각사지 10층 석탑, 국보 2호)도 세웠다. 연산군은 1505년 원각사를 폐사하고, 그 자리에 기생과 악사가 머무는 장락원을 설치했다. 원각사 터..

분수대 2021.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