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874

[분수대] 삭발과 구레나룻[출처: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팀 차장 1860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에게 주걱턱은 콤플렉스였다. 사납고 고집스러운 인상을 심어주는 탓에 정치인으로서 치명적 약점에 해당했다. 힘겨운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그레이스 베델이라는 11세 소녀의 편지가 날아왔다. “당신은 얼굴이 갸름하기 때문에 구레나룻을 기르면 훨씬 더 좋게 보인다”라며 “구레나룻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남편까지 (당신에게 투표하게끔) 닦달하면 당선될 것”이라고 했다. 소녀의 당돌한 권유는 링컨을 미국 16대 대통령에 오르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본질은 콘텐츠”라고 떠들어봤자 ‘꼰대’로 몰릴지 모른다. 어떤 소리를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데 무슨 메시지 타령인가. 미디어 정치, 이미지 소비시대에 정치인..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불로소득 자본주의[출처: 중앙일보]

하현옥 금융팀장 ‘사회의 나머지 성원을 희생시켜 부자들에게 이득을 몰아주는 여러 가지 행위.’ 정보 비대칭성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그의 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지대 추구를 이렇게 정의했다. 지대(地代·rent)는 원래 토지를 빌려주고 생기는 수익을 일컫는다. 노동의 대가인 임금과 달리 토지에서 발생하는 잉여가치인데, 불로소득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며 지대의 의미도 확장됐다. 독점적 이윤 혹은 독점 지대를 포함하게 됐다. 불로소득의 개념이 넓어진 셈이다. 지적재산권 등을 보유해 얻는 소득이나 투자에 따른 자본 소득, 제도를 유리하게 해 얻는 혜택을 망라한다. 지대 추구가 기득권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까닭이다. 스티글리츠는 “상위 계층은 사회의 나머지 ..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나홀로 앙가주망[출처: 중앙일보]

김승현 논설위원 2009년 6월 원로 철학자와 철학 교수 등 500여 명이 ‘전국 철학 앙가주망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대학원생까지 참여한 진보 성향의 모임은 “이명박 정부가 소통이나 여론 수렴 없이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시국선언으로 ‘앙가주망(engagement·지식인의 사회 참여)’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한반도 대운하, 미디어법 등 국론 분열이 한계치에 도달했던 시절이다. 교수들은 정권을 향해 “각계에서 왜 똑같은 말을 계속하는지 귀담아들으라”고 외쳤다. 보수 지식인들은 “편향된 입장을 전체 교수의 견해인 양 과장한다”고 반발했다. 지식인의 사회 참여는 갈등 시대의 산물이다. 지성의 언어는 혼란스러운 대중에게 한 줄기 빛이 된다.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수치심을 느낀 전·현직 교..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기술과 감정사이[출처: 중앙일보]

이소아 산업2팀 기자 정보기술(IT) 산업이 세계를 주도하면서 기술은 혁신이자 생존의 조건이고 권력이 됐다.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고, 미국이 화웨이를 이유로 중국과 척을 지는 것도 기술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다. 2011년 애플과 삼성 소송, 2012년 애플과 구글 소송, 2017년 36조원에 달했던 애플과 퀄컴 소송 등 이름깨나 알려진 글로벌 기업에게 기술 분쟁은 일상다반사다. 한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한국 기업의 특허 분쟁은 284건인데 우리 쪽이 제소한 것도 104건이나 된다. 미국에서 특허 등록을 가장 많이 한 기업 명단엔 삼성전자(2위)와 LG전자(7위)가 있다. 최근 감정싸움처럼 보이는 국내 대기업 간 마찰도 크게 보면 기술 분쟁의 연장선..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진보 셀럽’의 균열[출처: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팀 차장 공지영씨는 지난해 8월 5년 만에 신작 소설을 내놓으면서 “(현재는) 좌파인 척, 정의인 척하면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시대”라며 “우리가 싸워야 할 악은 민주와 진보의 탈을 쓰고 엄청난 위선을 부리는 무리”라고 일갈했다. 이념적 호불호를 떠나,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통찰력인 듯 보였다. 하지만 ‘조국 지킴이’를 자처한 그의 최근 행보를 보니 당시 핵심은 ‘위선’이 아니라 ‘사이비’였던 모양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지나오면서 정의를 팔아먹는 걸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사이비 진보이자 사이비 정의꾼이다.” 증오하던 사이비 진보에 진중권 교수도 해당하는 걸까. 정의당 탈당 의사를 표한 진 교수를 겨냥해 공씨는 “좋은 머리도 아닌지 박사도 못 땄다” “돈하고 ..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구텐베르크와 유튜브[출처: 중앙일보]

이동현 산업1팀 차장 ]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보급을 가장 우려한 건 로마 가톨릭 교회였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건 교회의 독점적 권한이었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라틴어가 아닌 일반 언어로 성경이 씌어지고 보급됐기 때문이다. 교회의 권위는 실추됐고, 일반인의 지식수준이 높아지는 것에 대해 종교개혁가들조차 우려를 나타냈다. 독일 종교개혁 선구자인 요한 가일러는 “성경을 평신도의 손에 쥐여주는 것은 어린이에게 칼을 줘 딱딱한 빵을 썰게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지식 독점을 타파해야 한다고 믿었던 가일러조차도 지식의 범람을 우려한 것이다. 유튜브의 발달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비견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지금까지 거대 미디어가 독점했던 뉴스와 지식의 전파를 대신한다. 청년들은 물론 노년층까지도 전통적인 ..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검찰춘장’이 민주적 통제인가[출처: 중앙일보]

김승현 논설위원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14년 전 검찰사(史)가 평행이론처럼 어른거린다. 2005년 10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야 했던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비운(悲運) 얘기다. 그는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6·25는 통일 전쟁”이라고 주장한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발동한 수사지휘를 거부했다. 김 전 총장의 사표가 결국 수리됐고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의 입장을 설명했다. “검찰권 독립은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적 통제 아래에서만 보장되는 것이다.” 문 수석은 ‘불구속 수사의 원칙’도 “인권보장을 향한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14년 전 발언은 30일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검찰을 향한 문 대통령의..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인간의 행동[출처: 중앙일보]

이동현 산업1팀 차장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지난주 소프트웨어 버전10(v10)을 업데이트했다. ‘스마트 호출(Smart Summon)’이란 기능이 추가됐는데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주차장이나 차고에 넣어둔 차량을 호출할 수 있다. 테슬라 주가는 20%나 올랐고, 사람들은 1980년대 인기 TV시리즈 ‘나이트 라이더(한국명 전격Z작전)’가 현실이 됐다며 열광했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에 찬물을 끼얹는 영상이 속속 올라왔다. ‘스마트 호출’ 기능을 이용해 차량을 호출한 테슬라 오너들이 “기능을 사용했다가 주차장을 혼돈(chaos)에 빠뜨렸다”며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영상 속 테슬라 차량들은 주변에 주차된 차와 접촉사고를 일으키거나 차를 부른 오너를 지나쳐 가버리기도 했다. 자율주행은 거스를 수 없..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페르미를 아시나요[출처: 중앙일보]

김승현 논설위원 ‘갈라진 광장’의 나라에서 느닷없이 주목받은 이방인이 있다. 엔리코 페르미(1901~1954)다. 갈릴레오 이후 이탈리아 최고의 과학자라는 그는 최근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군중 때문에 소환됐다. 그의 이름을 딴 ‘페르미 추정(Fermi estimate)’은 단위 면적에 있는 사람 수를 가정한 뒤 전체 공간에 대입해 군중의 규모를 예측한다. 덕분에 집회 초기 100만~200만명대로 부풀려진 참가자가 10만~20만명대로 ‘정상화’ 됐다. 페르미식 계산법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인재를 찾는 기업의 채용에도 활용됐다. ‘시카고의 피아노 조율사 수를 계산하라’는 식의 문제를 냈다. 잔재주로 여겨진다면 페르미를 잘 모르시는 말씀이다. 로마의 동료들은 그를 ‘물리학의 교황’이라 불렀다. 같은 이름..

분수대 2021.02.01

[분수대] 선택적 정의[출처: 중앙일보]

최민우 정치팀 차장 4일 국회 행안위 국감장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임은정 부장검사는 “검찰총장이 파서 죽여버려야겠다면 수사하고, 덮으려고 하면 불기소하는 사건이 얼마나 많겠나”라며 “선택적 정의는 사법 정의를 왜곡시킨다”라고 주장했다. 조국 수사가 선택적 수사라 정의에 반한다는 취지였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페이스북에 “(조국) 수사는 아무리 보아도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검찰의 수사권 남용”이라며 “선택적 정의에 분노함”이라고 올렸다. 지난달 서울대에서도 “더 큰 사회적 모순을 외면한 채 선택적 정의를 외치고 있다”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조국 퇴진 집회에 반대한다는 의미였다. 조국을 향한 비판이나 수사를 ‘선택적 정의’라며 분노하는 건, 따지고 보면 80년대 운동권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

분수대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