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한자 71

[유광종의 시사한자] 野(들 야) 鄙(더러울 비)

유광종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 조악한 성정(性情), 심지어 추악한 품성을 두루 일컬을 때 쓰는 말이 야비(野鄙)다. 여기서 野(야)는 학습 등으로 외양을 제대로 꾸미지 않아 바탕이 그냥 드러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한자 자전의 우선 새김으로 보면 野(야)는 ‘들판’이다. 그러나 초기의 쓰임에서는 일정한 지역을 가리켰다. 주(周)나라 때의 구역 지칭이다. 왕도(王都)를 중심으로 100리(里) 바깥을 郊(교)라고 했고, 그로부터 200리 더 나가는 곳이 바로 野(야)다. 우리가 “사람 참 야비하다”고 끌탕 칠 때의 ‘야비’는 사실 이런 구역 이름이다. 野(야)와 鄙(비)는 거의 같은 곳 또는 鄙(비)가 野(야)에 비해 왕도로부터 더 떨어져 있는 곳을 가리켰다고 본다. 왕도를 문명이 ..

시사한자 2021.07.22

[유광종의 시사한자] 租(구실 조) 稅(구실 세)

유광종 벼과 식물은 우리 주변에 흔하다. 화곡(禾穀)이라고 적으면 벼 또는 그와 비슷한 잡곡(雜穀)을 모두 일컫는다. 화수(禾穗)라고 적으면 벼의 이삭(穗)을 가리킨다. 벼를 가리키는 禾(화)를 부수로 달고 있는 글자 중 조세(租稅)는 세금을 가리키는 말이다. 논밭에서 나오는 곡식이 옛 사회 세금의 주요 원천임을 의미한다. 과거 동양 사회에서 등장한 세금의 명칭은 많다. 대표적인 게 부세(賦稅)다. 강제적인 방법 또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나 자금을 바친다는 맥락의 賦(부)는 부과(賦課), 부여(賦與) 등의 조어로 이어진다. 중국에서는 이 賦(부)가 세금을 가리키는 글자로는 가장 먼저 등장했다는 설명이 따른다. 다음 글자 稅(세)는 ‘곡식으로 서로 바꾸다(兌)’는 맥락에서 만들어졌..

시사한자 2021.07.22

[유광종의 시사한자] 彌(두루 미) 縫(꿰맬 봉)

우리는 이 단어를 조금 나쁜 뜻에서 쓴다.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채 일을 서둘러 끝내는 상황을 지칭할 때다. 그래서 미봉책(彌縫策)이라는 말을 써서 대강 일을 끝내려는 낮은 꾀를 가리킨다. 彌(미)는 시위에 화살을 올려 쏘려는 동작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로부터 일을 고치거나 틈을 메꾼다는 의미를 얻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화살이 퍼져나가는 경우를 상정해 ‘널리’ ‘두루’라는 부사적 쓰임도 얻었다고 본다. 뒷글자 縫(봉)은 꿰매다, 깁다 등의 새김이다. 재봉(裁縫)은 옷감을 이리저리 자르고 만지는 마름질(裁)과 서로 꿰매는 일(縫)의 결합이니 옷을 짓는 작업이다. 옷감을 재서 자르는 일은 재단(裁斷), 꿰매 잇는 일은 봉합(縫合)이 [유광종의 시사한자] 紛(어지러워질 분) 亂(어지러울 란) 彌..

시사한자 2021.07.22

[유광종의 시사한자] 規(법 규) 制(마를 제)

동그라미와 네모를 정확하게 그리는 일이 예전에는 쉽지 않았다. 가운데 중심을 잡아 둘레까지 일정한 길이로 동그라미를 그리는 데 필요한 기기가 컴퍼스다. 이 기기를 지칭한 한자가 規(규)다. 그에 비해 직선(直線)으로 이뤄진 네모를 그리는 기기는 矩(구)다. 이른바 곱자라고 해서 네모를 그리는 데 필요한 도구다. 이 둘을 합치면 규구(規矩)다. 일정하게 모습을 그리는 기준에 해당하니 곧 법칙과 원칙 등의 뜻을 얻는다. 規制(규제)라고 할 때 둘째 글자 制(제)는 의미가 분명하다. 글자 요소의 왼쪽 부분은 무성하게 자란 풀을 가리킨다. 오른쪽 요소 (도)는 칼이나 낫, 또는 그런 도구로 대상을 자르는 행위다. 그로써 制(제)라는 글자는 ‘베다’ ‘마름질하다’의 뜻을 얻었고, 이어 강제로 무엇인가를 누르거나 ..

시사한자 2021.07.22

[유광종의 시사한자] 失(잃을 실) 格(격식 격)

실족(失足)이라는 단어가 귀에 익다. 흔히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진다는 뜻으로 이 단어를 푼다. 그러나 이 말의 원래 의미는 단순히 ‘넘어지다’가 아니다. 우리가 보이는 행동거지와 관련이 있다. 처음 등장하는 곳은 《예기(禮記)》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군자는 사람 앞에서 실족하지 않는다(君子不失足於人).’ 사람 앞에서 넘어지지 말라고? 아니다. 사실은 예절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 뒤를 잇는 단어들이 실색(失色)과 실구(失口)다. 다 사람 앞에서 드러내는 실수를 가리킨다. 앞의 ‘실색’은 용모가 단정치 못한 경우이고, 뒤의 ‘실구’는 끊임없이 주절거리다 남에게 비난을 사는 행위다.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지나치게 처신하는 경우가 바로 ‘실족’이다. 과도하게 자신을 꾸미거나..

시사한자 2021.07.22

[유광종의 시사한자] 雲(구름 운) 霧(안개 무)

한자 세계에서 구름 雲(운)은 아주 많이 등장한다. 좋은 맥락도 있지만 어두운 흐름도 많다. 풍운(風雲)은 ‘바람과 구름’의 1차적 말뜻에서 ‘앞으로 닥칠 위기’ ‘거센 세파’ 등의 새김으로 발전했다. 때론 청운(靑雲)이라고 해서 아주 높은 곳의 구름, 그로써 다시 높은 지위나 벼슬을 가리킨다. 다음의 霧(무)는 ‘안개’다. 구름이 그에 가세해 雲霧(운무)로 발전하면 뿌옇게 시야를 가리는 구름과 안개, 나아가 시야(視野)가 가려지는 어두운 상황, 더 나아가 마음에 드리우는 답답한 그늘 등의 의미다. 비록 비를 내리지는 않으나 사람의 눈앞을 가릴 때가 많아 안개는 여러 기상(氣象)의 하나로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른다. 연무(煙霧)라는 표현도 그 하나다. 앞의 煙(연)은 무엇인가를 태울 때 피어오르는 연기(..

시사한자 2021.07.22

[유광종의 시사한자] 이을 계(繼) 이을 승(承)

앞의 것을 이어 나아가는 일이다. 거꾸로 승계(承繼)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홀로 서는 일은 불가능하다. 삶 자체가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계승과 승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앞 글자 繼(계)의 꼴은 온통 실(絲)이다. 실을 가리키는 글자 요소가 다섯 개나 등장한다. 뒷부분은 많은 실이 가운데 구획으로 나뉜 모습이다. 그러나 부수(部首)의 실,(사)가 등장하면서 끊어진 모든 실을 다시 잇는다. 그로써 ‘잇다’라는 새김을 얻었다. 다음 글자 承(승)의 초기 꼴은 무릎을 꿇은 사람이 가운데 등장하고 그를 떠받치는 손 두 개가 이어져 있다. 주술(呪術)과 제례(祭禮)의 글자다. 무엇인가를 받드는 사람이 남들에게 역시 떠받쳐지는 형태다. 이로써 역시 ‘받들다’ ‘이어받다’ 등의 새..

시사한자 2021.07.22

[유광종의 시사한자] 行(갈 행) 止(멈출 지)

유광종 가다가(行) 멈추는(止) 일이다. 진퇴(進退)와 같이 나아감과 물러섬을 가리킨다. 인생의 중요한 길목에서 나아가거나 물러서는 때를 정확하게 잡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사업의 영역, 사람과의 교제, 일상의 많은 순간에서 이런 때를 잘못 판단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품행을 일컬을 때 흔히 행동거지(行動擧止)라는 말을 쓴다. 비슷한 맥락으로 행좌거지(行坐擧止)라는 성어도 있다. 걷고(行) 앉음(坐), 움직이고(擧) 멈춤(止)의 엮음이다. 이로써 사람이 일상에서 행하는 예절의 일반을 가리켰다. 여기에서 나오는 거지(擧止)가 행지(行止)다. 이를테면 나아가고 멈추는 일, 즉 진퇴(進退)와 다를 바 없다. 행위에는 적절함이 따라야 문제가 적다. 적정한 수..

시사한자 2021.07.22

[유광종의 시사한자] 廉(청렴할 렴) 恥(부끄러울 치)

‘얌치’가 없어 남을 끌탕 치게 하는 이를 ‘얌체’라고 한다. 우리말에 자연스레 녹아든 한자 단어 염치(廉恥)의 자취다. 이 염치가 얌치, 나아가 얌체로 발전해 우리 일상에서 자주 쓰인다. 廉(렴)의 원래 출발점은 ‘건축’이다. 본래 지어진 건물의 내부 평면을 지칭했던 듯하다. 그러다 건조물의 가장자리, 즉 邊(변)을 일컫는 글자가 됐다. 건물의 가장자리는 주변(周邊)이다. 이 주변이 곧고 바르지 못하면 건물의 토대는 망가진다. 비뚤어지다가 결국 쉽게 무너진다. 그로써 이 글자는 깨끗함, 올바름의 새김을 얻는다. 청렴(淸廉)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물이 맑을 때의 淸(청)과 병렬해 깨끗하고 바른 사람의 성정 등을 일컫는다. [유광종의 시사한자] 亡(망할 망) 命(목숨 명) 다음의 恥(치)는 귀(耳)와 ..

시사한자 2021.07.22

[유광종의 시사한자] 淫(음란할 음) 亂(어지러울 란)

유광종 앞 글자 淫(음)은 어떤 흐름을 좇아 묻히거나 흘러가며 이어지는 상태나 행위다. 초기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풀이에 따르면 그렇다. 옷감 등에 물을 들이는 일, 즉 염색(染色)의 영역에도 이 글자가 등장한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뜻이 남녀 사이의 통간(通姦)이라는 의미다. 이어 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마구잡이로 벌이는 행동인 방종(放縱), 탐욕과 탐심, 다시 그런 욕망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미혹(迷惑)의 새김도 얻는다. 침음(浸淫)이라는 단어는 위의 첫 풀이에 해당한다. 어딘가에 깊이 빠져드는 일이다. 오래 이어져 제 범위를 넘어서는 권력을 일컬을 때는 음위(淫威)라고 한다. 끊이지 않고 내리는 장맛비는 음우(淫雨), 음림(淫霖)으로 적을 수 있다...

시사한자 2021.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