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스시한조각 131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1] 다랑어 뱃살의 깜짝 변신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일본에서 '도로(トロ)'라 불리는 다랑어 뱃살은 한국에서도 고급 식자재로 취급된다. 상등품 오도로(大トロ) 초밥 한 점은 수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싸다. 그러나 다랑어 뱃살이 지금처럼 고가의 식재료가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가 되어서야 조금씩 유통되기 시작했고, 일식을 대표하는 최고급 식자재로 등극한 것은 70년대 이후이다. 예전에는 몸통의 붉은 살만 남기고 기름이 많은 뱃살 쪽은 그대로 버려지기 일쑤였다. 마구 버려진 이유는 빠른 부패였다. 동물성 지질(脂質)이 풍부한 다랑어 뱃살은 잡은 지 몇 시간만 지나도 부패가 시작된다. 더운 날에는 어선이 항구에 도착하면 썩은 냄새가 진동할 정도로 부패가 빨라 다른 부위가 오염되..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0] 도요토미家의 멸망은 인과응보?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조선 침공을 감행한다. 이때 분에이 세이칸(文英淸韓)이라는 승려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종군 사관(史官)으로 조선에 왔다. 그는 가토를 따라다니며 그의 혁혁한 전과(戰果)를 칭송하는 기록을 남겼다. 한시 등에 능했던 그는 1614년, 히데요시의 승계자 히데요리(秀頼)의 명으로 제작되던 교토 호코지(方廣寺)의 범종에 새길 명문(銘文) 제자(題字)를 의뢰받는다. 세이칸은 '국가안강(國家安康)' '군신풍락(君臣豊樂)'이라는 문구를 범종에 새겼는데, 이 문구가 평지풍파를 불러일으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국가안강'이 피휘(避諱·군주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하는 예법)에 어긋나며, '家'와 '康'을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9] 日 戰國시대 최고 영웅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전국(戰國)시대 3걸(傑)이라고 한다. 이들 중 일본인에게 가장 인기 높은 인물은 누구일까? 현대 일본인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보면 노부나가가 앞서고 이에야스와 히데요시가 그 뒤를 쫓는다. 노부나가가 예전부터 인기가 높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독선적 리더십으로 군림하다가 부하에게 배신당해 중도에 좌절한 재승박덕 지도자의 이미지였다. 인기가 급상승한 것은 전후(戰後) 일본의 고도 성장기였다. 일본 기업들, 특히 종합상사가 세계를 누비던 시절에 노부나가의 파란만장한 삶은 진취성, 결단력, 세계를 꿰뚫어보는 안목, 기득권에 얽매이지 않는 개혁성, 새것을 수용하..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8] 성실과 장인 정신 담은 '自彊'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안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주변국과의 공조 또는 협조를 통한 외교적 운신이 긴요하다는 공감대 한편에 안보 딜레마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자강'의 목소리도 높다. 자강은 '自强' 또는 '自彊'으로 쓴다. 自强은 말 그대로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自彊으로 쓸 때에는 自强과는 다른 속 깊은 철학적 의미가 있다. 自彊은 역경(易經)의 '천행건 군자이자강불식(天行健, 君子以自彊不息)'에서 유래했다. 천행건은 '하늘은 단단하게 움직인다'는 뜻으로 삼라만상 우주의 운동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나타낸다. 군자는 이처럼 한결같은 하늘의 질서를 본으로 삼아야 하며, 그러한 태도에 멈춤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7] 韓·日 해석 다른 '傳家의 寶刀'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한국어와 일본어에는 똑같은 말인데 그 의미나 쓰임새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다. '전가의 보도'가 그런 예이다. 한국에서는 '~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다'라는 관용구로,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상투적으로 또는 집요하게 내세우는 자신의 장기나 상대의 약점'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이를테면 "일본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불가역적 해결' 문구를 논파하려면 합의의 원점으로 돌아가 논리적 결함을 반박할 필요가 있다"는 식이다. /이철원 반면 일본어에서 전가의 보도는 '위기에 처하여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국회 해산권은 헌법상 총리에게 주어진 전가의 보도이다"라는 식으로 사용한다. 일본의 총리는 국회 해산..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6] 불교 사상 깃든 '자유'와 '평등'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근대 시민사회의 중핵적 가치는 기본권이다. 기본권은 크게 보아 자유와 평등의 개념으로 구성된다. 서구의 자유와 평등 개념은 그리스 철학에서 기원을 찾기도 하지만, 근대 이후 확산은 역시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표명하는 것이 미국의 독립선언문이다.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起草)한 독립선언문은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자에 의해 생명, 자유 및 행복 추구 등의 불가침의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하고 있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를 선험적 진리로 간주함으로써 자유 보장을 위한 국가권력 제한, 법 앞의 평등을 의미하는 법치주의 등의 기본권 이념과 제도가 진화하였다. 자유와..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5] 韓·日 합작품 '차쿠리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차력(借力)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머리로 벽돌을 깨거나 몽둥이로 몸을 강타해도 멀쩡함을 과시하는 신체 학대 퍼포먼스 정도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원래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무예이자 심신 단련법이었다. 대자연의 '힘을 빌려' 기공(氣功)을 연마하고 심신을 단련하는 것이 차력의 본래 의미이다. 입산수도(入山修道)로 내공을 쌓은 도사(道士)가 바로 차력의 달인이다. 차력은 택견처럼 한반도 고유의 것으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우주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차력은 최배달과 역발산 등에 의해 일본에 소개되었는데, 일본어 발음은 '차쿠리키'이다. 借의 발음은 しゃ(샤) 또는 しゃく(샤쿠)이며, ちゃく(차쿠)로 읽는 경우는 차..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4] 나만의 깃발이 펄럭이는 삶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언론사에서 종종 인터뷰 요청이 온다. 외교관 그만두고 우동 장사에 나선 경력이 특이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이나 전직을 고민하는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한마디를 해달라는 질문이 많다. 내게 그런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지혜가 있을 리 없지만, 나 개인의 경험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는 바람으로 이런 말씀을 드린다. "취직은 한자로 '就職'이라고 써요. 就는 '앞으로 나아가다' '먼 길을 떠나다'의 뜻이고요, '職'은 옛날 중국에서 집 대문 앞에 세워놓는 깃발(旗)을 형상화한 글자예요. 좌변의 '耳'가 깃발 모양인데,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자기가 누구인지 알리기 위해서 내건 깃발을 나타내는..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3] 일본이 만든 단어 '췌장'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얼마 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영화의 제목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스미노 요루(住野よる)라는 일본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데, 그로테스크한 제목과 달리 내용은 젊은 남녀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청춘물이라 한다. 많은 한국인이 췌장 하면 췌장암을 떠올린다. 췌장암은 생존율이 아주 낮은 위험한 암으로 알려져 있다. 췌장의 췌는 한자로 '膵'라고 쓴다. 19세기 초, 일본의 난의학(네덜란드의학) 학자인 우타가와 겐신(宇田川玄眞)이 새로 만든 한자이다. 중국 전통의학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기(臟器)이기에 그에 해당하는 문자가 없었다. 서양 의학에서 췌장은 pancreas라고 하는데, pan(모든·entire)에다 creas(육신·flesh)를 더한 게 어원..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 한국의 정, 일본의 와, 중국의 관시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민족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는 별론으로 하고, 한·중·일 삼국의 정서적 특질을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있다면, 중국은 '관시(關係)', 한국은 '정(情)', 일본은 '와(和)'일 것이다. 모두 덕(virtue)으로서의 장점이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악덕(vice)으로 변질될 수 있는 이중성이 있다. 중국의 '관시'는 관심(關心)을 주고받는 사이를 뜻한다. 중국어의 관심은 '흥미(interest)'라는 의미도 있지만, '챙기는 마음(caring mind)'의 뜻이 앞선다. 따라서 중국에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서로 관심을 두는, 즉 챙기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관계가 없으면 서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