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스시한조각 131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1] "상공업자의 실력에 나라 장래 달렸다"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1931)는 '일본 근대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19세기 말 개국(開國) 이후 서구의 경제 침투에 직면한 일본의 살길은 무엇인가? 시부사와는 '실업(實業) 육성'에서 그 해법을 찾는다. '금융'과 '주식회사'가 유럽 자본주의의 근간임을 꿰뚫어 본 그는 1873년 일본 최초의 은행인 다이이치(第一)국립은행 설립에 참여한 이래, 은행·보험·연료·철도·제지·방적·건설 등 근대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수많은 기업의 설립과 경영에 관여하였다. 그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기업이 500개에 달한다고 한다. 오늘날 재계(財界)라 불리는 일본의 기업 집단과 거대 산업군(群)의 존재는 그가 이끈 메이지기(期) 산업 근대화의 토..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20] 도쿄 중심가 地名이 된 네덜란드人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도쿄의 중심 도쿄역(驛)에 가면 '야에스(八重洲)'라는 명칭을 많이 볼 수 있다. 동쪽 출입구의 이름이 '야에스구치'이고, 지하의 대규모 복합상업시설을 '야에스 지하가(地下街)'라고 한다. 인근에는 '야에스 북센터'라는 대형 서점도 있다. 야에스는 도쿄역이 소재한 곳의 지명이다. 니혼바시(日本橋)에서 긴자(銀座)로 이어지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서울로 치면 종로 한복판에 해당하는 도심의 최중심지이다. 야에스라는 지명은 네덜란드인 얀 요스텐(Jan Joosten)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얀 요스텐은 네덜란드 무역회사 소속 상선(商船) 리프데(Liefde)호의 선원이었다. 얀 요스텐은 리프데호가 1600년 4월 일본에 표착(漂着)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 정착..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9] 일본인의 에어컨 설치法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2000년 일본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도쿄 외곽의 저렴한 집을 얻은 터라 에어컨이 없었다. 그때 막 일본에서 판매를 개시한 한국 에어컨을 구입했다. 설치 당일 정확히 약속 시간에 맞춰 초인종이 울렸다. 20대 후반 정도의 설치기사였다. 90도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네더니, 작업 내용을 설명하고 작업 중 소음, 먼지 등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회사 로고가 인쇄된 깨끗한 오버롤 작업복 차림에, 각종 공구가 가지런히 정렬된 두툼한 가죽제 툴벨트를 허리에 감은 모습이 영화 '하이눈'에 나오는 게리 쿠퍼보다도 단정하고 프로다워 보였다. 두 시간여에 걸쳐 실내기와 실외기를 설치하고 배관을 연결하는데 정말로 먼지나 소음이 안 나도록 조..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8] 노인에게 자리 양보하지 않는 日本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일본인들은 버스나 전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잘 양보하지 않는다. 같은 유교 문화권인데 왜 그런 차이가 날까? 일본에서 살 때, 꽤 큰 표본 집단의 일본인들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에 노인 공경(恭敬) 관념이 없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노인들이 자리를 양보받아도 한사코 사양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 스스로가 몸 상태가 불편하지 않은 이상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그러한 심리 이면에는 남에게 폐 끼치기를 싫어하는 도덕률과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는 '자립심' 문제가 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심리를 알고 있기에 몸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이 아니면 굳이 먼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7] 빵집의 한 타스가 13개인 이유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미국이나 영국의 빵집에 가면 '빵 장수의 한 타스(baker's dozen)'라는 패키지가 있다. 12개가 아니라 13개들이 포장을 말한다. 왜 빵집의 한 타스는 13개인가? 다양한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설은 이렇다. 주식(主食)인 빵은 생필품 중의 생필품이다. 고대(古代)로부터 양을 속여 팔지 못하도록 공급자를 규제했고 위반자는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양을 속이다 적발되면 손목을 자른다는 벌칙까지 있었다. 하지만 도량형과 화폐가 혼란스러워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중세 영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화폐·도량형을 정비하면서 밀가루의 가격을 화폐 단위에 연동시킨다. 즉 '투입된 밀가루=생산된 빵=고정 가격'으로 공식을 일원화했다. 당시 빵은 타스..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6] 워싱턴의 '자유의 여신像'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미국의 관문인 뉴욕 앞바다에 우뚝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은 누구나 아는 미국의 유명 상징물이다. 그러나 수도 워싱턴의 캐피톨 빌딩(국회의사당) 돔 꼭대기에 또 다른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Freedom·사진)이 세워져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계몽의 빛을 비추는 횃불과 독립·법치를 상징하는 법전을 들고 있는 뉴욕의 여신상과 달리 워싱턴의 여신상은 투구를 쓴 채 허리춤에 칼을 차고 손에는 월계관과 방패를 쥐고 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힘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두 여신상이 상징하는 바를 함께 살펴봐야 미국인들의 자유에 대한 관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이 전화(戰..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5] 善意로 포장된 최악의 법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도쿠가와 막부의 5대 쇼군 쓰나요시(綱吉·1646~1709)는 일본인들의 애증이 엇갈리는 인물이다. 그는 유교적 소양이 높은 학문 애호가였다. 유학자들과 경전을 강독하고, 관학 기관인 유시마 성당(湯島聖堂)을 건립하는 한편, 신진 학자를 주위에 두고 문치(文治)를 표방하였다. 그는 일본 사회의 생명 경시와 살벌한 무단(武斷) 풍조에 환멸을 느끼고 유교 이념(또는 불교의 자비 정신)을 바탕으로 평화와 생명 존중을 지향하는 덕치(德治)와 인정(仁政)을 꿈꾸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일본 역사에서 가장 어리석은 지도자로 기억되고 만다. 그가 주도한 '생물연민령(生類憐れみ令)' 때문이다. 생물연민령이란 쓰나요시 치세에 발령(發令)된 135건에 이르는 '동물..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4] '열린 음식' 잡채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재외공관 근무 시절, 외국인을 초청하여 한국 음식을 대접하는 외교 행사를 할 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잡채였다. 인종, 국적,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잡채를 먹어본 외국인들은 '엄지 척'과 '테이스트 굿(taste good)'을 연발한다. 대사관 행사의 주역이 될 정도로 잡채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잡채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연 한국 전통 음식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조선시대에도 잡채(雜菜)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때 잡채는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채소를 쓰는 요리라는 의미일 뿐 우리가 알고 있는 잡채와는 거리가 멀다. 현대 한국인들이 즐기는 잡채는 사실 20세기에 탄생한 '하이브리드(hybrid)' 음식이다. 잡채의 주재료인 당면은..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 밀실 '담판 외교'의 유혹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양자 정상회담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의제 전반의 관계자들이 배석하는 확대 정상회담, 소수의 측근만 배석하는 단독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단독 정상회담 중에서 최측근마저 뿌리치고 정상끼리만 따로 만나는 것을 외교가에서는 흔히 '테트아테트'라고 한다. 프랑스어의 'tête-à-tête'에서 유래한 말로 'head to head'의 의미이다. 여간 비밀스러운 내용이거나 긴밀한 관계가 아니면 정상들이 테트아테트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테트아테트 개최 자체가 비밀인 경우도 많고, 알려졌더라도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도보다리에서 둘만의 대화를 나눈 것도 일종의 테트아테트라고 할 ..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2] 식당에서 韓·日의 세 가지 다른 점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음식점을 경영하다 보니 이런저런 경험들을 하게 된다. 일본 음식점이라 일본인들이 꽤 찾는 편인데, 이들의 습관은 한국인들과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별것 아닌 차이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느끼는 바가 많았기에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 신용카드 서명(署名)이다. 일본인들은 카드로 결제할 때 전자펜을 들어 한 글자씩 또박또박 서명을 한다. 그에 비해 한국인들은 일필휘지로 휘갈기는 경우가 많다. 사실 가장 많은 서명은 귀찮은 듯 무심한 듯 손가락으로 스윽 그은 일(一) 자나 동그라미이다. 이보다 더 큰 차이는 일본인들의 카드는 뒷면에 거의 예외 없이 소지자 서명이 기재돼 있지만, 한국인들의 카드에는 대부분 서명이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모든 신용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