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7

양모산업으로 농지 줄어 쫓겨난 농민들… 이상국가를 꿈꾸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7] 유토피아 (상)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1.04 03:00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는 16세기 영국 정치가이며 작가인 토머스 모어(Thomas More·1478~1535)가 만들어낸 말이다. 1516년에 출판한 ‘유토피아’에서 이 말이 유래했는데, 고대 그리스어 ‘u(없는)’와 ‘topos(땅·나라)’를 합친 ‘존재하지 않는 나라’인 동시에 ‘eu(좋은)’와 ‘topos’를 합친 ‘행복한 나라’라는 두 가지 의미다.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는 이상적인 나라를 말한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향을 뜻하는‘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인 동시에 행복한 나라라는 두 가..

이윤 추구를 정당화한 스콜라 철학… 초기 자본주의 문을 열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6] ‘신성한 가난’에서 ‘깨끗한 부’로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12.21 03:00 빈민에게 외투를 나눠주는 마르탱 성인 - 헝가리 출신의 마르탱은 로마 군인이 되어 프랑스의 아미앵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벌거벗고 덜덜 떠는 걸인을 본 마르탱은 군복 외투의 반을 잘라 걸인에게 주었다. 고대와 중세 종교는 빈(貧)을 긍정적 가치로, 부(富)는 부정적 가치로 봤다. 투르의 마르탱(316~397) 성인의 일화를 성화로 표현한 엘 그레코의 작품. 외투 일부를 건네는 마르탱이 걸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위키피디아 부(富)와 빈(貧). 이 중 어느 것이 더 높은 가치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빈보다 부를 높이 칠 테지만, ..

혹한에도 왕들은 전쟁에 몰두… 병사들 코와 귀까지 사라졌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5] 小빙하기 : 1708~1709년의 혹한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12.07 03:00 얼어붙은 런던 템스강 위에 열린 장터… 축구·볼링·썰매 경기도 벌여 - 1600년부터 1814년까지, 겨울이면 영국 런던 템스강이 자주 얼어붙었다. 런던 사람들은 두꺼운 얼음 위에 온갖 상점이며 주점 등을 세워 ‘템스강 얼음 장(Thames Frost Fairs)’을 열고, 축구와 볼링, 썰매와 스케이트 경기도 벌였다. ‘소빙하기’ 중에서도 가장 기온이 낮았던 이 시기, 사람들은 얼어붙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걸어서 건넜고, 스웨덴군은 발트해의 얼음 위를 건너 덴마크 코펜하겐을 공격했으며, 이탈리아인들은 베네치아의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다. 네덜란드 출신..

무모한 돌격명령에 프랑스군 12만명 죽어… 대규모 반란 터졌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4] [1차 세계대전] [下] 슈맹데담 전투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11.23 03:00 1918년 5월 슈맹데담에서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추격하는 독일 보병부대의 모습. 파리 북동쪽으로 약 110㎞ 떨어진 슈맹데담은 30㎞ 정도 길이 산등성이로, 고대부터 전략 요충지였다. 1차 대전 중인 1917년 프랑스는 이곳에서 독일을 상대로 총공세를 폈지만, 약 20일간 3㎞를 전진하는 동안 12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급격히 사기가 떨어진 프랑스군 내에선 명령 불복종과 반란 사태가 이어졌다. 작자 미상 사진. /위키피디아 제1차 세계대전 중 1917년은 결정적인 전환의 해였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나 러시아가 동부전선에서 이탈하게 되고, ..

8개월간 쏟아진 포탄 6000만발… 병사 70만명이 참호서 죽어갔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3] [1차 세계대전] 佛베르됭 전투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11.09 03:00 1918년 11월 11일, 휴전 조약이 발효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전례 없이 처참했던 4년 동안의 전쟁은 큰 상처를 남겼다. 세계는 대전(大戰)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살의 공포를 모르던 호시절(Belle Epoque)은 영영 지나갔다. 지옥 같았던 이 전쟁은 현대 세계를 향한 불가역적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프랑스 북동부 베르됭에서 벌어진 전투는 세계 1차대전 최악의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독일군은 처음부터 베르됭을 차지하기 위해 대량 살상을 계획하고 엄청난 포격으로 프랑스군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프랑스군도 전력을 다해 저항했다. 사..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2] ‘쇼통’ 국왕, 7월혁명으로 왕위에 오르고 2월혁명으로 쫓겨나다

프랑스의 마지막 왕 ‘우산왕’ 루이 필리프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10.26 03:00 프랑스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린 ‘7월 혁명’ 뒤 혁명 주도 세력은 혁명의 대의를 계승하면서 두려움은 막아줄 중립적 인물을 내세우길 원했다. 부르봉 왕실의 방계인 오를레앙 가문 출신 루이 필리프는 딱 알맞은 선택이었다. 그는 의회에서 왕정과 공화정의 타협안으로 통과시킨 ‘1830년 헌장’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한 뒤, ‘프랑스의 왕’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왕’으로 취임했다. ‘7월 왕정’의 시작이었다. 그림은 1830년 8월 9일 의회에서 선서하는 루이 필리프 1세의 모습. 낭만주의 역사화가 외젠 드베리아 작, 베르사유궁 프랑스 역사박물관 소장. /게티이미지코리아 1830년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51] 7월 혁명과 언론 자유

프랑스대혁명 후 30년… 파리, 언론 자유를 위해 다시 봉기하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1] 7월 혁명과 언론 자유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10.12 03:00 언론 탄압에 봉기한 파리 시민들 - 23년간 망명한 끝에 왕위를 되찾은 루이 18세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유의 남용을 방지하는 법령에 따르는 한에서’라는 단서 조항을 붙였다. 언제든 언론 자유를 억압할 구실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혁명 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왕실과 귀족은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들에 재갈을 물리려 했다. 자유주의 세력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자 국왕은 “정기 간행물의 자유를 중단시킨다”고 선포하기까지 했다. 1830년, 신문기자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시민들이 일제히 투쟁에 나..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0.하] 나라 운명 바꾼 존 만지로… 日해군·조선업의 산파

서구 항해·造船기술 전수받아… 日 근대 해군의 기반 다졌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0.하] 나라 운명 바꾼 존 만지로… 日해군·조선업의 산파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09.28 03:00 워싱턴 도착한 日사절단 - 1858년 맺어진 미·일통상조약 비준을 위해 미국으로 파견된 첫 일본 사절단이 1860년 5월 15일 워싱턴 DC의 해군 조선소에서 미군 장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네덜란드에 주문 생산한 목제 기선 ‘간린마루’와 미국이 제공한 배 포해튼호를 타고 미국 선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우여곡절 끝에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했고, 임무를 완수한 뒤 무사히 귀국했다. 간린마루의 태평양 왕복 항해는 일본에 ‘우리도 서구 열강들처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9] 미국 배가 구해준 어부, 일본 근대화 스승으로 돌아오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9] 미국 배가 구해준 어부, 일본 근대화 스승으로 돌아오다 나라 운명 바꾼 존 만지로 上 - 신문물 배운 첫 일본인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09.07 03:00 일본인 눈에 비친 미국의 흑선 - 1853년 7월 일본 에도만에 페리 제독의 미 해군 함대가 들어와 개국을 강요한 사건을 일본인들은 ‘흑선 내항’이라고 불렀다. 서방에서 온 거대한 검은 군함이 당대 일본인들 눈에는 연기를 뿜는 뿔 달린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는 만지로(万次郞)가 있었다. 만지로는 우연한 난파 사고 뒤 미국 포경선을 타고 세계를 일주했으며 미국서 영어와 항해 기술을 익히고 서구 사회와 경제 발전을 경험한 인물. 그는 개항 협상 당시 쇼군 정부에 미국에 대한 정보..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8] 20세기 세번의 전쟁 참전백전노장 전함 미주리호

피란민 흥남철수 작전땐, 든든한 뒷배 돼준 미주리호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48] 20세기 세번의 전쟁 참전백전노장 전함 미주리호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1.08.24 03:00 하와이의 진주만 해상에는 애리조나호 기념관(USS Arizona Memorial)과 박물관 선박 미주리호(USS Missouri·BB-63)가 마주 보고 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 공격 당시 이곳에 정박해 있던 애리조나호는 일본 함재기의 공습을 받아 침몰했고, 약 1100명의 선원이 사망했다. 미국 당국은 이 배를 인양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바다 위에 추모 기념관을 지었다. 한편, 전함 미주리호는 제2차 세계대전 말에 건조되어 곧바로 일본과의 전쟁에 투입되었다가, 1945년 9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