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7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7] 독일 허찌른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등공신은 양계장 출신 이중간첩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7] 독일 허찌른 노르망디 상륙작전… 일등공신은 양계장 출신 이중간첩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숨은 영웅 ‘후안 푸홀 가르시아’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6.07 03:00 후안 푸홀 가르시아는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무선을 독일군에 보냈다. 정확한 정보를 넘겨준 다음, 역정보를 제공해 독일군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의도였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된 후 독일군에“현재 진행 중인 연합군 공격은 대규모 교란 작전이니 함정에 빠지지 말고 다른 지역(파드칼레)으로 방어군을 집중 배치해야 한다”는 거짓 정보를 전했고, 이를 믿은 독일은 롬멜 전차 부대를 파드칼레로 보냈다. 사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첫날 ..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6] 쿠바 폭격 검토한 케네디에… 흐루쇼프의 협상 메시지가 왔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6] 쿠바 폭격 검토한 케네디에… 흐루쇼프의 협상 메시지가 왔다 핵전쟁 직전까지 내달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5.24 03:00 1961년 친(親)소련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미국이 주도한 쿠바 피그스만 공격이 실패로 끝난 뒤, 이듬해 쿠바는 소련의 도움을 받아 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했다. 이로 인해 미소 갈등이 고조되며 무력 충돌 가능성도 커졌다. 협상 끝에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기로 하고, 소련은 쿠바에 배치한 미사일을 철거하기로 합의해 전쟁 위험을 피했다. 사진은 쿠바 미사일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196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케네디(오른쪽) 미 대통령이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미디어로 정치 선동… 지식인들이 좌파 권력에 순종하게 만들다

미디어로 정치 선동… 지식인들이 좌파 권력에 순종하게 만들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5] 좌파 프로파간다의 선구자, 빌리 뮌첸베르크(1889~1940)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5.10 03:00 사회주의 선전영화의 대표작 ‘전함 포템킨’ - 독일의 좌파 선동가 빌리 뮌첸베르크는 공산주의 선전을 위해 신문, 잡지, 영화, 연극 등 각종 미디어를 종합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선동에 넘어간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했다. 뮌첸베르크의 선전 운동으로 소련은 평화, 사회 정의, 약자 보호 등 인도주의적 가치를 지켜내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사진은 뮌첸베르크가 독일에 들여와 성공시킨 영화 ‘전함 포템킨’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사회주의 혁명을 선전하기 위..

교묘한 선동으로 권력잡은 나치 괴벨스… 언론사부터 통폐합했다

교묘한 선동으로 권력잡은 나치 괴벨스… 언론사부터 통폐합했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4] 괴벨스, 프로파간다의 천재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4.26 03:00 요제프 괴벨스는 히틀러가 연설하기 전에 등장해 분위기를 돋우며 군중을 좌지우지했다. 선전 선동의 전문가인 그는 나치 체제 유지를 위해 독일 미디어를 완전히 통제했다. 괴벨스의 목표는 독일인들의 사고를 완벽하게 장악하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괴벨스가 없었다면 베를린을 장악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괴벨스(왼쪽)가 히틀러(가운데)와 함께 선거 유세를 위해 베를린의 슈포르트팔라스트에 도착한 장면. /게티이미지코리아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1897~1945)는 역사상 최고의 프로파간다(선전·선동)..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3] 체코 일부 떼어주면 만족?… 히틀러, 평화협정 깨고 2차대전 도발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3] 체코 일부 떼어주면 만족?… 히틀러, 평화협정 깨고 2차대전 도발 나약한 평화주의 ‘뮌헨 회담’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4.12 03:00 1938년 9월 30일,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를 태운 비행기가 뮌헨을 떠나 파리 인근 부르제 공항으로 향했다. 총리는 마음이 무거웠다. 전날 뮌헨회담에서 영국 총리 체임벌린과 함께 히틀러의 야심을 일시적으로 무마하고 전쟁을 피하기 위해 수데텐란트를 독일에 할양하라는 나치 독일 측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할 즈음, 공항에 수만 군중이 운집한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불명예스러운 양보를 한 데 대해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하려고 모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2] 베를린 입성한 소련군, 광란의 복수극… 유럽 전체가 등돌렸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2] 베를린 입성한 소련군, 광란의 복수극… 유럽 전체가 등돌렸다 악을 악으로 갚은 2차대전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3.29 03:00 1941년 6월, 히틀러는 2년 전에 스탈린과 체결했던 독·소불가침조약을 위반하고 180만 대군을 투입하여 소련을 기습했다. 그렇지만 두 달 안에 승리를 거둔다는 원래의 계획은 소련군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혀 좌초했다. 1942년 11월 이후 소련군이 대반격을 가했다. 소련 영토를 완전히 회복한 후 동유럽 지역을 넘어 1945년 4월 베를린으로 진격하였고 5월 8일 나치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러시아에서 대조국전쟁(大祖國戰爭)이라 부르는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결과적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나 그 과정에서 소련군은 엄청..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1] 스탈린 때 350만 굶어죽었다, 우크라이나는 그 악몽 잊지않는다

우크라이나 대기근 ‘홀로도모르’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3.15 03:00 얼어붙은 감자 캐는 어린이들 - 1930년대 초반 극심한 기근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약 350만명이 굶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소련이 집단 농장, 국영 농장에 농민들을 강제 편입시킨 데 이어 대량 공출로 곡물을 수탈하면서 굶주림이 심해졌다. 스탈린은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을 소비에트의 적으로 규정하고 가혹하게 처벌했다. 1933년에는 굶어 죽는 이가 하루 평균 1만5000명 규모로 늘어날 정도였다. 사진은 1933년 도네츠크의 한 집단 농장에서 어린이들이 얼어붙은 감자를 캐는 장면이다. /위키피디아 1930년대 초반 소련은 극심한 기근으로 대량 아사(餓死) 사태가 벌어졌다. 현재 학계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

권력 향한 광기… 가족까지 없애며 차지한 왕권, 2년만에 끝났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0] 영국의 폭군 리처드 3세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2.22 03:00 장미전쟁(1455~1485)은 이름만큼 그렇게 낭만적인 사건이 아니다. 백년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전사 귀족들이 왕권을 놓고 다시 치열하게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다 자멸한 말세의 전투라는 평가가 실상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특히 리처드 3세는 지옥 같은 막장 정치판에서 악마의 광대 노릇을 하다가 처참하게 몰락한 인물이다. 리처드 3세의 죽음으로 끝난 장미전쟁 - 리처드 3세는 수많은 정적들을 무참하게 죽인 폭군으로 꼽히지만 평민 보호 정책 등 합리적 개혁도 시도했다. 그가 1485년 보즈워스 전투에서 전사해 장미전쟁은 끝났고, 헨리 7세가 새로운 튜더 왕조를..

19세기 ‘사회주의 낙원’ 그린 소설… 미국은 왜 열광했나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9] 유토피아 (下) 벨러미가 쓴 ‘뒤를 돌아보면서’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2.08 03:00 19세기말 자본주의 폐해를 그린 미국의 풍자화 - 에드워드 벨러미는 1888년 출간한 ‘뒤를 돌아보면서(Looking Backward 2000-1887)’를 통해 자본주의 발전은 국가 자본주의로 귀결돼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모든 책임을 지는 이상 사회를 그려냈다. 19세기 중산층은 노동자들의 참담한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라면서도 파업을 일삼는 노동 계급에 대한 공포와 혐오감도 갖고 있었다. 사진은 소수의 자본가가 다수 노동자를 이용해 배를 불리는 자본주의 폐해를 묘사한 1883년 미국의 풍자만화. /미 의회도서관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은 부익부 빈익빈의..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58] 생명 연장하는 물, 인공 눈·비… 400년전 예측한 ‘과학 유토피아’

[유토피아] [중] 베이컨 ‘뉴 아틀란티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2.01.18 03:00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굳이 억제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충족하는 길을 찾자고 주장했다. 베이컨이 쓴 유토피아 소설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과학기술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가능케 할 뿐 아니라 신의 창조를 이어받아 제2 창조 작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은 1910년 프랑스 화가가 2000년 파리 모습을 상상해 그린 작품. 비행기가 교통 수단으로 자리 잡은 이 그림은 1910년대 카드 등에 사용됐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행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제시한 답은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여 물질적 필요를 최소한으로 충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