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67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26] 英·佛 넘나들며 왕들을 뒤흔든 정열의 여인, 백년전쟁을 잉태하다

아키텐의 알리에노르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10.20 03:00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아키텐의 알리에노르(Aliénor d’Aquitaine‧1122~1204)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여인이 또 있을까. 그녀는 두 국왕과 결혼하고 두 국왕을 낳았으며, 십자군에 직접 참전했고, 궁정 암투에 깊이 간여하고, 직접 군대를 지휘하는 한편 새로운 궁정 문화와 새로운 사랑의 문학을 발전시켰다. 역사의 변전을 온몸으로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국왕과 결혼하고 두 국왕을 낳았으며, 십자군에 직접 참전했고 궁정 암투에 깊이 간여했던 아키텐의 알리에노르(Aliénor d’Aquitaine‧1122~1204) 초상화. 영국 화가 프레더릭 샌디스 作(1858), 카디프 국립박물관 소장...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25] 히틀러가 가장 존경한 계몽군주,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 일으키다

18세기 계몽절대주의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10.06 03:00 체코 동부의 브르노(Brno) 시에 있는 스필베르크(Špilberk)성은 과거 감옥으로 쓴 적이 있다. 18세기 유럽의 대표적 계몽전제군주로 알려진 요제프 2세는 이 성에서 사형제를 대체하는 자비로운 처벌 방식을 시행했다. 흉악범을 체인으로 묶은 다음 나무 상자에 넣어 어두운 방에 가두는 것이다. 간수가 빵과 음료를 틈새로 집어넣어 줄 때에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아서 죄수는 완벽한 어둠과 침묵 속에서 지내야 한다. 이 상태로 몇 주가 지나면 죄수는 대부분 미치든지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한다. 스필베르크성의 ‘어둠의 방(Dark Cell)’은 빛을 비추어 몽매한 상태를 깨운다는 계몽(啓蒙)의 정치가 실제 어떠했는지 역설적..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24] 이 벌건 쇳덩이를 잡아보아라, 네가 죄가 없다면 무사할 것이다

중세 신명재판(神明裁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9.22 03:00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1077년 12월, 노르망디의 대귀족 로제 2세의 성에 괴한들이 침입해 부인 마빌 드 벨렘(Mabile de Bellême)을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공모 혐의를 받던 기사 기욤 팡톨(Guillaume Pantol)은 로제의 부하들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자 수도원으로 도주해 갔다. 팡톨이 계속 무죄를 탄원하자 잉글랜드 국왕이자 노르망디 공작인 윌리엄은 신명재판(神明裁判)을 열기로 결정했다. “팡톨이 빨갛게 달궈진 쇠를 맨손으로 잡았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전혀 화상을 입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성직자와 군중들이 소리 높여 하느님을 찬양했다.” 달군 쇠를 붙잡았는데 전혀 상처가..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23] 극심한 탈수로 시퍼렇게 쪼그라든 시체들, 캘커타‧북경 이어 평양에

육체와 정신, 사회를 공격한 팬데믹, 콜레라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9.08 03:00 /게티이미지코리아 1866년 영국 런던의 잡지 'fun'에 실린 카툰 '죽음의 조제실'(조지 존 핀웰 作). 수질 오염이 콜레라의 근원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런던에선 온갖 오물을 템스강에 버린 다음 시민들이 다시 그 물을 먹어서 수인성 전염병이 폭발적으로 퍼졌다. 코비드-19는 14세기의 흑사병, 16세기의 천연두, 20세기의 스페인독감과 같은 역사적인 팬데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병이 어느 날 홀연 사라지고 과거 좋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따위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와 함께 살아갈 공산이 크다. 역사적으로 이 비슷한 현상을 찾는다면 콜레라가 있..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22] “기독교도 창자 끝을 말뚝에 묶고…” 교황 연설에 기사들이 봉기했다

십자군 전쟁의 시작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8.25 03:12 1095년 11월 27일, 프랑스의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십자군 원정을 선포하는 장면. 당시 교황은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하자고 호소했고, 그곳에 모인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서 원하신다’고 외치며 호응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갤러리 디 피아자 스칼라 소장. 1095년 11월 27일,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십자군 원정을 선포했다. 이 회의에서 교황이 어떤 연설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공의회에 참석했던 인물들이 후대에 쓴 기록으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예컨대 로베르 수사가 1107년에 쓴 연대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튀르크족은 하느님의 교회를 완전히 파..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21] 교황 가두고 무슬림 혼내고… 노르만 용병, 시칠리아를 가로채다

노르망디인이 세운 시칠리아 왕국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8.11 03:12 11세기 초 노르망디의 작은 영지 오트빌 영주 탕크레드의 가상 초상화. 그 자제들의 모험은 시칠리아 왕국 건설로 정점에 이르렀다. 11세기 초, 노르망디 코탕탱 반도에 위치한 작은 영지 오트빌(Hauteville). 이곳 영주 탕크레드(Tancrède)는 두 번 결혼해서 15명의 아이를 얻었는데, 그중 12명이 아들이었다. 아들 부자라 든든하긴 했겠으나 많은 자식 장래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탕크레드가 죽었을 때 세를롱(Serlon)이라는 아들이 영지를 물려받았지만, 나머지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들이 찾은 답은 이탈리아 남부였다. 용병으로 변신한 노르망디 출신 기사들 이 시기 이탈리아 남부 지방은 분열이..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20] 황제에 쫓겨난 교황,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발견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하다

교회발 혁명이근대 국가를 혁신하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7.28 03:12 주세페 몰테니 작 '고해성사'(1838년, 이탈리아 스칼라 광장 갤러리 소장). 고해성사 강화 규정은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확립되었다. 신자들은 매년 스스로 죄의 상태를 밝히고 교회 시민권을 갱신해야 했고, 이후 서구는 참회 문화가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누가 세계 최상위 권위를 가지는가? 황제인가, 교황인가? 황제 측 주장에 따르면 이 세상에 황제는 단 한 사람이고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심판될 수 없지만, 로마 주교는 여러 주교 중 한 명일 뿐이니 황제가 최상위 권한을 가진다. 반면 교황 측 주장에 따르면 황제는 여러 왕 중 최상위자일 뿐이며 황제 선출은 교황에게 확인받아야 하니, 교황이..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19] 눈밭에 맨발로 사흘간 빌었다, 파문 거두라고… 황제의 굴욕과 복수

카노사의 굴욕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7.14 03:14 1077년 이탈리아 카노사 성문 밖에 독일 왕 하인리히 4세가 서 있는 '카노사 굴욕'을 묘사한 그림. 하인리히 4세가 말총으로 만든 참회복을 입고 눈 위에서 맨발로 서서 카노사성에 머물고 있던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파문을 거둬달라며 용서를 빌고 있다. 영국 화가 아서 C 마이클 작품(1913년). 1077년 1월, 독일 왕이자 장차 황제가 될 하인리히 4세가 이탈리아 북부의 험준한 산악 지역인 카노사(Canossa)의 성에 찾아왔다. 이곳에는 그에게 파문 선고를 내린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머물고 있었다. 엄동설한 맹추위에 말총으로 만든 참회복을 입고 눈밭에 사흘 동안 맨발로 서서 용서를 빈 결과 교황은 파문을 거두어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18]'새 사냥꾼' 하인리히제국의 길을 열다

히틀러보다 1000년 앞서 ‘인간 사냥’… 로마 제국을 부활시키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18] '새 사냥꾼' 하인리히제국의 길을 열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7.01 03:14 중세 독일의 역사적 실체는 매우 복잡하다. 19세기에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주도 아래 ‘독일제국’으로 통일되기 전까지 중동부 유럽에는 크고 작은 정치 단위 수백 곳이 난립해 있었다. 예수가 생전에 신고 다니던 샌들을 보관하는 프륌 수도원공국(Fürstabtei Prüm) 같은 작은 나라부터 작센이나 바이에른 같은 대규모 공국까지 각국의 규모나 성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길을 연 하인리히 다른 한편, 이런 난맥상을 이겨내고 과거 로마제국을 부활시켜 유럽 문명권 전체를 한 단위로 통..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17] 이잡듯 샅샅이 뒤져라… 英 노르만왕조, 전국민 재산 색출 대작전

영국사의 새로운 전환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6.17 03:12 1066년 노르만 정복은 영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 중 하나다.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프랑스 기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국왕 해럴드를 살해하고 새로운 왕조를 개창함으로써 이 나라 역사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영국민들이 겪은 일들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가혹한 정복과 약탈의 연속이었다. 노르만인으로 영국 지배계급 교체 강력한 무력으로 주민들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하더라도 정복왕 윌리엄의 입지는 아직 불안정했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이웃 나라에서 쳐들어온 무도한 인간들에게 지배받게 되었다는 데 대해 분개하는 감정이 컸고, 수년간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저항했..